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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2개월 걸친 조선인의 첫 서양문화 체험기
3년2개월 걸친 조선인의 첫 서양문화 체험기
  • 최성환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승인 2012.05.09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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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섬이야기 ④ 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

전남 신안군 우이도 전경. 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은 1801년 흑산도 인근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했는데, 일본, 필리핀, 마카오, 중국 대륙과 북경을 거쳐 우이도로 귀향하기까지 3년2개월이 걸렸다. 낯선 이국땅의 체험은 정약전의 『표시해말』, 정약용의 『경세유표』등의 저서에 등장한다. 사진=전남 신안군
섬사람들은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간다. 때문에 언제나 표류(漂流)라고 하는 해난사고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낯선 이국땅을 경험한 후 살아 돌아 온 표류인의 이야기는 섬사람들의 구전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간혹 어떤 이의 경험은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을 흔히 표해록(漂海錄)이라고 한다. 기록이 남겨진 사례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인물은 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1777~1847년)이다.

문순득의 표류 노정
문순득은 우이도(현 전남 신안군)에 살던 평범한 홍어 상인이었다. 1801년 12월에 흑산도 인근으로 홍어를 구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문순득은 하나의 지역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는 특징이 있다. 표류 후 처음 당도한 곳은 유구(琉球, 현 일본 가고시마현과 오키나와현에 속한 섬 지역)였다. 이곳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풍랑을 만나 이번에는 필리핀(현 Ilocos Vigan)으로 흘러갔다. 다시 필리핀에서 마카오로 이동하고, 중국대륙을 횡단해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 1805년 1월 8일 우이도로 귀향하기까지 약 3년 2개월이 소요됐다. 문순득은 우리역사상 가장 먼 거리,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표류한 인물이다. 

문순득의 표류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기록으로 남겨진 과정부터가 특별하다. 문순득이 살아서 고향 우이도에 왔을 때, 실학자인 정약전이 유배와 있었다. 문순득은 자신의 표류경험을 정약전에게 들려주었다. 정약전은 그 경험담을 정리해『표해시말(漂海始末)』을 집필했다. 이 책에는 문순득이 경험한 210년 전 동아시아 각국의 풍속과 사회상, 언어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다. 당시 오키나와 지역의 장례문화, 전통 의상, 닭싸움을 좋아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상, 성당, 가옥구조, 각 나라별 선박구조에 대한 묘사까지 다른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문순득이 필리핀 표류시 이용했던 비간의 성당

문순득 이전에도 최부, 장한철 등 표류경험 후 기록을 남긴 인물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문순득의 경험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서양문화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영역 상 그가 표류한 지역은 동남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마카오는 포르투갈이 만든 국제항이었다. 서양문화가 진출해 있는 특수지역에 머물면서,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를 목격하고 경험한 것이다. 표류기간 중 천주교 성당에도 가보고, 국제무역선을 타고 항해도 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약전은 문순득에게 ‘천초(天初)’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이는 “세상에서 너가 처음”이라는 의미이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낯선 섬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에게 문순득의 경험은 놀라움 자체였다.

문순득은 홍어상인이라는 직업상 바닷길을 통해 육지와 섬을 넘나들었다. 그 과정에서 문순득의 표류경험은 우이도를 벗어나 육지에 있는 당대의 학자들에게도 전파됐다. 정약용의 경우, 그의 저서『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문순득이 마카오에서 경험했던 사례를 근거로 조선의 화폐 개혁을 주장했다. 또 다산의 제자인 이강회라는 학자는 문순득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럽형 범선과 조선배를 비교분석한『운곡선설(雲谷船說)』을 집필했다. 이 저술들은 실학사상에 입각해 국가의 미래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는데, 우이도 사람 문순득의 경험이 기반이 됐다. 문순득의 사례는 바다를 통한 문화교류의 역동성과 섬사람들이 지닌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또한 섬이라고 하는 공간이 폐쇄적이고 고립돼 있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독특한 인문환경을 지닌 문화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성환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ㆍ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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