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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분열하고 또 분열하고
[만파식적] 분열하고 또 분열하고
  • 김은하 / 중앙대
  • 승인 2002.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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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0 09:33:35
김은하 / 중앙대 강사·문예창작

학기가 끝나면 비교적 홀가분해지는 학생들에 비해 강사들은 방학과 동시에 성적 채점이라는 막중한 과제와 직면하게 된다. 학기 중 받은 다량의 리포트와 시험지 채점을 다 마쳐야만 비로소 방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지런했다면 학기 중에 이 모든 과정을 처리했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밀린 숙제하듯이 리포트와 시험지에 파묻혀 그동안의 불성실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이 대가가 혹독한 것은 육체적 피로와 자유시간의 반납 때문이 아니라 증가하는 자기불신과 수치심을 확인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절과 오류투성이의 무성의한 과제와 시험지, 반대로 의욕과 성실로 가득한 그것들을 너무 늦게 만날 때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시험과 리포트 작성·평가가 수업의 일부이며, 일부였어야 했다는 사실이고, 이제는 만날 일이 거의 없는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기반성이다.

특히 내가 담당하고 있는 글쓰기와 문학 관련 교양 과목의 특성상 리포트를 읽고, 어떤 식으로든 화답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아예 이 과정을 건너뛴 것은 아니었다고 자위도 해보지만 어쨌든 학생들과 나는 수업을 통해 소통하며 의식이 고양되고 성장하는 유쾌한 경험을 갖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학기초로 돌아간다고 해도 한결같은 열정과 성실로 이 모든 과정을 제대로 치러내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강의 경력도 짧고 학문적 성취도 미미한 젊은 강사에게 열정과 성실 만한 미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식상할 정도로 되풀이되는 이야기지만, 본인들에게는 현재 진행형으로 절실한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생존 조건은 수업에 쏟아야 할 시간과 정성을 매번 강탈해간다. 또한 익명성을 강요하는 대형 강의의 무책임성과, 아예 없거나 혹은 다행히 있더라도 내내 직직대는 마이크, 강의록과 같은 수업 자료 복사마저 자제 혹은 금지하라는 대학 측의 경탄할만한 절약 정신 역시 열정과 성실을 냉소와 자기불신으로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그래서 강사들은 매번 수업의 흔적이 전혀 담기지 않는 표절과 오류투성이의 리포트와 시종일관 산만한 학생들과 만나며 압도적인 피로, 무기력, 수치, 자기불신을 안고 강의실을 빠져 나오거나 자기투사와 다를 바 없는, 학생들에 대한 깊은 환멸감을 갖게 된다.
씁쓸한 것은 대형 교양 수업 강사들이 겪는 이러한 경험이 주로 힘없는 학생들과 강사들의 갈등으로 환원돼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쩌면 영원히, 빛이 들지 않아도 좋으니 작은 연구실과 일정한 생계비를 지원 받는 직장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대학 수업의 절반을 담당하면서도 유령이 되기를 강요받는 시간강사들은 자기 권리를 요구할 상식적인 창구 하나 없이 다음 학기 강의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초라한 근심에 압도돼 있다.

그래서 “일상을 짓누르는 왜소화의 공포에 저항하라”는 수업중의 발언과 현실의 경험 구조 안에서 겪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안고 자기불신과 사회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의식은 분열중이다. 이 분열하는 의식이 근대적 주체의 억압적이고 허위적인 현실을 생산적으로 해체해 나갈 탈근대의 상상력으로 전화하기란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이러한 진술이 미성숙한 의식의 응석과 푸념일지도 모른다는 자기반성은 또한 내면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을 맡으면서 학생들에게 매번 강의록을 나누어주고, 리포트에 대한 첨삭과 면담을 실시하면서 수업에 대한 만족감이 전보다 증가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육십 명이라는 비교적 적은 수강생 수와 방학이 주는 약간의 여유, 그리고 왜소화에 저항하지 않으면 금세 비루해지리라는 위기감이 없다면 언제든 자기불신과 무력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농후하다. 식민지 시기 삶의 터전을 상실한 소외된 민족의 현실을 “우리에게 보섭(농기구의 일종) 대일 땅이 있다면”이라고 절절하게 표현한 김소월의 시를 종종 읊조리게 된다. 나쁜 삶의 구조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일용할 양식이 되지 못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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