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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가 본 교수임용 문제점과 개선책
학문후속세대가 본 교수임용 문제점과 개선책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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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 울리는 ‘내사람 심기’…“연구실적·강의능력 비중 높여야”

대학교육의 질이 교수의 질을 넘지 못하듯이 대학교육의 출발은 우수한 교수를 초빙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최근 한 대학이 “임용기준에 오직 실력만을 평가하겠다”고 공고한 것은 그 동안 우리 대학의 교수임용과정에 ‘실력’ 이외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교수신문과 학술·연구·채용 포털사이트 하이브레인넷(www.hibrain.net)이 석·박사 이상 교수임용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02년 6월11일부터 30일까지 하이브레인넷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졌으며, 익명을 요구한 대학강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분석을 도왔다. 사용된 통계프로그램은 SPSS 10.0이었으며, T-Test와 ANOVA통계 기법으로 분석했다.

학문후속세대들은 교수임용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 학연·지연에 따른 정실인사 때문이라고 꼽았다.
 

교수임용제도에 대해 지원자들은 ‘비교적 공정하지 않다’(평균=4.06, 오차허용범위 0.01이하)고 답변했다. 문항별로는 ‘매우 공정하다’(1점)는 의견이 1천72명의 답변자 가운데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비교적 공정하다’(2점)는 의견도 2.8%(30명)로 소수에 그쳤다. 반면 ‘비교적 공정하지 않다’(4점)는 의견이 47.5%(509명)로 가장 많았으며, ‘매우 공정하지 않다’(5점)는 의견도 31.8%(341명)에 달했다. <사잔2>
교수임용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이유로 78.0%(836명)가 ‘내정자를 정한 상태에서 형식적인 채용공고’를 내고 있는 것을 꼽았다. 각종 매체를 통해 임용공고를 내고, 연구업적, 강의, 면접 등 형식적으로 절차를 밟지만 이미 지원하나마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63.1%(676명)가 ‘학연·지연에 따른 정실인사’를 지적했다. 또 교육공무원임용령이 심사결과에 불복할 경우 심사결과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답변자 가운데 52.9%(567명)가 ‘심사과정의 불공정 및 심사결과의 비공개’를 꼽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나이·종교·학위취득국 등에 따라 차별하기 때문’, ‘발전기금이나 금전적인 요구’에도 각각 38.8%(416명), 18.4%(197명)가 동의했다.(중복응답가능) 이와 관련 여성이 남성보다 더 공정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교수지원경험이 많을수록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았다.(오차범위 0.01이하)
지원자들은 교수채용에 지원한 사람이 심사기준이나 지원자별 심사결과에 대해 공개를 요청할 경우 이를 공개하도록 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이 공정성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평균 2.77) ‘매우 효과가 있을 것이다’(1점)라고 답한 사람이 6.3%(67명)에 그친 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4점)가 23.8%(255명),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다’(5점)가 4.1%(44명)이었다.
심사결과 공개 제도에 지원자들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은 심사결과 공개를 요구할 경우 좁은 학계에서 ‘찍혀’ 다른 대학의 임용기회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 지원한 대학에서 불합격될 경우 심사결과의 공개를 요청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공개를 요청할 것이다’고 답한 인원은 16.0%(171명)에 그친 반면, ‘심사결과를 확인하고 싶지만 소문이 두려워서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고 답한 의견이 36.8%(395명)이었고, ‘비리의혹이 있더라도 공개를 요청할 생각이 없다’는 의견도 14.6%(157명)에 달했다.

심사결과 공개 의무화 해야
결국 지원자들은 법령 개정과 대학의 변화 추이 등을 볼 때 교수임용 관행이 다소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근본적인 원인까지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평균 2.65) 앞으로 교수임용이 ‘매우 공정해질 것이다’라고 답한 인원은 0.5%(5명)에 그친 반면, ‘현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고 답한 의견이 59.1%(634명)로 가장 많았다.
지원자들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연구실적의 비중을 높이고, 공개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교수임용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평가요소로 연구실적(54.7%, 586명), 강의능력(25.5%, 273명), 인성(10.6%, 114명), 경력(9.2%, 99명) 순으로 꼽았다. 학문분야별로는 이학분야 전공자들이 연구실적을 가장 높게 꼽았고(64.0%), 예체능분야는 강의 능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39.4%)고 답했다. 인문분야는 연구실적(51.75%), 강의능력(31.58%) 순으로 꼽았다.
개선방안으로도 74.6%(800명)가 ‘연구실적에 대한 심사 기준의 객관화와 공정한 심사’에 동의했고, 다음으로 72.9%(782명)가 ‘심사기준과 심사결과를 모든 지원자에게 공개 의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내사람 심기’ 관행을 막기 위해 현재 신임교수의 3분의 2 이상을 같은 대학 출신으로 뽑지 못하게 한 교수임용쿼터제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40.8%(437명)에 달했다. 다음으로 성별 또는 종교적 차별 금지의 의무화(35.0%, 375명), 전공심사에서 학과교수 참여배제와 외부 전공분야 심사위원 배치(33.4%, 358명)를 꼽았다. 특히 여성답변자 가운데 성별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답변이 많았다.
최근 연구실적 심사에서 SCI(SSCI)급 게재 논문을 우대하는 분위기에 대해서 지원자들은 ‘논문지 종류에 대한 평가보다는 개별논문에 대한 질적심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57.7%(619명)로 과반수를 넘었으나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를 고려해 차별화해야 한다’(21.2%, 227명), ‘주저자의 논문만 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14.9%, 160명)등 보완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들러리’일 것이 분명하더라도 실낱같은 희망마저 저버릴 수 없는 것이 지원자들의 심정이다. 또 나름대로 공정한 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대학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설문 결과 이러한 대학들도 지나치게 많은 관련자료를 요구해 우수한 석학을 유치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답변자 가운데 74.9%(803명)가 “과다한 서류제출, 직접제출 등 행정절차상의 번거로움 때문에 교수지원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말로만 ‘초빙’, 지원하기도 힘들어
이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은 ‘과다한 지원서류 요구’(56.5% 606명)였다. 지원서류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부터 호적등본에 이르기까지 10여가지를 요구하고, 외부심사제도가 도입된 이후 연구 실적물을 5부 이상 요구하는 대학도 늘었는데 그 준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한 답변자는 “1차 서류심사를 통해 걸러진 다음에, 혹은 임용된 이후에나 필요한 서류들을 행정편의상 접수과정에서부터 다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23.2%(249명)가 ‘지원서류를 반환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 지원서나 자기소개서 같은 간단한 서류야 다시 쓰면 되지만 원본을 요구하는 연구실적물의 경우 한번 지원하는 데 수십만원이 드는 것은 예사. 가난한 학문후속세대에게는 이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공개강의나 면접절차상의 번거로움’(10.5%, 113명), ‘지원서류의 직접제출’(9.7%, 104명)도 지원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 교수지원자들의 말, 말, 말
“내정된 사람 제치려면 노벨상 타야 한다”

“쓰고 싶지만 그래봐야 별다른 대책이 없어서…” 교수임용제도 개선을 위한 주관식 답변을 검토하며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학문후속세대들의 불신과 낙담이었다. 심사결과 공개, 외부심사위원 참여 등의 개선책으로도 바뀌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조사를 하다니 용기와 격려를 보낸다. 운명론자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사주팔자에 나오려나. (교수임용과정에서) 인격수양은 되는 듯 하다”, “문제가 너무 심각해 개선하기 어렵다. 대증요법식의 보완책은 문제의 골을 더욱 깊게 할뿐이다. 사학재단-교수의 영합은 시간강사들의 학문적 역량 평가의 잣대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 평가라는 것은 공염불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경쟁에서 뒤진 이들의 항변이야 있게 마련이지만, 교수임용과정에서 학문후속세대들이 겪은 일들은 결코 공정한 경쟁 뒤에 오는 패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 지방대의 교수공고에서 이미 수 개월전부터 내정돼 있는 인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한 명이 그런 식으로 임용됐다.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비일비재한데 어떻게 공정한 심사를 바라고 대학에 원서를 내겠는가”, “모 사립 명문대의 경우, 채점기준이 무엇인가 묻자, 놀랍게도 ‘기준 같은 것은 없다. 각자의 교수가 매긴 것을 합산한 점수가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다. 전 학회가 비웃을 만한 말도 안되는 사람이 선발됐지만, 처음부터 원칙도 없는 선발이라니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공개강의 내내 들러리 섰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자꾸 곤란하게 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이후에 본인의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부러 외국에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갔는데…”, “내정된 사람을 실력으로 제치려면 그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으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불신이 높다보니 이들이 내놓는 처방책도 ‘교수임용고시’처럼 개혁적인 내용도 많았다. 한 응답자는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관련 전공자로 인력풀을 구성하고 심사전날 무작위로 뽑아서 심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정부에서 박사를 통합관리하고 대학에 수요가 있으면 배정하는 방식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경쟁력 없는 사람을 교수로 채용해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공멸하는 지름길임을 인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재단과 학교의 거리를 조정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은 대학과 정부당국의 책임을 되새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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