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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각발이
딸각발이
  • 교수신문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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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9:58:30
이중원 / 서울시립대·편집기획위원

2002년 월드컵. 그것은 한낱 축구경기였지만, 분명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공은 하나의 계기일 뿐, 본질이 아니었다. 짧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했던 공동체의 시간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구태한 모습을 털어 내고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열망하는 분출과도 같았다. 그래서 어떠한 언어로도 다 표현해 내거나 분석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통쾌함과 벅참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도피와 일탈도 있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빠지기나 한 듯, 우리가 서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멀리한 채 짧지 않은 여행에 한동안 도취해 버린 기억들.

과정이야 어떠했든 월드컵은 지금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끝났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공동체의 키워드 전환 가능성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그 시간의 깊이 만큼 성숙해 있지는 못한 상태다. 그래서 많은 변화의 움직임들이 있어 왔지만 어디까지나 중심부 내에서 그것도 몇몇 가시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말았다. 아직도 공동체 안에는 자각되지 않은 무의식의 지배 키워드들이 철옹성처럼 여전히 남아 있다. 가부장적 권위와 왜곡된 여성상, 분단 상황에 대한 매카시적 인식과 레드 콤플렉스, 혈연·지연·학연 중심의 인적 유대와 기형적인 사회위계구조, 생산적인 공유 문화의 부재 등등. 이들은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균열 가능성이 적어도 나에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에서 깨어나 그동안 우리를 휘둘러 왔던 상징과 의미들이 ‘낡은 것’이었음을 드러내고 자각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아직은 가능성이리라. 최악의 경우 내가 본 것은 어쩌면 나의 소망이 빚어 낸 환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해체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기에…. 낡은 키워드들의 존속을 바라는 전근대적이고 병리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자각이 어떻게 가능할까, 낡은 키워드들을 대체할 새로운 키워드들은 무엇일까, 더 나아간다면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들은 우리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꿀까, 전환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하는가…. 최근의 사태들이 보여 주듯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분명 완강할 것이다. 무의식에서 깨어나 잠재적 의식에 머물고 있는 오늘의 이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꾸려는 일치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애벌레가 구태의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성충으로 건강하게 탈바꿈해 가는 성숙의 과정, 나는 그것을 보고 또 한번의 통쾌함과 벅참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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