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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강의 잔물결, 썼다가 지울 이름들
다뉴브강의 잔물결, 썼다가 지울 이름들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2.04.18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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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⑮ 부다페스트의 두너강에서

‘열린 창문 안을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보들레르는 산문시「窓」에서 노래했다. 그렇다. 정작 거리를 떠돌 땐 보이지 않던 것들. 오스트리아 빈을 뒤로 하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가며 눈을 감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어른대는, 푸른 다뉴브 강 물결, 왈츠의 선율.  

즐거운, 창의적 종말이 아닌가, ‘세기말 빈’은. 그 앙가슴을 다 풀어헤쳐볼 순 없지만, 그것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사과나무 Ⅱ」에서, 과감하게, 잘려 버린, 사과알과 나뭇잎 더미 같은 것. 대담하게 ‘처리된=떨어져나간=보이지 않는=어딘가 묻혀있을’ 것들은 20세기를 빛낸 천재들의 창조적 고통과 상처로 회상되고, 결실했다.

이제 헝가리와 부다페스트를 생각해본다. 아르놀트 하우저, 죄르지 루카치, 카를 만하임. 20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지식인들 아닌가. 부다페스트의 지적 랜드 마크다. 그런데 지금 부다페스트는 어떤 모습일까. 차창에 스치는 풍경을 좇아갈수록 궁금해질 즈음, 기차는 부다페스트 동역(Budapest-Keleti Palyaudvar)에 닿는다. 빈에서 세 시간 정도의 거리. 호기심 속에 자태를 드러낸 낡은 역사. 어딘지 초라하다. 고등학생 시절 국어 책에서 배웠던, 반공 교육 용 김춘수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탓일까. 이곳이, ‘다뉴브 江에 살얼음이 지는 東歐의 첫겨울.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는 곳인가. 詩에서 되묻듯,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나도 묻는다.

두너강 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시청사 건물(사진 왼쪽). 오른쪽 편에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른 세체니 다리가 보인다. 사진=최재목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두너(=다뉴브) 강은 2천860㎞. 독일의 검은 숲에서 시작돼 유럽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흑해로 흘러드는데, 볼가강 다음으로 길다. 빈,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의 세 수도가 그 어미 강의 젖꼭지를 물었다. 보통 영어로는 다뉴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독일어 ‘도나우’, 부다페스트에서는 헝가리어로 ‘두너’, 베오그라드에선 세르비아어로 ‘두나브’. 모두 ‘흐름’을 뜻하는 고대 이란어 ‘다누’에서 왔단다. 하나의 흐름을 제 각기 다른 언어로 쓰고, 지우고. 그렇지, 이름은 원래 썼다가 지우는 것. sous rature(under erasure).‘물 위에 이름이나 써 보고/-아니, 아니,/고개 저어도 보고’(이태수,「다시, 그림자의 그늘」)처럼.「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김소월,「招魂」)처럼. 자신의 묘비명에 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적지 말라고 유언한 쇼펜하우어나 퇴계의 심경이 알 듯도 하다.

다뉴브 강이 한국인들에게 익숙해진 건, 루마니아의 요시프 이바노비치가 군악대를 위하여 작곡한 왈츠곡「다뉴브강의 잔물결」(Danube Wellen Walzer) 덕분. 경쾌한 군악곡이 식민지 공간에선 어찌 허무 찬란한「죽음의 찬미」로 번안되고 말았던가. 일제강점기인 1926년 8월,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尹心悳(1897~1926)이 발표한 음반의 타이틀곡「死의 贊美」. 총독부 관비 유학생이었던 그녀는 극작가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자살로 삶을 끝냈다. 노래처럼.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너의 가는 곳 그 어대냐/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눈물로 된 이 세상이/나 죽으면 고만일까/행복 찾는 인생들아/너 찾는것 서름’.

동유럽의 파리·다뉴브의 진주로 불리는 부다페스트는 두너 강을 사이에 두고 각기 발달한 부다와 페스트가 1873년 한 행정구역으로 묶인 것. 세체니 백작의 공을 기리기 위한 세체니 다리의 주례로 좌안(동쪽)의 페스트와 우안(서쪽)의 부다-오부다(‘옛 부다’의 뜻)가 새 살림을 차린 셈. 부다에는 왕궁과 요새 등 헝가리 역사의 영욕을 상징하는 건물들로, 페스트에는 비즈니스와 문화 활동으로 번성하다.

세체니 다리 입구 모습. 사진=최재목

두너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젖이 돌지 않아 어쩔 수 없어 나를 멀리 아버지를 따라 떠나보냈던 내 엄마 생각도 난다. 물길은, 숭숭 구멍 뚫린 젖가슴 열어젖히고, 생명을 좇아 떠도는 流浪 아닌가. 어느 시인이 그랬지. ‘너 낳고,/젖통이 고드랫돌처럼 굳어서 젖 한 방울 안 나오는 거여.(...)/어찌어찌 다시 젖이 돌아 그 상처투성이를 빨고 네가 이만큼 장성했다만, 그래서 네가 선생질에다가 글쟁이까지 하는가 싶다 분필이나 펜대 놀리는 거, 그게 다 남의 피고름 빠는 짓 아니것냐?/어디, 구멍 숭숭 뚫렸던 젖통 한번 볼 겨?’(이정록,「강」)

여러 겹 접은 시내 지도 한 장을 챙겨 시내 투어용 순환버스를 탄다. 지도를 펼치다 문득 내 눈에 든 광고. 두너강 유람선 내 ‘spoon’이란 까페 광고. 아, 거기, 우리 조선시대의 구리 숟가락 같은 그림이! 꾸부정 굽어 다뉴브 강의 물결 같다. 그래 강은 숟가락이지. 엄마의 젖줄처럼, 생명 있는 것들을 살리고, 굿 바이! 굽이치며 다시 유유히 흘러가는 것. 어디서나 강은 모두 눈물겹다. 오후, 나는 세체니 온천에 몸을 담그고, 조용히 온몸으로 부다페스트를 느끼며, 피로를 푼다.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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