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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준 자에겐 이빨을 주지 않는다
뿔을 준 자에겐 이빨을 주지 않는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4.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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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1 노루와 고라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고라니와 노루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고라니는 왜소한 편이라 몸무게가 10kg 좀 넘고 수컷은 송곳니가 변한 긴 엄니를 갖는 반면, 노루는 덩치기 커 30kg이나 되고 수컷에 뿔이 있다(암컷은 없음). 與角者不與齒(여각자불여치)라, ‘뿔을 준 자에겐 이빨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을까? ‘날개를 준 자에겐 발을 두 개만 준다’고 했으니, 세상만사 공평하기 짝이 없도다!

고라니(Korean water deer)는 발굽(蹄)이 둘인 우제목, 사슴과의 포유동물로 몸길이 75~100㎝, 어깨높이 45~55㎝, 꼬리 6~7.5cm, 몸무게 9∼14㎏이고 암수 모두 뿔(antler)이 없는 대신 위턱에는 엄니(大牙)가 있는데 수컷은 8cm나 되지만 암컷은 0.5cm쯤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고라니는 중국과 한국이 원산지로 ‘중국고라니’와  ‘한국고라니’, 두 亞種으로 나뉜다. 큰 이빨(tusk)은 잇몸에 느슨하게 박혀있어 풀을 뜯을 때는 안면근을 써서 뒤로 살짝 젖힐 수 있으나 적수가 나타나면 잽싸게 바짝 세워 식겁을 주며, 맞고 때리는 힘겨운 암놈차지싸움에 이 엄니(大牙)를 곧잘 무기로 쓴다. 외진 강가의 갈대밭이나 非山非野의 농지, 열린 늪지대에서 지내며 헤엄을 썩 잘 치기에 ‘water deer’란 이름이 붙었다.

헤엄을 잘 쳐서 ‘water deer’란 이름이 붙은 고라니

가슴부위는 조붓하며 비쩍 마른 다리와 길쭉한 목을 하고,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긴 탓에 엉덩이가 어깨보다 높아서 토끼처럼 껑충껑충 뜀뛰기를 한다. 동그란 귀(닮은 ‘노루귀’란 풀이 있음)는 매우 작고, 꼬리는 짧아서 보통 때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발정기의 수놈은 꼬리를 치켜들기에 보임). 거친 털은 위쪽이 옅은 갈색이며 아랫배는 하얗고, 주둥이가 길고 훌쭉한 얼굴은 적갈색에 가깝다. 대개 새벽녘과 저녁참에 활동한다.

텃세를 세게 부리는 수놈(buck)은 영역(領地) 표시하느라 오줌똥을 깔겨 구리고 지린내를 풍기거나 사방에 풀을 물어뜯어 흩어 놓기도 한다. 또 땅바닥을 움푹 파고는 발굽 사이에 있는 ‘蹄間腺’의 냄새를 묻혀놓거나 눈 아래에 있는 ‘眼下腺’의 향을 나무에 발라 놓는다. 

다음은 생리생태가 비슷한 노루(Siberian roe deer) 차례다. 체장 95~135cm, 어깨높이 65~75cm, 체중 15~30kg으로 고라니보다 훨씬 몸집이 크다. 곧추선 뿔(20~25cm)이 수컷에만 있으며, 끝에는 3~4개의 짧은 가지를 치고, 오래 된 뿔은 빠지고 얼른 새로 난다. 위급하면 산이 떠날듯이 개 짖는 소리를 내며, 가을엔 두꺼운 겨울털로 바꾸는 털갈이(換毛)를 하고, 그때 희끄무레한 엉덩이에 심장무늬가 나면 암컷(♀)이고 콩팥 꼴이면 수컷(♂)이다.

둘도 없는 겁쟁이라 ‘제 방귀에 놀라는’ 노루

준족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화들짝 달려가다가도 엉거주춤,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목을 길게 치켜 빼고는 말똥말똥 실눈으로 사방을 힐끔거리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둘도 없는 겁쟁이라 ‘노루 제 방귀에 놀란다’ 하고, 꼬리는 2~3cm이니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라 하며, 깊이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은 ‘노루잠’이라고 하며, 설고 격에 맞지 않는 꿈 이야기를 ‘노루잠에 개꿈’이라 한다. 또 노루발굽 닮은 연장을 ‘노루발장도리’라고 하지.

내 어릴 때 시골엔 노루가 흔해서 그놈들을 잡아 껍데기를 벗기는 것을 자주 봤다. 아니, 저런!? 노루 살가죽 밑에 웬 놈의 구더기가 저렇게 구물구물, 버글거린단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쇠가죽파리(warble fly)’의 유충(구더기)이었으며, 소나 말, 사슴 같은 동물에 기생하는 파리다. 벌(蜂)꼴인 쇠가죽파리가 앞다리에 내지른 알을 핥아 삼키고, 입안에서 까인 유충이 식도근육을 파고 들어가 피를 타고 살갗 밑으로 간 것들이 皮下에서 성충이 된 다음에 두꺼운 살갗 뚫고 나오니 숭숭 구멍 난 가죽은 상품가치를 잃는다.

노루, 고라니도 말(馬)처럼 순수한 초식성으로 지방성분을 먹지 않기에 쓸개(膽囊)가 퇴화해 없다. 필자도 어쩌다가 담낭이 농해 잘라버려 졸지에 ‘쓸개 빠진 놈’이 되고 말았다. 물론 떼고 석 달 동안은 기름기를 삼가야지만 얼마 뒤엔 아무 탈 없으니 인체의 재빠른 응력은 알아줘야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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