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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창무국제예술제 2002
[예술계 풍경]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창무국제예술제 2002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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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과 그렇지 않음. 멈춤과 움직임. 남과 여.

지난 2∼3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일본 산카이주쿠 무용단의 ‘히비키-태고로부터의 울림’ 공연장에서는 너무도 분명해 보이는 이 모든 개념들의 ‘경계’가 혼미해진다.

생명이 없다면 움직임도 없어야 할 것. ‘피’를, ‘생명’을 빼앗긴 허연 얼굴로 멈춘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움직이는 듯 다시 멈추는 그들에게서는 그래서 시체에서 느껴지는 이상의 오싹함이 감돈다. 그러나 ‘무생물’인 그들이 ‘없어야 할‘ 힘을 끌어올려서까지 맴돌고 있는 곳은 바로 그들의 ‘없어진 피’가 담겨 있는 투명반구다. 아, 그들은 지금 빼앗긴 ‘생명’을 갈구하고 있다.

긴장을 늦출 틈도 없이 또다른 기묘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울퉁불퉁한 팔의 근육, 밋밋한 가슴, 남자임에 분명한 그들은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어깨까지 늘어지는 귀고리를 달고 있다. ‘여성성’으로 무장한 이들의 차림은 또다른 탄생을 기원하는 염원의 ‘제의’인가, 아니면 단지 생명력으로 충만하던 시절의 그리운 잔재일 뿐인가.

생명을 향한 이들 ‘무생물’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뿜어내는 것은 생물의 그것보다 ‘더 진한’ 피비린내, 생명의 냄새다.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넘나들게 하는 이 작품은 ‘창무국제예술제 2002’의 일환으로 창무예술원(이사장 김매자)에서 어렵사리 일본 산카이주쿠를 초청해 열린 공연이다. 산카이주쿠는 ‘살아있는 시체의 춤’이라 불리는 일본의 현대무용 ‘부토’를 대표하는 무용단이다.

‘전통예술의 정점에서 전위예술의 정점까지’를 주제로 열린 이번 ‘창무국제예술제 2002’를 기획한 김서령씨는 “올해는 창무국제예술제가 열 돌을 맞는 해인 동시에 ‘한·중·일 국민 교류의 해’이기도 한 만큼, 이번 예술제는 한국, 중국, 일본의 개별적이면서도 공통된 아시아 예술 특유의 아름다움을 세계화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고 설명한다.

이번 예술제에서는 이 작품뿐 아니라 중국 최초의 민간단체 무용단인 북경현대무용단의 ‘붉은 강(All Red River)’, 한국 창무회의 창립 25주년 기념작품인 ‘유리조각’ 등이 공연됐다. ‘붉은 강’은 붉은 색 특유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파괴력이 넘쳐나는 작품으로, 배경으로 사용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유리조각’은 한국의 전통 종교무와 궁중무, 민속무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밖에도 오프닝 공연인 ‘꽃-형과 마음’, 차세대 무용가를 위한 기획공연인 ‘드림 앤 비전 댄스 페스티벌’, 한국 정재연구회의 ‘만수무’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됐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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