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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축구와 學緣
[대학정론] 축구와 學緣
  • 논설위원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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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9:21:31
월드컵은 끝났다. 축제의 뒷자리를 지켜보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허전함도 남게 마련이고, 시간이 퇴색하면서 뒷말이 잡초처럼 무성해지기 때문이다.

월드컵 감독을 맡은 이방인의 ‘용병술’과 人事 방식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그만큼 신선하고 독특해서다. 왜? 그는 학연이나 지연, 그 어느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선수들의 기본 체력을 중시하면서 고르게 등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주의가 판치고, 학연과 혈연을 크게 따지는 우리 풍토에서 본다면, 정말 신선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대학과 학계가 어제와 다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낡은 구태가 있다면, 그것은 이해관계를 앞세워 학연이나 혈연을 중시하는 ‘연고주의’, 달리 말한다면 ‘패거리주의’일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학부 출신 교수임용 쿼터제가 시행된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쿼터제 도입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최근 교수신문과 하이브레인넷에서 공동으로 실시한 ‘교수임용제도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는 저간에 떠돌던 醜聞이 사실임을 입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교수임용에 응시했던 지원자들의 상당수가, 비록 일부지만 우리 대학들이 아직도 학연과 정실에 의해 내정자를 미리 정해 놓고 임용 공고와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신진 학문세대로 불리는 이 지원자들이 교수임용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물질적 부담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행위가 기껏 시정의 흥정행위처럼 값싸게 왜곡되는 현실에서 이들 젊은 세대가 겪는 ‘허무주의’는 서둘러 치유해야할 정신적 刺傷이 분명하다.

“아예 정부가 나서서 박사인력을 관리하라”는 자조적인 말에서부터 “환골탈태하는 사학의 변화 없이는 교수임용의 공정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뼈있는 진단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교수 입직 관문에서 쓴 고배를 마신 이들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들은 교수임용시 가장 무게를 둬야 할 부분으로 ‘연구실적’, ‘강의능력’, ‘인성’, ‘경력’ 순으로 꼽았다고 한다. 연구실적과 강의능력이란 학자로 가는 ‘기초체력’이다. 이 기초체력을 무시하고 ‘내 사람’ 혹은 금품 주고받기를 통한 ‘사람 고르기’에 허우적거릴 때, 대학과 학계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현실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투명한 선택은 아름답다. 그것은 한없이 낮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뚜껑을 열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희망적이다.

모두가 환호하고 기뻐하는 축제의 형태로 교수임용이 이뤄질 수는 없을까. 임용 관문을 당당하게 통과한 젊은 교수들에게는 고배를 마신 젊은 세대가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그리고 좌절을 겪은 이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서로 보내는 아름다운 광경은 ‘상상’속의 일일까. 일부에서는 ‘낙오자의 변명’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학문세대가 이렇게 항변하는 현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그래서 이들이 언젠가 ‘네 탓’을 지적하기보다 ‘내 탓’에서 부족함을 찾아 기꺼이 고개 숙일 수 있는 눈부시게 투명한 대학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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