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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60 빈대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60 빈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4.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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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도 낯짝이 있고 빈데도 콧등이 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다’란 쓸데없이 잘못을 저질러서 끝내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요, ‘족제비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다’는 것은 지나치게 염치가 없는 사람을 나무랄 때를 일컬으며, ‘빈대 붙다’란 속되게 남에게 빌붙어서 득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빈대(Cimex lectularius)는 절지동물의 반시목(노린재목), 빈댓과의 곤충으로 3천500년 전에 박쥐에 처음 기생했으나 사람이 동굴생활을 하면서 옮겨 붙었다고 여겨지며, 새나 설치류에도 낀다. 빈대(bed bug)는 적갈색에다 납작 둥그스름하며, 앞날개는 퇴화해 흔적만 남고 뒷날개는 숫제 없다(半翅類). 야행성이라 낮에는 침대 틈새나 방구석에 숨었다가 밤이면 잠자는 숙주의 피를 빠는데, 녀석들은 몸이 납작한지라 작은 틈새에 숨기에 알맞게 진화한 것이고, 그 특징을 따 ‘빈대떡’이 생겨난 것이리라.

핏속의 DNA는 범죄과학수사에 활용

배에는 현미경적인 털이 많이 나고, 체장은 4~5mm, 너비는 1.5~3mm이며, 알에서 갓 깬 유충은 투명하고 옅은 색이지만 6번 탈피를 해 성충이 되면서 갈색을 띤다. 길쭉하고 예리한 입술 침(吻針, stylet)으로 찔러 피를 빠는데 평시엔 턱 밑에 오므려 딱 달라붙여 둔다 하고, 보통 5~10분이면 피를 다 빨아 배가 빵빵하게 살집이 오르고 새빨개진다.

빈대를 만져보면 푹 익은 산딸기 냄새(노린재 냄새)가 나니 ‘臭蟲’이라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빈대 핏속의 DNA가 90여 일까지도 변하지 않고 성성해서 범죄과학수사에 쓴다고 한다. 또 물린 자리는 가렵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고얀 놈들이 이토록 한껏 피를 빨고는 벌건 똥을 싸질러 놓으니 벽지가 피 칠갑으로 말이 아니다.

1940년 초에 쓰기 시작해 1970년 초에 환경 문제로 회수되고 말았던 DDT 덕에 거의 사라졌으나 미국 등지에선 느닷없이 2000년대부터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흡혈곤충인 이, 벼룩, 빈대 따위에 우리도 지질히 괴롭힘을 당했지만, 아마도 필자 생각엔, 우리나라에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은 살충제 말고도 연탄가스가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나 벼룩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바퀴벌레, 개미, 거미, 지네 따위의 포식자가 성가신 빈대 놈을 잡아먹는다고 하나 ‘생물학적 병충해 방지’가 용이치 않다. 이놈도 꼴 보기 싫고 저 놈도 징그러우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근래 들어 빈대에 공생하는 세균이 없으면 산란능력이 확 줄어드는 것을 알아내고 그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개발하고 있다고도 한다.

녀석들은 페로몬을 분비해 먹이나 짝을 찾는다. 수컷은 날이 휜 기병용 칼을 닮은 음경으로 암컷의 배(체강)를 푹 찔러 정자를 몸 안에 넣으면 그것이 피를 타고가 난소를 찾아든다. 다행한 것은 배에 있는 V자 모양의 홈에다 찌르기 때문에 암컷에 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 살게 마련이다. 그런데 가증스럽게 수놈들끼리도 그짓을 하니, 다른 수컷들이 페로몬을 분비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단다. 하루에 2개의 알을 낳으며, 평생 암놈 한 마리가 15~500개를 낳는데, 알은 솔기 등에 달라 붙인다.

故정주영 회장, 빈대에서 지혜와 끈기 배워

누구나 실수를 통해 배운다. 故정주영 회장이 직원들을 나무랄 적에 ‘빈대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스무 살 안팎 나이에 노동일을 할 적에, 허름한 노동자 합숙소에 빈대가 하도 덤벼 밤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 애써 침상의 네 다리에 물을 한가득 담은 세숫대야를 놓았다고 한다. 간신히 며칠은 뜸했으나 얼마 지나 또다시 빈대가 들끓어 눈독을 들이고 봤더니만, 흥! 코웃음 치며 거침없이 방벽을 볼볼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누운 사람 배위로 수직 낙하하더라는 것. 한 마디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한방 먹인 하찮은 빈대에서 지혜와 끈기를 배웠다고 한다.

빈대는 체열이나 체취, 이산화탄소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것으로, 더듬이에는 열감지기(heat sensor)가 있
다 한다. 종에 따라 다 다르지만 16.1°C 이하에선 동면에 들고, 지독한 녀석이라 먹지 않고도 반년 넘게 견딘다고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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