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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릴레이 기고’ 전통 … 사자성어·학이사 “세태 꼬집어”
지식인들의 ‘릴레이 기고’ 전통 … 사자성어·학이사 “세태 꼬집어”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4.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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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기획으로 본 교수신문 20년

“‘지성’이라는 것은 한 문화공동체에 지속적인 지적 각성을 촉구함으로써 ‘깨어있는’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는 존재다.”

1997년 교수신문이 펴낸 논쟁집 <열린지성> 창간사에서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과)는 “단순히 전문적 지식만을 추구하는 지식인 모두를 지성의 담지자라고 부를 수 없다”며 쓴소리를 날렸다. 인접지식의 관계성 속에서 전반적인 상황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 것이다. 지성인에게 요구하는 건 바로 ‘통찰력’이다.

계간지 <열린지성>(1997년)

교수신문 20년의 발자취도 지식인 집단의 성찰을 오롯이 뒤좇았다. 1997년 여름부터 내놨던 계간지 <열린지성>은 지성사회의 음지에 머물렀던 학술담론을 공개토론 형식을 빌려 지면화 했다. 창간호에서 다뤘던 근대와 탈근대의 과제, 역사와 현재, 열린사회를 향한 논단 등은 근현대 지성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려던 시도였다. <열린지성>이 담아낸 지성사는 창간호 서문에 새겨진 것처럼 “학제적 성격뿐 아니라 생각의 열림과 소통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지성사회가 요구받는 열린 생각과 학제적 소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학제간 소통에 초점을 맞춘 <열린지성>은 2001년 10호(가을·겨울)를 끝으로 5년의 대장정을 마쳤다. 9·11테러, 소비자본주의사회, 생명공학·생명복제 등 <열린지성>은 현재시점에서 학계의 논쟁을 이끌어 냈다. 현실에 대한 즉각적인 진단은 당시 민주정권의 교체와 맞물린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지성사적 요구이기도 했다.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2002년)

교수신문은 지체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곧바로 학계의 심층부를 파고들었다. 서구지식의 종속성과 허구성을 걷어낸 ‘우리 현실의 이론화’라는 새 담론을 던진 것이다. 기획연재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는 이러한 고민의 산물로,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리 이론에 대한 학계의 자성적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탈식민주의 글쓰기(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 △분단체제론(백낙청 서울대 교수) △민중신학(안병무) △동양학 논쟁(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경제사학·내재적 발전사학(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 △분단사학(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 등과 같은 주제는 당시 사회적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는 1980년대 사회민주화 이후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학계에 ‘자생적 학문 모색’이라는 지식인의 역할을 추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종시대 논쟁(2004년)

창간 10년을 거치며 지식인들의 ‘릴레이 기고 논쟁’은 교수신문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거침없으면서도 도발적인 논쟁이 날아들었다. 고종시대 논쟁은 2004년 초, 식민지 근대화론의 총합적 저서 『고종시대의 국가재정 연구』를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조선의 재정제도 연구에 심취해 있던 경제학자 김재호 전남대 교수가 서평을 통해 본격적인 논쟁에 불씨를 당겼다. 두 교수는 반론에 반론을 거듭했다. 역사학계 바깥에 있던 학자들이 하나둘 관전평을 들고 논쟁에 뛰어들면서 논의는 한층 풍부해졌다. ‘자생적 근대화론’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대한제국을 재조명했음은 물론, 생생한 토론 역사의 교재로 활용할 만큼 생산적인 논쟁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2005년)

일명 ‘최고를 찾아서’ 시리즈는 유일한 전문지성지로서 교수신문의 의지이기도 했다. 2005년부터 연재한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는 그야말로 제대로된 번역본을 가려내고, 그 과정에서 이끌어낸 논쟁을 통해 학계의 시선을 학문 본연의 문제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듬해에는 예술분야로 눈을 돌렸다. ‘한국의 美-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는 학계뿐 아니라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작업이었다. 김홍도의 ‘풍섭화첩’을 시작으로 회화, 공예, 건축, 조각 분야에서 총 40점을 선정했다. 매주 지면 하나를 할애했고 한국 예술의 향연은 1년이나 이어졌다.

전국구 스타 ‘올해의 사자성어’(2001년)

창간 10주년은 걸출한 기획이 쏟아져 나온 해였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교수신문 제2의 도약을 알리는 발판이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해를 돌아보면서 세태를 꼬집는 세밑기획이다. 2001년 송년호에 실린 ‘五里霧中’은 계약제와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나날이 바뀌는 교육정책을 꼬집었다. 특히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했던 2004년은 주목할 만하다. ‘黨同伐異’(같은 파끼리는 한패가 되고 다른 파는 배척한다)는 세인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신호탄이었다. 이후 ‘올해의 사자성어’는 연말·연초를 장식하는 콘텐츠로, 각종 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2012년 올해는 掩耳盜鐘(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뽑았다. 한미FTA 강행처리, 일방적인 4대강사업 추진,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냉혹한 비판을 가했다는 평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새해 첫날 각종 매체의 1면을 장식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패러디에 패러디를 낳는 등 교수신문의 ‘효자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2011년)

대학이 보유한 각종 유·무형의 자산을 발굴해 낸 특별기획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는 대학의 본질을 되새겨 보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취업중심으로 학제가 재편되고, 대학이 점점 학원화되는 시대에 대학과 학문의 본질을 되짚어보자는 의미였다. 단국대 30년의 기록물 ‘한한대사전’부터 숙명여대의 ‘한국음식연구원’까지 총 13편의 대학유산을 소개했다.

20년의 소산 ‘학이사’

교수신문 20년을 질기게 이어온 기획이 있다. ‘대학을 둘러싼 학인들의 고뇌’의 소통창구 역할을 자임해온 ‘學而思’다. 1992년 4월 15일 창간호의 주인공은 이동순 영남대 교수(국문학)였다. “모든 탐구는 스스로의 넉넉한 재량으로 커가야 하고, 집념어린 성찰이 바탕돼야 한다.” 이 교수는 시시비비를 꿰뚫어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의 학문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이 대학가를 강타하는 요즘 ‘學而思’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대학 존폐의 위기에도 학문과 학자의 소신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교수신문이 걸어온 길은 대학과 지성사회 ‘본질의 회복’이었다. 교수신문을 잉태한 사학비리, 교권침해, 시간강사 문제 등 학원 민주화의 열망은 여전히 편집국의 최우선 이슈다. 최근에는 대학평가, 대학 구조조정을 비롯, 학문후속세대의 고민 등 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교수임용웹사이트 ‘교수잡(www.kyosujob.com)’은 학문후속세대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고, 교수 인력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교수신문 20년의 걸출한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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