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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민주성이 司法 독립성보다 더 근본적인 헌법적 가치"
"법의 민주성이 司法 독립성보다 더 근본적인 헌법적 가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5.04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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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이국운 지음, 『법률가의 탄생-사법 불신의 기원을 찾아서』(후마니타스, 2012.4)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 번째 질문, 한국 사회에서 법률가들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법률가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사실이 아니다. 단적인 예를 보자. 법률가는 전체 국민의 0.034%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국회의원의 10~20%에 달하고 있다. 법률가들은 16대(국회의원 정원273명)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출마자 대비 당선율은 17대는 41.2%, 18대에서는 48.7%에 달한다. ‘좋은 정치가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말뿐 아니라 ‘좋은 법률가 없이 좋은 민주주의 없다’는 말도 정곡을 찌른다. 왜 이들은 이렇게 영향력이 큰 것일까.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이렇게 영향력을 확대해온 법률가들과 이들이 속한 법조 직역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정서는 어떨까. 한 자리 숫자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 「부러진 화살」은 2백만 명을 웃도는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의 불행한 풍경을 그려냈다. 영화의 밑바닥에 깔린 기본 정서가 ‘사법 불신’이라는 것은, 영화 상영 전후 인터넷을 달군 무수한 댓글들, SNS를 통해 증폭된 영화평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 힘세지는 법률가들의 영향력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헌법학자인 이국운 한동대 교수가 최근 펴낸『법률가의 탄생-사법 불신의 기원을 찾아서』(후마니타스, 2012.4)를 펼쳐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주도적 엘리트인 법률가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추적하면서, 법률가 양성 과정의 문제와 대안을 정리한 흥미로운 책이다. 법률가가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사법 불신의 연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저자의 고백을 먼저 들어보자. “내가 절실하게 느낀 것 하나는, 제도적 차원의 사법개혁 작업만큼이나 시민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사법 불신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어루만지는 작업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긴요하다는 점이었다.” 먼저 사법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균형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저자는 한국 사회를 풍미해온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말이 일반 시민들에게 쉽게 공감되는 현실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언어적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사법 현상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법률가의 탄생’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류에 저항했던 몇몇 법률가들을 추앙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법을 지배한 익명의 법률가 집단을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법률가들을 연구한 선행 업적들은 살펴 본 저자는, 선행 연구들이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주류 법률가 집단에 주목하기보다 ‘적법 절차’라는 법의 정신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주류에게 맞서려한 법률가들에 주목했음을 발견했다. 김병로, 엄상섭, 김홍섭, 유병진 판사, 유기천, 조영래, 황인철, 한기택 등에 관한 여러 후학들의 글이 그렇다. 저자는 이를 두고 “솔직히 말해 이와 같은 편향은 그리 건강한 것이 못된다”라고 비판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는 한마디 법을 외쳤다가 곧바로 침묵 모드에 돌입했던 법률가들이 나중에서야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또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비겁하게 돌려 말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체의 자아를 만나기 위해서는 실체의 대상 앞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진경산수의 출발점이자 현상학의 이념”이라고 말하는 저자가 던진 질문은 간단명료하다. 과연 법률가들은 어떻게 양성되고 교육돼 주류로 편입되는 것을까. ‘법률가 양성과 교육’ 하면 로스쿨, 사법시험만 떠올릴지 모른다. 문제가 제대로 따져진 적이 없다는 말이다. 책의 제목에 맞춰 읽어나간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법률가의 탄생’을 역사적 기원과 공간적 차원의 씨줄과 날줄로 얽어놓은 부분이다. 그의 ‘역사적 기원’ 정리를 따르면, 해방공간은 ‘식민지 조선의 주변부 변호사에서 새로운 헌정 체제의 판검사로’ 법률가들이 신분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시공간이었다. 이들은 반공정부하의 공간에서는 ‘비정치적 법복 귀족’으로 환골탈태한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과거 청산에 편승한 법률가 수호자주의의 부활’을 화려하게 맞게 된다.

반면 저자가 주목한 ‘공간적 차원’에는 대학에서의 법학 교육 단체, 사법시험의 준비 및 응시 단계, 사업연수원에서의 실무 연수 단계, 각 법조 직역에 대한 적응 및 동화 단계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네 단계는 각기 독특한 공간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법조 사회화가 진행된다.

법률가의 탄생 공간을 지배하는 기율 권력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가 이들 법률가들의 탄생 공간을 지배하는 기율 권력을 놓치지 않고 주시한다는 점이다. 경쟁(서울대 법과대학 강의실), 폐쇄와 감금(신림동 고시원), 선택된 자들의 공간이라는 신화(사법연수원) 등에 주목한 저자는 “법률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최고의 법률가가 될 것을 전제로 냉혹하리만큼 엄격한 훈련을 실시할 수 있는 합리적 감시의 공간이 내부적으로 확보돼야”하며, 동시에 외부적으로도 “법률가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맡기게 될 국민 대중의 포괄적 감시에 합리적으로 노출돼야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성의 가치가 체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적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법률가의 탄생 공간은 ‘공개와 참여’라는 덕목이 고양될 수 있도록 그 내부와 외부가 다시 구성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저자는 법률가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법의 윤리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법률가들은 신분적 이해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법의 자본화 또는 상품화를 적극적으로 저지해왔다.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에 예속되기보다는 사법 관료의 특권이나 법 전문직의 긍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해왔지만, 자본시장 자체가 글로벌 경제의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기업 법률가와 로펌이라는 새로운 법률가 유형과 조직 형태가 등장했다. 저자는 새롭게 등장한 이 ‘사법 상인으로서 로펌과 기업 법률가’들에도 주목하고 있다. 법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에 압도되면서 다양한 윤리적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저자의 시선이 가닿는 곳은 국제 변호사라는 경력유형, 고위직 법관이나 검사 및 전직 고위 관료들의 영입 문제다.

대안은 사법의 민주화와 분권화

그렇다면, 그가 제시하는 대안적 관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급자가 법률가의 공급을 통제하는 현재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라고 말한다. 즉 정원제 사법시험을 철폐한 뒤, 변호사 자격시험을 도입하고, 사법연수원 제도를 혁파함과 동시에, 법조일원화에 기초해 민주적 판검사 임용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로스쿨 졸업자가 매년 2천500명씩 배출되는 앞으로의 현실에 비춰볼 때도 불가피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사법의 민주화와 분권화다. 사법의 민주화는 판검사 임용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장의 법관 임명에 동의권을 행사하는 대법관회의의 활성화, 주민 직선이나 법관추천회의에 의한 간선으로 국민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안, 재판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또한 사법의 분권화와 관련, 저자는 변호사 선발 권한의 지방분권화를 강조한다. 핵심은 자격시험을 각 고등법원의 관할 지역별로 구분해 실시하고, 5년의 기간을 거쳐 전국적인 변호사 자격을 얻은 사람들로부터 판검사를 임용하자는 것이다. 저

자는 서울대 법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포항에 있는 한동대에서 헌법과 법사회학을 강의해왔다. 최근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상화’라는 테제 아래 타자의 윤리와 공화주의 정치사상을 접목해 현행 헌법전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대한민국 헌정사를 이해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 『헌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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