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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대학의 존재이유·교육목표 재검토 필요
여자대학의 존재이유·교육목표 재검토 필요
  •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 승인 2012.04.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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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_ 여자대학 유감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얼마 전 숙명여대 재단과 총장 사이의 갈등이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져 신문지상을 장식한 일이 있었다. 또 지난 총선에서는 공천을 둘러싼 이화여대 출신 정치인들의 행태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껏 우리 사회에서 여자대학은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사회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문화가 가진 여성에 대한 이중적 시각은 여자대학에 대한 사회의 태도에도 반영돼 있다. 여성은 약하고 열등한 존재로 보호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는 태도와 크고 강한 어머니에게 보내는 것과 같은 신뢰의 태도가 한국 사회 안에 착종돼 있다는 것이 여자대학을 나오고 오랫동안 여자대학에 몸담고 있는 나의 생각이다.

여자대학들은 사회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일면 잘 활용해 대학발전을 꾀한 측면이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형태의 대형 여자대학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론 남녀유별의 전통이 강했던 한국적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보호와 평등의 추구라는 이원적 게임을 여자대학들이 잘 해왔던 데서 찾고자 한다. 한국 여성인재 육성에 여자대학들이 기여해온 바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6개 정도 남은 한국의 여자대학들은 향후 발전전략을 새롭게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남자대학들로 치부됐던 공학 대학들이 거의 반을 육박하거나 반을 넘는 숫자가 여학생들로 채워짐에 따라서 여자대학은 더 이상 보호와 평등의 이중주를 연주할 수 없게 됐다. 여자대학들은 이제 왜 여자대학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여자대학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이 남성중심 사회가 가진 여성 비하의식과 맞물리게 되면 여자대학에게는 매우 가혹한 사회적 도전이 초래될 것이다. 여성은 더욱 취약한 방식으로 사회에 노출될  것이고 더욱 높은 기준을 충족시킬 것이 요구될 것이다. 

이제껏 여성들은 대체로 피해자 위치에 머물러 있었고, 여성학 또한 다양한 양태의 성차별의 문제에 집중해 있었다. 여성의 몸을 한갓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관행이 견고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에게 평등한 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우리는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럼에도 힘을 가진 여성과 여성집단의 숫자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사람들은 그 이유가 어떠하건 간에 여성대통령도 받아들일 태세가 아닌가. 이러한 것들의 함의는 무엇인가. 나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여성들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고등교육 목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역량을 가진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여성들로 하여금  방어적 자세로부터 벗어나 능동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의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여성들 스스로 어떻게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해 대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여성집단은 더 이상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보호된 그늘 속에서 폐쇄적인 여성들만의 관계 속에 구축된 질서에 머물 수 없게 됐다. 여성담론은 이제 단순히 저항담론에 머물 수 없으며, 전체 담론에 대한 통합적 비전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이러한 비전의 설정은 한국 여자대학의 존재 이유, 교육목표와 내용 등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대학운영에 있어서, 남성 중심적인 공학 대학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와 합리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국 고유의 여자대학 모델은 한갓 역사적 유물로 남게 될 것이다. 경영논리와 지배구조에 있어 유사한 문제들을 노정하고 있는 한국 여자대학들을 보며 하위문화로서의 여성문화와 가모장적 여성조직의 문제를 분석하는 일 또한 여성학의 한 과제가 돼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상호문화철학회장과 한국여성철학회장 등을 지냈고, 한국철학회 차기 회장이다. 『칸트: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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