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7:55 (금)
[이책을 주목한다]『시민의 도시』(최호준 지음, 디자인네트 刊)
[이책을 주목한다]『시민의 도시』(최호준 지음, 디자인네트 刊)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12-19 11:16:26
사막화되는 도시 "이제 시민이 나서라"

고충석/제주대·행정학과
"오늘날의 도시는 물질문명이 가져다준 생활의 편리를 증대시켜 온 반면, 인간다운 생활환경을 빼앗아 가는 인공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의 도시들, 특히 서울의 경우 이러한 인식은 이미 생활상의 경험 문제가 되었다.
이제 어떤 대안이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대안은 어떤 방향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머리 속을 맴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저자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대안은 시민에 있다. 특히 우리 도시문제의 핵심은 '시민 없는 도시'라는 현상에 있다.
저자는 동양의 도시가 시민 없는 도시였음을, 우리의 도시가 형성의 원점에서부터 시민 없는 도시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박차를 가해온 새로운 도시의 건설이나 도시 계획의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고, 도시는 국가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개발되고 정비되어 왔을 뿐이다.

저자는 도시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시를 인구규모나 물리적 구조 중심으로 파악하던 기존의 학문적, 상식적 인식을 반성해야 한다고 한다. 도시는 주택, 건물 등의 건조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거기에 그것을 만들었고 거기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인간들의 집합체로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시민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은 누구인가? 저자가 말하는 시민이란, 정치·행정과의 일상적인 교섭과정에서 주체자의 지위를 확립하여 정책상의 결함을 검토·비판할 뿐만 아니라, 손실과 부당함을 강요하는 정책의 수용을 거부하고 나아가 새로운 정책의 제기·형성에 적극적인 의사표시와 결연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이성적 인간형이다.

저자도 시인하고 있듯이, 이러한 시민 개념은 현실파악을 위해 창출한 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색채를 지닌 실천적 개념으로 위치 지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시민을 과연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거나 형성시킬 수 있는가. 시민 중심적 대안의 핵심적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직접 논급하고 있지 않지만, 시민적 공동대처가 불가결해지는 상황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적 대응의 필요성 그 자체가 시민적 대응을 낳는다. 이런 관점은 주목해 둘 만한 대목이다.

저자는 시민 중심적 대안을 두 가지 방향에서 점검하고 있다. 첫째는, 행정의 역할에 대한 재검토이다. 시민을 행정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넘어, 시민 참가형 행정으로의 제도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시민 중심적 대안의 결론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민사회 미성숙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시민을 대상화하는 전통적인 행정 개념에 있다는 인식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는, 도시계획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재검토이다. 저자는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옹호계획'(advocate planning)이라는 도시계획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도시계획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전제를 부정하고, 빈민, 소수민족 등 옹호해야 할 집단의 관점에서 공공기관의 계획을 비판하거나 대체계획을 입안하려는, 매우 도발적인 이 옹호계획이론의 핵심에는 도시계획 전문가, 그리고 그들의 직업윤리에 대한 반성이 내재되어 있다. 옹호계획이론의 현재적 타당성 여부야 어쨌든, 도시계획과 같은 매우 전문적 영역에서 시민중심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들의 역할이 핵심적이라는 그러한 지적은 깊이 음미해 볼만한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 동안 쓴 논문들을 편집한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적 메시지는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되고 있다. 다만, 그 내용이 분석적이라기보다는 계몽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 책은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해답을 찾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끝맺고 있다. "각 도시는 독자적인 도시디자인에 기반을 둔 도시공간을 형성하려고 한다. 이는 각 자치체의 자립적 자치운동의 하나이기도 하다…각 자치체는 기존의 학문적 틀, 즉 구미 선진 도시의 테마나 수법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 각 자치체 독자적으로 시민이나 기업과의 연대를 구축하고 이러한 연대로부터 마련된 테마를 종합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