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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자본주의 4.0’에 걸맞은 인재양성
원로칼럼_ ‘자본주의 4.0’에 걸맞은 인재양성
  • 이우용 서강대 명예교수·경영학
  • 승인 2012.04.0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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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용 서강대 명예교수·경영학
서너 해 전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명문 카네기멜런대로부터 전해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카네기 졸업생들이 다른 대학 졸업생들에 비해 성취도와 성장 속도에서 뒤처진다는 정보에 놀란 이 대학 경영진이 그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 때문이었다.

이런 수준의 인재들이 경쟁하는 직장에서 그들의 성취와 성장을 좌우하는 요인은 업무능력이 아닌 인품, 특히 사회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전자는 그 비중이 15%에 불과한 반면 후자는 무려 85%나 되더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보다도 순도 높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철저하게 업무능력으로 개인과 기업의 성패가 판가름나던 미국 직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해 공산권 국가들이 시장경제를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는 무한정 순항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를 마감할 무렵 찾아온 IMF 위기 이후 미국 월가를 비롯한 세계 금융권의 절제되지 않은 탐욕이 독버섯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2011년 마침내 금융대란으로 폭발하면서 자본주의는 질타와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동안 우리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맹신해 왔다. 그러나 그 손이 인간의 탐욕까지를 제어하는 데는 실패했고 그 결과 오늘의 역경과 수모를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성장과 번영이라면 이를 이뤄줄 경제 운영방식으로 자본주의만한 것이 없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도 어쩐지 못한 인간의 탐욕과 부의 편중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추가된 자본주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자본주의 4.0’ 또는 ‘따뜻한 자본주의’다.

기존의 자본주의인 ‘자본주의 3.0’과 새로 제안된 ‘자본주의 4.0’의 본질적 차이는 그 온도와 의로움에 있다. 전자는 차고 후자는 따뜻하다. 전자는 때로 불의도 불사하지만 후자는 일관되게 정의로워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두 제도의 운영 주체가 될 인재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 대학들이 이전과는 다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자본주의 4.0’에 걸맞은 인재란 과연 누구인가. ‘자본주의 4.0’도 그 본질이 자본주의인 한 업무능력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것에 부가해서 대학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자질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첫째, 따뜻한 인재다. ‘자본주의 4.0’에서 부를 고르게 배분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가진 자가 자발적으로 못 가진 자나 덜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진 자의 가슴이 따뜻해야 한다.

둘째, 곧은 인재다. 사실 이전의 자본주의에서는 효율과 성취를 빙자해 불의가 용납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로는 가진 자의 힘으로 불의가 합리화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새 체제 아래서는 이런 일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셋째, 숭고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다. 미국 미시간대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에 의하면 정상적인 경우 경제가 발전하고 성숙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목표와 가치관은 물질적 풍요에서 정신적인 풍요로 전환된다고 한다. 우리도 그럴 때가 됐고, 그래야 한다. 그리고 숭고한 가치관이 바탕에 깔린 사람이라면 따뜻하고 정의로울 개연성이 높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덕목이 전부일 수는 없다. 요컨대 ‘자본주의4.0’을 완성하려면 업무 능력과 경쟁력도 필요하지만 고매한 인품을 갖춘 인력의 양성이 필수적일 뿐 아니라 비중 면에서 인품이 업무 능력을 압도할 것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18세기에 루소가 경고한 바 있다. ‘사람이 자연인에서 사회인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자기애(amour soi)에 몰입하게 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경쟁애(amour propre)라야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때 사회의 수요와 동떨어진 인재를 양성했던 카네기멜런대의 터무니없는 오류를 우리 대학들이 답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일로 사회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더더욱 바란다.

이우용 서강대 명예교수·경영학(전 한국사이버대 총장/한국원격대학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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