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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교육의 핵심내용은 國力ㆍ國格ㆍ國魂 함양이다
공인교육의 핵심내용은 國力ㆍ國格ㆍ國魂 함양이다
  • 정범모 한림대 명예 석좌교수
  • 승인 2012.05.0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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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공인, 어떻게 키울 것인가

1925년 생으로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사범대학 교수 및 학장, 한국교육학회장, 충북대 총장, 한림대 총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국행동과학연구소 회장을 거쳐 현재 한림대 명예 석좌교수로 있다. 교육을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 라고 정의 한 그의 교육철학은 한국 교육학의 주요 근간을 형성했다. 저서로는 『교육심리통계적 방법』, 『가치관과 교육』, 『교육과 교육학』,『인간의 자아실현』,『한국의 내일을 묻는다』, 『학문의 조건』, 『한국의 세 번째 기적』, 『교육의 향방』,『내일의 한국인』 등이 있다. 

사람은 육체의 근력으로는 호랑이 같은 맹수를 당해낼 수 없다. 그러나 궁리해서 만든 함정이나 죽창으로는 대적할 수 있다. 또 혼자서는 당해내기 어렵지만, 여럿이 짜고 같이 덤벼들면 능히 제압할 수 있다. 즉 지력과 사회성은 근력이 연약한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생존조건이다.

그래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두뇌 속에는 한편 지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크게 발달해왔고, 또 한편 사회성의 기초인 ‘감정이입’ 즉 남의 감정과 생각을 내 것처럼 감지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거울세포’라는 기관이 장치돼 있다. 두 기관은 서로 관련돼 작용한다.

그렇게 생리적 기반은 대뇌 속에 마련돼 있지만, 인간의 지력과 사회성은 생후의 경험 여하에 따라 크게 사장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는 문제가 있다. 건실하게 신장되면 개인도 국가도 번창할 수 있고, 위축되면 개인도 국가도 그 생존이 어려워진다. 한 나라의 교육은 그 지력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임무를 지닌다.

지력의 계발은 주로 개인의 자아실현에 초점을 두는 私人교육이고, 사회성의 배양은 주로 국가발전을 위한 公人교육이라고 구분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념상의 구분일 뿐, 실제에서는 둘은 융합된다. 여기에서 지력은 지식ㆍ사고력ㆍ창의력 등을 포함하고 사회성은 인간적 정서ㆍ도덕ㆍ준법성 등을 포함하는 넓은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또한 인간 사회에서는 개인과 국가는 특히 깊은 공생관계에 있다는 사실도 새삼 되새겨야 한다.

공인교육 부실이 지도층 비리 원인

문제는, 한국교육에서 개인의 성공ㆍ영달을 꾀하는 사인교육은 성행하고 있지만, 깊고 넓게 공공을 의식하는 사회성 함양이 목적인 공인교육은 거의 공백상태라는 사실이다. 물론 여러 교과에서 국가공공에 관한 언급은 있다. 그리고 개인의 자아실현이 주목적인 사인교육의 효과가 조금은 공익에도 이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치열하고 집요한 입시준비교육이라는 사인교육의 회오리는 즐비한 사설 학원에서만 아니라 공교육 기관인 학교교육마저 그 공인교육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날 그런 공인교육이 부실이 정계ㆍ관계ㆍ경제계 등 여러 영역의 지도층에서 빈발하는 그 많은 오직과 비리의 사건들 그리고 사회 일반의 각종 무질서와 부정사건들의 큰 원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 내일을 또 다시 바라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공인교육은 크게 일깨워져야 한다.

1830년경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미국 시찰 후 쓴 『미국 민주주의』라는 명저에서 당시 미국의 학교교육에 관해서도 많은 논평을 실었다. 그중에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관찰이 있다. 즉 당시 유럽 나라들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사생활에 유리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주 목적인데 반해서, 미국교육은 정치 등 공공생활에 필요한 자질을 기르는 것이 주 목적이다.

따라서 그 결과로 유럽 사람들은 공공생활에 사생활의 습관을 도입하는 버릇이 있는 반면, 미국사람들은 반대로 사생활에 공공생활의 관습을 이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관찰이다. 예컨대 전자는 공금을 내 돈처럼 여기는 경향을 낳고, 후자는 가정에서도 서로 식구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향을 낳는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하게 하는 관찰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인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름으로 다 필요하지만, 특히 이래라저래라 하는 왕도 없고 귀족도 없는 민주국가에서는 각별히 긴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타율이 아닌 자발적인 사회성을 지닌 공인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창간 2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公人'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는 정범모 한림대 명예 석좌교수. 이날 기념식에는 20여명의 전현직 총장과 200여명의 교수, 정관재계 인사, 언론출판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나는 공인교육의 내용을 國力, 國格, 國魂으로 규정해본다.
첫째, 공인은 국력을 신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유별난 일은 아니다. 국방ㆍ외교ㆍ정치ㆍ경제ㆍ학문ㆍ기술ㆍ예술 등 각 분야에서 제각기 생업으로 선택한 직분을 최대의 사명감과 최대의 역량으로 최대의 성취를 이루어내면 그 총계가 한 나라의 국력을 형성한다. 모든 직업은 대소간에 반드시 어떤 공익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도둑과 도박은 혹 돈벌이가 돼도 공익이 없어서 직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직분을 최고도로 성취하는 정도에 따라 장관도 사업가도 예술가도 그리고 거리의 청소부도 다 같이 그만큼 국력신장에 기여한다. 이런 뜻에서 개인의 탁월한 자아실현은 그대로 국력으로 이어진다.

둘째, 공인은 국격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격이 있다. 힘이 있어서도 성품은 고약한 사람이 있듯이, 국력은 있어도 국격이 없는 나라가 있다. 국격 있는 나라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부드럽고 믿을 수 있고 예의 바르고 법을 잘 지키고 밤거리도 안전한 나라다. 국격이 없는 것은 그 반대다. 따라서 국격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인간적 정서ㆍ준법성ㆍ도덕성의 수준이 결정한다. 국격 있는 나라는 자주 찾아가고 사귀고 싶은 나라고, 국격없는 나라는 다시는 거들떠보기도 싫은 나라다. 한국은 그 양단간의 어디일까?

셋째, 공인은 국혼을 간직해야 한다. 국혼이란 나라의 고난을 내 고난으로 알고 해결하려는 의지와 기백을 뜻한다. 보통 말로 애국심이고 충성심이다. 국격이 ‘남’의 사정을 내 사정처럼 느끼는 감정이입이 그 기초라면, 국혼은 ‘나라’의 사정을 내 것으로 아는 감정이입이다. 1967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들 사이에 후일 ‘7일 전쟁’이라고 불린 전쟁이 터졌다. 그때 일본에 유학 중이던 아랍계 학생들은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연일 데모를 벌였다.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학생들은 즉시 제각기 짐을 꾸려 조국으로 떠났다. 나라 지키러 돌아간 것이다. 그 국혼의 차이로써 전쟁의 승패는 이미 점쳐져 있었다. 2년 전 서해의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험악해졌을 때, 어떤 병사가 “엄마, 나 죽을까봐 무서워!”라고 전화로 울먹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우울한 기사였다. 그러나 반면, 그 사건 이후 고된 훈련의 정예부대인 해병대 입대 지원자가 급증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반가운 기사였다. 국혼의 차이 때문이다.

지도층의 공인의식은 '사명'

사람은 집안에서는 사인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한 발짝 나가 거리에 서면 공인이다. 공공과 공익을 생각하는 기질이 몸에 배여 있어야 하는 공인이다. 학교교육은 유능한 사인과 동시에 투철한 공인을 길러내야 한다. 우리에겐 거기에 나라의 성쇠와 안위와 존망마저 걸려있는 공인교육으로의 무게 있는 전환이 절실하다. 거기에 교육계의 각별한 각성과 그 실현 방안에 관한 성찰이 요망된다.

그러나 또 한편 국력ㆍ국격ㆍ국혼을 지닌 공인의 함양은 학교교육의 과제이기 전에 보다 근본적으로 이 나라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각계 지도층의 행위 여하에 달린 문제라고 해야 한다. 공인의 자질에는 지적 역량도 필요하지만, 정서적ㆍ도덕적인 특성들이 그 중 핵이기 때문이고, 그 정서ㆍ도덕의 학습에는 타이르는 말보다는 남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모방학습’이 더 작용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지도층 인사들은 눈에 잘 띄는 가시성이 높아서 특히 그런 모방학습의 두드러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행위ㆍ행태를 닮는다.

따라서 미디어에 노출되는 잦은 지도층 부정비리 사건들은 그때마저 그 자체가 국력ㆍ국격ㆍ국혼을 추락시키는 행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나라 아이들 학생들 그리고 국민 전체의 국력ㆍ국격ㆍ국혼의 신장에도 제동을 건다. 지도층의 부정행태가 사람들의 모방이 될 수 있고, 지도층 부정이 잦은 나라에 사람들의 애국심은 도리어 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인의 함양에는 지도층의 각성이 선행돼야 한다. 나는 어려운 각성을 이 나라 오늘과 내일의 지도층에게 요망한다.

본래 국격과 국혼은 한 나라의 역사에서 면면히 함양되고 계승돼가는 문화적 전통으로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런 역사문화적 전통은 좋은 전통이건 나쁜 전통이건 대부분 지난날의 지도층의 행실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과 개선도 대부분 지도층의 책임이고 사명이다. 나는 이 나라 지도층이 그런 역사적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범모 한림대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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