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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⑥ ‘부끄러운’ 교육과정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⑥ ‘부끄러운’ 교육과정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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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기’·‘酒道’ 가르치는 ‘학원’ 글쎄?

전공의 비중이 현저히 높았던 이전과 달리, 학부제 시행 이후 전공, 부전공, 교양교육이 삼각형의 구도를 그릴만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전공교육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택의 자유'를 거머쥔 학생과, 학생에게 '선택받지 못할까봐' 점점 깊이 있는 수업을 포기하게 되는 교수. 그 가운데에 위태롭게 선 교육 전반의 현실을 조명한다.

많은 대학들이 ‘전공필수’ 과목을 없애고 있지만, 연세대에는 아직까지 몇몇 과목이 전공필수로 지정돼 있다. 이원태 연세대 교수(생화학)가 강의하는 ‘생체물리’도 그중의 하나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는 학생들이 싫어도 ‘생체물리’를 들어야 하지만, 만약 전과목을 ‘선택화’하게 되면 분명 학생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이 과목을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전공필수 과목이라고 해서 안전지대에 놓여 있지는 않다. 학생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다 보니 기초과목 이수가 부실해지는 것. 연세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경우 물리, 화학, 생물, 수학을 모두 이수해야 했으나, 두 과목만 이수하면 된다. ‘생체물리’에서 다루는 분량이 점점 줄어들고 내용이 쉬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모두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강의의 수준을 ‘하향평준화’할 수밖에 없다.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철학) 역시 학부제를 시행하면서 원하는 수준의 강의를 할 수 없게 됐다. 학부제 시행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철학강독’ 시간에 원서를 읽었으나, 이제는 우리말로 풀어서 복사한 것을 가지고 강의한다”는 손 교수는 “수준높은 수업으로 전공의 내실을 기하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학부제 교육과정은 ‘얕은’ 대신 ‘넓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역시 ‘얕아진’ 교양교육

지난 5월 25일, ㄱ대에서 ‘교양과목 학점취득 특별시험’이 시행됐다. 시험과목에는 국어/작문, 수학 등까지 포함돼 있어 이 대학 학생이 강의를 듣지 않고도 취득할 수 있는 학점은 최대 21학점이나 된다. 학교도 편하고 학생도 편한 제도. 그러나 많은 대학과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이 제도가 계속 확장된다면 자칫 대학의 ‘교양교육’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이상규 경북대 교수(국문학)는 이 제도가 ‘재정 확보’와 ‘학생들의 호응’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대학측의 상업주의적 경영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교양교육이 당면한 문제는 교양교육을 한낱 ‘처리해 버려야 할 짐’ 정도로 치부하는 학교측과 학생들의 태도만은 아니다. 교양과목은 ‘전공 이외에 일반교양에 대하여 가르치는 과목’이며, 교양은 ‘사회 생활이나 학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행과 문화에 대한 지식’이다. 그런데 우리 교양교육을 살펴보면 본래 교양 교육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수영, 영화의 이해, 인터넷 활용법 등 ‘쉽고 재밌고 실용적인’ 과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명주와 주도’, ‘빵굽기’, ‘현대사회와 패션’ 등도 버젓이 교과목으로 올라 있을 정도. 시카고 대학의 경우 문학과 철학을 엮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을 강의하는 ‘펀더멘틀(fundamental)’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할 정도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무게있는’ 교양과목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경향은 세계적 동향과도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이 이미 짜여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커리큘럼을 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학부제하의 교육과정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성균관대의 경우 전공과목 가운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학생들이 기피하는 여섯 과목 정도를 골라 이들 가운데 몇 과목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지정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한신일 성균관대 교수(교육학)에 따르면 이런 방안을 통해 ‘전공필수’ 폐지에 따른 폐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학부제는 학부과정동안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할 것을 요구하는 제도인만큼, 기본적으로 ‘심도있는 교육’과는 상치되는 개념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 4년제 대학의 전공교육은 2년제 대학만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부제 시행 이후 4년제 대학의 최소전공학점이 35-40학점 정도로 줄어든 반면, 2년제 대학들은 교양을 줄여 전공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좌 개설시 ‘대학에 어떤 분야의 교수가 있느냐’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현 교육과정의 문제점이다. 정진농 부산대 교수(영문학)는 “교수가 해당학과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다 보면 세력을 형성하게 되며, 교육과정 편성에 있어서도 이 세력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결국 지금의 학부과정은 전공, 부전공, 교양, 그 어느 하나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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