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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든 게 없으면 입에서 나오는 것도 없다”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입에서 나오는 것도 없다”
  •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 승인 2012.04.02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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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인문교육과 고전읽기 ❷ 학교에서는 고전을 어떻게 가르쳤나(서양편)

로마의 교육을 실제로 움직인 힘은 진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돈과 경쟁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학교 교육을 좌우하는 힘이 진리가 아니듯이 말이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보고가 그 전거다.

“플라쿠스는 해방 노예의 후예로 특히 강의 방식으로 명성을 휘날렸다. 학생들의 재능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경쟁을 도입했는데, 학생들로 하여금 글을 작성하도록 주제를 미리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품을 걸어 우승자가 가져가도록 했다고 한다. 상품은 어떤 美裝의 희귀 고서였다. 이런 명성 덕분에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자신의 손자들의 선생으로 삼았다. 그러자 그는 학교 전체를 팔라티움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이후 더 이상 다른 학생들은 받지 못했다. 당시는 팔라티움의 일부였던 카툴루스의 집 안마당에서 강의가 이루어졌고, 강의료는 연간 10만 세스테르케스를 받았다. 세월이 준 인생의 몫을 다 채우고 티베리우스 황제 때에 세상을 하직했다.” 『로마의 문법학자』 제19장

플라쿠스는 로마의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바로(Varro)에 비견되는 학자지만, 어쨌든 오늘날,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시험에 해당하는 경쟁을 교실에 도입한 인물이다. 어쩌면 학교의 원래 의미인 놀이터(ludus)를 싸움터(pugnum)로 바꾸어 놓은 원흉인 셈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경쟁은 오늘날 한국처럼 살벌하지는 않았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agathe eris인데, 이는 ‘선의의 경쟁’을 뜻하기 때문이다. 플라쿠스가 처음 도입한 경쟁에 입각한 강의 방식은 전통적인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돈벌이’ 교육사업에 뛰어들지 않은 로마인들 

전통적인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교사가 먼저 텍스트를 소리내어 읽으면(praelectio), 학생들은 이를 따라 읽는다(lectio). 이어 교사가 읽은 내용을 서판(tabula, 밀납을 나무판 위에 씌운 판)에 받아 적고(dictatio), 이를 암송하는 것(recitatio)으로 마무리된다. 옛날 우리네 서당에서 행해진 방식과도 흡사하다.

이에 반해, 플라쿠스는 텍스트와 관련된 어떤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에 대한 글을 짓게 하며 이를 발표하게 했으며 그 발표에 대한 토론으로 강의를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텍스트 내용의 정확한 전달이 전통적인 강의의 요체였다면, 플라쿠스가 도입한 방식은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글을 잘 쓴 사람에게는 상과 상품을 주어 경쟁을 유도했다는 것도 주목거리다. 이렇게 플라쿠스에 의해서 도입된 경쟁 체제는 로마의 학교에서 널리 확산됐는데, 그 전거는 퀸틸리아누스의 보고에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집에서 혼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질 수 있다. 그는 매일 많은 검사와 많은 교정을 들을 것이다. 다른 이의 야단맞은 게으름과 칭찬받은 부지런함이 도움이 될 것이다. 경쟁은 칭찬에 의해서 자극될 것이고, 그는 동료들에게 지는 것을 수치로 여길 것이다. 더 잘하는 이를 능가함을 가장 좋은 일로 간주할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정신을 불 붙인다. 야심은 그 자체론 악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자주 좋은 능력을 획득하는 데에 원인이 된다. 스승들도 나의 버릇들을 살펴주었고, 이는 나에게도 유익했다. 학생들을 반에다 배치했을 때, 그들은 재능의 탁월함에 따라 말하는 순서가 부여되었고, 성취가 뛰어난 이가 있으면, 그의 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보이도록 그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서 연설하도록 했는데, 이에 대한 판결도 뒤따랐다.” <수사학 교육> 제1권 2장 22절

아무튼, 경쟁 결과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을 매겼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일종의 시험에서 이긴 이는 상품도 받았다. 그런데 인용에 의하면, 플라쿠스가 강의료로 일년에 받은 돈이 10만 세스테르티우스였다 한다. 이 강의료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巨富였던 크랏수스가 소유했던 부동산의 싯가가 200만 세스테르티우스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마어마한 액수인 셈이다. 그러니까 학생이 20명만 모이면 당시 로마에서 최대 부호였던 크랏수스의 부동산을 모두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서 두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학교 교육이 이제 단순한 교육 활동이 아닌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업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로마에서 학교 혹은 학원이 하나의 비즈니스로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경제적 이득이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로마에서 교육이 초기에는 그리스 출신 노예들에게 자유민이 되는 길을 제공했다면, 이제는 그리스의 노예들에게 부와 명예를 제공하는 기회의 장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어쩌면 이것이 로마의 교육 시장에서 경쟁 논리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이는 강의 방식의 변화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변화의 핵심은 강의에 경쟁(aemulatio)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는 나중에 로마 학급의 구성 편제에도 영향을 준다. 로마의 학교에서 원래 한 학급의 구성은 나이의 구분을 따랐다. 그런데 소위 능력에 따른 우열반이 나중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학급 구성 방식의 기원은 플라쿠스의 경쟁 방식에 연원했을 것이다.

좌우지간, ‘어느 학교 혹은 어느 학원이 좋다’라는 평에 따라서 학교와 학원의 성패가 갈렸는데, 이런 이유에서 학교와 학원은 각기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 무한 경쟁을 벌여야 했고, 이를 위해 보다 좋은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경쟁 과정 덕분에, 교육은 이제 로마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만약 교육이 로마에서 돈벌이가 되는, 아니 사업적으로도 소위 ‘메리트가 있는 비즈니스’였다면, 왜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처럼 교육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일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로마인이 교육에 참여하기에는 아직 그들의 학문 수준이 낮아서일 것이다. 일단 책이 있어야 하는데, 책들이 모두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었다. 다른 한 가능성은 당대 로마 지식인 혹은 지배층의 교육 참여에 대한 인식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아이들 교육은 노예들이나 하는 짓 정도로 낮추어 보는 시선이 그들로 하여금 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교육에 대한 로마인의 인식 변화일 것이다. 10만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거액을 주고 자식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배경에는 이제 지식과 학문, 그러니까 앎이 정치적 출세와 사회적 성공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회적 변화와 그리고 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숱한 외전과 내란의 와중에서 성공했던 사람들은 무예와 병법에 뛰어난 장군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원로원과 민회를 중심으로 공동의 일과 공동의 재산이 공동의 참여를 통해서 처리되고 운용되는 공화정과 소위 ‘민주주의’의 원리와 방식에 입각해서 로마 사회가 작동할 때에는 사회적으로 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주로 설득력을 갖춘 말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로마 교육시장의 경쟁기준 ‘누가 좋은 책을 잘 가르치는가’

이런 사회 변화가 아마도 로마인들의 가슴에 교육 열풍 아니 광풍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잘 하려면 기본적으로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게 있어야 입으로 나오는 것도 좋다는”, 따라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을 설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변화에 기초해서 로마에서 교육은 흥행에 흥행을 거듭했다. 결론적으로 강의료 10만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거액은 로마 역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인데, 전통적으로 尙武정신과 실질을 중시하는 로마의 인식과 가치가 그리스의 자유정신과 인문학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하겠다. 이렇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돈과 경쟁도 가끔은 좋은 일을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크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 시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단, 옛날 로마의 교육 시장과 지금 한국의 교육 시장 사이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물론, 교육 시장이 돈과 경쟁에 의해 출렁였다는 점은 로마나 한국이나 매 한가지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의 우열을 결정하는 기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경우 그것은 교실에서 치르는 시험 성적이다. 오지선다이든 사지선다이든 “다음 중 아닌 것은?” 따위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잘 고르는 것이 결정적인 기술이고, 이를 잘 훈련시키는 것이 한국 학교 혹은 학원의 경쟁력에 숨은 비전이라면, 옛날 로마의 경우는 누가 좋은 책을 많이 읽히고 잘 가르치는가였고, 이를 위한 강의 방식 개발을 놓고서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로마에도 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마인에게 진짜 시험은 학교 교실이 아닌, 진짜 실력이 요구되는 삶의 시험장인 로마의 광장(Forum)에서 치러야 하는 진검승부였기 때문이다. 로마의 포룸은 원래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입에서 나오는 게 없고, 그 결과는 법정에서는 패소를, 선거에서는 패배를, 때로는 죽음을 가져다주는 진짜 살벌한 곳이었다.

여기에서는 시험 ‘스킬’ 따위의 비전은, 성적 따위의 ‘스펙’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진짜 실력이 요구되는 공간이 포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이 포룸에서 살아남는 비전이라 해서 경쟁적으로 개발했던 게 고작 많이 읽고, 많이 쓰며, 자주 발표하고 깊게 토론하는 것이라는 점에 실망할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실은 공부라는 것이 이게 다이고, 이게 최선의 길이다.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독일 괴팅엔대에서 「알렉산더 누메니유의 단어-의미 문채론」으로 철학박사를 받았다. 키케로의 『수사학』 역서와 「키케로의 인문학에 대하여」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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