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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의 황폐화를 우려한다
지식사회의 황폐화를 우려한다
  •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12.05.07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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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자신을 객관화할 때 존재…진보파 지식인은 어디에 있는가

1 우리 지식사회가 荒廢化하고 있다. 그제보다 어제가 더 황폐하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황폐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황폐를 더 해 가는 것은‘황폐화’라는 것이 원래 지수 상승적으로 증가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있어 토양도 한 번 황폐하면 그 황폐의 도수가 날로 심해지듯이, 그러다가 마침내 沙漠化하고 말듯이. 지식사회의 황폐화도 그렇게 치닫는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

이유는 간단하다. 지식사회 스스로가 자기 황폐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처해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도 않고 그럴 의지도 없다는 데서다. 그 무사고만큼 지식사회의 황폐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그 무의지만큼 사막화의 길은 넓어진다.

지식사회는 지식인들로 구성된 사회다. 지식인들로 만들어지고, 지식인들로 탈바꿈 해가는 사회다. 그‘지식인’은 누구인가. 지식인은 ‘객관화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대학을 나왔다고 다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가 됐다고 역시 다 지식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다 지식인이 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지식인은 자기 지식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지식인이다.

내 지식의 객관화는 내가 나를 나로부터 떼어 놓으면서 시작된다. 나로부터 나를 分離시켜 저 앞쪽 벽에다 붙여놓고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 보듯 나를 보는 것이다. 내가 가진 지식도 내가 하고 있는 생각도, 그렇게 나로부터 떼어내서, 그것이 맞는 것인가, 그것이 옳은 것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갖고 싶은 지식만 갖고, 내가 믿고 싶은 믿음만 믿으려 한다. 그 지식만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그 믿음만 위해서 마음을 모은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 그것이 人之常行이고 思之慣行이다.

그러나 그것은‘객관화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常行하고, 습관적으로 慣行한다. 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만나는 사람도 어제 그제 그 사람들이다. 나누는 대화도 어제 그제 그 대화다. 사람이 같고 말이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 다른 대화, 다른 사고, 다른 믿음을 거부한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의 생각과 마음을 확인한다. 유유상종이다.

그러나 ‘객관화 능력’을 가진 지식인은 다르다. 내 지식과 다른 지식의 자료를 모으고, 내 믿음과 다른 믿음의 소리를 듣는다. 지식인은 나를 의심한다. 내 지식을 의심하고, 내 생각을 의심하고, 내 마음을 의심한다. 의심함으로써 나는 나를 부정한다. 지식인은 자기 ‘부정의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을 가진 자만이 자기의 모든 것에 대한 否定性을 지닌다. 부정성은 膽大性이다. 담대성은 용기다. 용기를 가진 자만이 자기지식, 자기사고, 자기믿음을 부정할 수 있다.

2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로부터 나의 분리에서다. 부정성도 담대성도 나의 분리에서 시작되고 나의 분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位置에서의 나이고, 내 立場에서의 나이고, 내 處地에서의 나이다. 위치는 사회에서의 나의 자리다. 입장은 내 생각 내 관점의 바탕이다. 처지는 지금 내가 처한 형편이다. 나는 이 위치, 처지, 입장에 구속되어 있다. 나는 여기에 구속돼 인지상행하고 사지관행한다.

나는 내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나는 내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한다. 나는 내 처지에서 나라와 사회와 타인을 생각한다. 나는 내 위치에 固着해 있고 내 입장에 執着해 있고 내 처지에 歸着해 산다. 나는 내 위치, 내 입장, 내 처지에 고립되고 매몰되고 침체돼서 촌보도 벗어나지 못한다. 내 모든 것은 거기에 억매이고 거기에 속박돼 ‘객관화 능력’을 갖지 못한다. 자기 분리의 부정성도 담대성도 가질 수가 없다.

자기 위치에 고착돼 경험한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자기 입장에 집착돼 주장하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자기 처지에 귀착돼 바라본 상황은 상황이 아니다. 모두 잘못 파악된 현실이고 잘못 인지된 사실이고 잘못 분석된 상황이다. 모두 왜곡된 것이고 모두 거짓된 것이고 모두 꾸부러지고 비틀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위치에서 취재한 현실만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입장에서 파악한 사실만이 사실이라고 고집한다. 자기 처지에서 인지한 상황만이 상황이라고 외쳐댄다. 거기에 맞는 자료들만 모으고 거기에 부합되는 사건들만 수집한다. 거기에 맞지 않는 일체의 것은 설혹 의심이 가도 다 거부한다. 자료든 사건이든 일이든 그 어떤 것이든, 자기 생각, 자기 믿음, 자기주장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타당성을 지녔다 해도 다 부정한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생각, 같은 믿음,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그들 하고만 소통한다.

그렇게 해서 더 꾸부러진 생각을 더 공고히 하고 더 비틀어진 믿음을 더 확고히 한다. 거짓이 더욱 거짓을 낳고 오류가 더욱 오류로 발전해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소생할 길을 잃고 황폐화의 길로 재촉한다. 정신이든 심리든 마음만 황폐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 또한 완전히 황폐화되어서 두뇌미숙아나 다름없이 글을 보아도 내용을 알지 못한다.

객관화 능력을 가진 지식인, 자기 분리의 능력을 가진 지식인은 자기 위치, 자기 입장, 자기 처지에서 해방된 지식인이다. 자기 사고를 구속하고 자기 믿음을 예속시키는 존재적 상황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들이다. 그 해방과 자유로 해서 그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현실을 현실대로 파악한다. 왜곡된 사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존재 그대로의 현실을 본다. 眞의 사실을 보고, 眞의 현실을 아는 것이다.

3 오늘날 우리 지식사회는 객관화 능력을 지닌 지식인을 찾지 못한다. 자기분리 능력을 지닌 지식인 또한 보이지 않는다. 모두 위치에 고립되고 입장에 매몰되고 처지에 빠져있는‘글 배웠다’는 사람들만 득실거린다. 지식사회가 황폐화할대로 황폐화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진보주의자도 없고, 보수주의자도 없다.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그 어디 속하든, 지식인이라면 으레 자기 위치, 자기 입장, 자기 처지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다. 자기 예속의 대상으로부터 분리되고 독립된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가. 그들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가. 있다면 왜 진보파 지식인이 보이지 않고 左派만 橫行하는가. 진보파는 미래 지향적이고 좌파는 과거 지향적이다. 진보파는 언제나 발전적이다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진보파의 본 모습이다.

그러나 좌파는 퇴행적이고 수구적이다. 내일을 꿈꾸는 좌파는 없다. 내세우는 것마다 주창하는 것마다 지난날의 것이고 옛일들이다. 내일을 노래하는 좌파 글 보았는가. ‘내일’이라는 말,‘ 미래’라는 용어를 써도 내용은 언제나 과거의 것이다. 과거에서 실재를 찾는 이상으로 그들의 지적 능력은 개발돼 있지 않다.

진보파 지식인의 지식은 깊고 언어는 고상하다. 그들의 행동은 신사답고 자세는 겸손하다. 인품에서는 신선감이 흐른다. 오늘날 그런 진보파 지식인을 우리 지식사회에서 보았는가. 왜 다른 나라 지식사회에서는 보이는 그 진보파 지식인이 우리 지식사회에는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죽고 좌파만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듯 좌파의 지식은 너무 얕고 그들의 언어는 너무 저질이다. 막말 외에 다른 언어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막말이 그들 선동의 주 언어이고 그들 소통의 주 수단이다. 그들의 행동은 너무 거칠고 폭력적이다. 흡사 수세대전 공산주의 사회가 되살아 왔듯 ‘점령’, ‘타도’, ‘복수’의 부르짖음이 21세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외쳐지고 있다면, 우리 좌파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상식인가 비상식인가. 비정상치고는 너무 비정상이고, 비상식이라 해도 너무 비상식이다.

그렇다면 보수파 지식인들은 살아있는가, 그들도 죽었다. 그들이 죽고, 우파가 좌파처럼 거리를 활보하는가. 그들도 없다. 보수파 지식인은 지적이면서 현실적이고 그리고 실제적이다. 우파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면서 행동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모두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그들은 무기력하다. 그만큼 그들은 분노가 없다. 과거 그토록 실제적이고 행동적이었던 그들은 지금 과거를 되돌아 볼 의지도 없다. 그렇게 충천하던 기백도, 그래서 이룩한 유례없는 ‘대성취’도 미네르바 여신의 부엉새조차도 찾지 않는다.

지금 진보파 지식인도 보수파 지식인도 행동하는 우파도 다 사라진 지식사회의 들녘은 아침 저녁 다르게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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