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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다시 공간ㆍ장소에 주목하는가
왜 우리는 다시 공간ㆍ장소에 주목하는가
  •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 인문학 연구단
  • 승인 2012.04.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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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연재를 시작하면서

공간에 주목하는 이 기획의 목표는 무엇인가. 여기서 기억공간의 역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파란만장한 조선의 심장부, 독립운동가의 장소, 일제침탈의 현장, 또 다른 항일 거점으로서 대륙, 건국과 근대화, 분단의 아픔과 현장, 민주화운동 그리고 산업화의 명암을 기억하고자 한다. 이는 근대적 공간이 근대적 시간 곧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역사라는 균질된 선형적 시간의 틀 가운데 배치돼 민족국가의 정체성과 영토를 공고화하는데 기여했던 역사를 반복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결코 이 기획물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앙리 르페브르, 미셸 푸코, 미셸 드 세르토, 데이비드 하비 등의 연구 성과가 제공한, 공간에서 나타난 권력과 저항, 전통과 혁신, 삶과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존중한다. 그리해 지금까지 너무나 잘 알려져서 낡아 보이고 관심권에서 멀어진 공간과 장소를 로컬리티의 인문학 연구단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독자에게 다가간다.

왜 로컬리티의 인문학 연구단의 시각인가

이 기획이 다루는 공간과 장소들은 모두 한국근현대사의 트라우마를 표상한다는 공통성을 가진다. 특히 식민지시기를 거친 포스트 식민도시 서울과 부산에 집중된 장소들은 과거에 식민도시 시절의 기억의 환경이 과거의 극복이란 명분으로 급속도로 파괴된 양상이므로 공간이 내포한 의미의 중층성을 잘 포착하고 설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대부분의 중요한 장소들은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함께 작동한다. 그 결과 더욱 첨예한 관점이 교차하며 작동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면 공간을 단순한 서술과 묘사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필요한 것은 역사적 장소의 표상에서 재현된 이념, 가치, 구조, 헤게모니, 역사화의 시공간성을 통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트라우마 공간을 지배적 기억과 기존의 공간정체성을 무조건 답습하지는 않는 새로운 공간인식의 계기로 반전시켜 내는 것, 이 기획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소장 김동철) ‘로컬리티의 인문학’은 구체적 현실과 접촉하며 미시적 관찰과 이론화를 시간ㆍ공간ㆍ표상ㆍ사유의 차원에서 동시에 추구하며, 사변에서 벗어난 인문학의 새로운 학문적 준거와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로컬의 현실문제에 대한 실천과 기존의 로컬리티 이론을 종합하는 메타이론으로서의 로컬리톨로지(localitology)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물질생활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람, 정보, 물자의 이동성이 가속화되는 이동성으로 전환(mobility turn)까지 나타나면서 일관된 의미와 정체성을 제공해주던 역사는 점차 정신적 지위를 상실하고, 시간의 공간화 현상이 대두했다. 그 결과 기존의 시공간 전망이 역전되고 공간에 대한 우상숭배(topolatry)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 배경은 과거가 현대의 궤도로 급속하게 빨려들면서 더 이상 집단적 정체성이나 미래를 전망하는 성찰의 영역이 아니라 관광과 쇼핑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과 연관돼 있다. 공간은 의미있는 성찰의 공간이 아니라 자본이 상품화시킨 장소(place)로 전락했다. 그런가하면 차이와 구분을 내세운 신자유주의 공간이 관철되면서 공간은 내부적 모순과 갈등의 양상이 은폐되고 도리어 평평해졌다. 삶의 장소 그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위상학적 전환(topological turn)은 그 산물이다.

로컬리티의 인문학 연구단이 공간에 주목하는 방식

이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기억은 사라졌다. 이러한 공간의 범람 속에서 로컬리티의 인문학은 인간 삶의 근원적 바탕이 비롯되는 공간을 주목하고 토폴로지적 관점을 환기시킨다.

기존 공간연구가 공간의 구체성을 경험론적 분석으로 접근한 것을 넘어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의 산물로서 공간기호, 공간담론에 주목하고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의 성과로서 문화정치와 문화의 정치경제학 개념을 계승하며 공간의 생산, 공간적 실천, 공간재구성, 공간의 표상, 표상공간, 차이공간, 공간횡단, 공간정치 등의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에 주목한다.

전지구화가 국민국가 영토를 끊임없이 재편성하며 하부단위인 로컬을 세계화의 직접적 관철 대상으로 삼고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를 거듭하며 생활터전을 와해시켜 유동하는 삶을 강요하는 현실을 목격한다. 도시재개발(gentrification), 공간규모 재조정(rescaling)과 그에 따른 공간투쟁에도 주목한다.

또, 공간을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한편 비교적 고정된 물적 토대에서 작동하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심리적 기제로 구성된 기존 공동체들을 점검해 미래 공동체의 전망을 세우고자 한다. 공동체에 관심은 공간을 과거지향적 차원과 미래지향적 차원을 복합적으로 작동시켜 이해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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