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0:10 (토)
세밀한 독해로 역사·문화적인 패러다임 포착 시도
세밀한 독해로 역사·문화적인 패러다임 포착 시도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4.17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허학보> 34호, 역사적 형식 통해‘텍스트 기원 해명’다뤄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상허학회(회장 박헌호·고려대)가 <상호학보> 34호를 내놓았다. 9편의 논문을 실은 이번호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두 논문을 발췌해 소개한다.

허민의「탈-중심적 문학사의 주체화와 그 가능성의 조건들」은 임화의 신문학사를 새롭게 독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임화의 신문학사 서술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당연한 듯이
전제했던‘문학사의 이념’, 즉 민족을 상상하게 하는 시공간의 문화적 창출이라는 명제를 비판하며, 당대의 문맥 속에서 신문학사를 다시 읽고 있다.

이렇게 읽어냄으로써 신문학사의 임화가 오히려‘네이션 내부의 비동일성’을 근대 사회의 구성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임화는 보편적인 것의 특수적 전개를 제시하기 위해 문학사를 서술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구근대문학의 보편성 그 자체가 하나의 특수한 방식의 수행이 낳은 결과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혜령의「사상지리의 형성으로서의 냉전과 검열」은, 지정학적 경계가 표현의 제도적·심리적 규율체계이자 존재-장소에 대한 상상과 이동성을 배치, 규율하는 권력-지식으로 작용하는 측면을 지시하기 위해‘사상지리(ideological geography)’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흥미로운 개념을 적용해, 해방 후 38선을 넘는 행위가 정치적 표현으로 간주됐던 상황이 사상통제와 검열의 일반문법을 형성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분석을 통해 특히 만주에서 남한으로 이동해 온 염상섭의 경험은 사상지리의 재현체계를 부단히 의식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탈-중심적 문학사의 주체화와 그 가능성 조건들(허민) : 임화의 아시아적 정체성론은 단지 서구의 문명사적 논리에 포섭된 결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시아적 정체성론이 신문학사에서 어떠한 논리적 기능을 떠맡고 있느냐는 것이다. 임화는 아시아적 정체성에 관해, 이는 결국“서구의 근대 사회 제도를 수입 이식하지 않고는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사회제에의 전화, 과도를 불가능케 한 조건을 만드는데 결착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곧이어, ‘근대사회란 것도 결코 한 국가나 지방의 폐쇄적 독존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화를 특징’으로 한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즉 임화는 아시아의 봉건사회를 근대 사회의 성립조건인 세계화의 계기이자 가능-공간으로서, 지위를 약간 전치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아시아의 발전상 지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미성숙한 상태야말로 오히려 세계화의 계기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장소로서, 근대사회의 중요 조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문학사에서 아시아적 정체성론은 ‘이식’의 조건을 고찰하기 위한 이론적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지리의 형성으로서의 냉전과 검열(이혜령) : 사상지리는 과거소급주의적이다. 특히 식민/탈식민의 경계인 1945년 8.15, 그 시간에“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물음은 식민/탈식민의 집단적, 개인적 경험과 기어게 대한 재구성을 요구한다. 해방 직후 식민지 경험과 기억을 다룬 어떤 텍스트들은 식민지 시대에는 쓸 수 없었던 것들을 쓰면서 식민제 텍스트와 요철을 이루며, 가정법과거완료의 원망을 드러낸다.

식민지인들이 쓸 수 없었던 것은 식민지인들의 집단적, 개인적 저항행동과 그것에 대한 식민지 권력의 탄압이며, 무엇보다 그것과 결부된 식민지 원주민들의 물질적 육체적 고통에 관한 직접적인 서술이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