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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문사회연구회 예산의 10%, 대학연구소에 지원하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예산의 10%, 대학연구소에 지원하자"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4.02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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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역할 모색한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40주년 기념 학술대회

대학연구소에도 학제간 연구, 통섭이 화두다.‘사회분석’에 치중하는 사회과학과 ‘가치의식의 고찰’이 불가결하다는 인문과학의 통섭을 넘어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통섭으로 지평이 확장되고 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원장 박영렬)은 지난달 23일(금), 연세 삼성 학술정보관에서 개원 40주년 기념 학술대회「사회과학 연구의 좌표, 사회적 역할 주제」를 개최, 국내 사회과학연구소들의 현 주소와 활로로서의 통섭을 모색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사회로 진행된 1세션에서 김용학 연세대 교수(사회학과)는 사회 변동의 추세가 점점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 사회구조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진단하며, 사회과학연구소가 활성화 되려면, ‘수직적 통섭’이 아닌 ‘수평적 통섭’을 강조했다.

사회과학연구소, '수직적 통합'아닌 '수평적 통합'으로

사회현상은 심리학으로, 심리는 생물학으로, 생물은 분자생물학으로 분석하는 수직적 통섭을 배제하고, 인접학문으로 공학과 사회과학, 생명과학과 사회과학을 만나게 하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김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통섭이란 단어보다 connect intelligence, 서로 다른 지식이 결합해 새로운 지식을 낳는 지식 네트워크의 개념으로 접근하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 대안으로 ‘교수식당 한 칸을 지식 공유의 장소’로 설정하여 학제간 교류의 물꼬를 트자고 예를 들었다.

일찍 통섭을 시작한 경험을 듣기 위해 주최측이 초청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과학분야 전문가도 통섭은 난제라고 털어놓았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는 “특정 결과를 염두에 두는 목적지향적 학제간 교류에는 통섭을 적용하기 힘들다”며 성공사례보다는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또한 같은 자연공학에서도 전자공학자, 고체물리학자가 평가하는 가치의 상이함을 들며, 10년 이상 타분야에서 형성된 체질이 과연 소통 강조로 극복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던졌다. 반면 홍 교수는 김용학 교수가 제기한 소통의 공간 문제에 대해 외국 대학 사례를 예로 들며 “교수식당 8인용 테이블에는 사람이 다 차야만 주문이 가능하다. 패컬티 클럽의 시작은 이렇듯 공간 구조의 고민에서 시작한다”고 동조하며 소통의 필요성까지는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통섭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토론을 이어간 강정인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 역시 “통섭은 근본적으로 존재론에 반하는 가치론, 의무론, 도덕론에 담긴 인간의 중요한 통찰을 절대 설명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통섭이론이 수반하는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했다. 강 교수는 융합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융합은 자연과학에 인문학을 접목시켜 생산성 향상, 부가가치 증대를 꾀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라고 현 실태를 꼬집었다.

1세션이 학제간 교류, 통섭의 가능성을 타진한 장이었다면, 2세션은 국내 사회과학연구소의 문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진 자리였다. 이내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은 「대학과 학문연구 : 대학 연구소의 사회적 역할」발표에서, 국내 대학들의 편중된 하드웨어 투자를 날카롭게 비판해 방청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대학이 건물 등 외형적인 면에만 투자에 집중할 뿐, 정작 중요한 소프트웨어인 연구인력에 대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국내 사회과학 대학연구소를 구멍가게형, 유목형, 자립형으로 분류했다. 그는 고려대 아세아연구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한양대 중소문제연구원 정도를 제외하면 자립형 사회과학연구소는 전무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90% 이상의 중소 대학연구소가 장기적인 연구방향,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안정적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현실적인 지원방략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1년 예산 8천억 중 10%를 대학연구소에 지원하자는 것이다. 재정 지원을 확보한다고 해서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통섭을 저해하는 SCI급 논문과 출판 등 획일적인 평가제도도 비판의 도마위에 올렸다.“연구실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는 지금의 풍토로는, 사회과학의 현실을 무시하는 영혼이 없는 연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기업의 사적 이익 개입되지 않은 후원 절실

뒤이은 김상준 연세대 교수(정치외교)의 지적 역시 대동소이했다. 김 교수는 대학연구소가 활성화되려면 “정부지원, 학교지원, 연구자 관심이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교수가 연구소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금, BK21, HK등으로 단기간 연구 인력을 모으는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향이 국내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방식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국내 사회과학연구소에는 ‘왜?’를 따져 묻는 메커니즘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심층적 연구보다는 동태적인 동향분석을 통한 대안제시’가 주를 이루는 것이 국내 사회과학연구소의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펀드 등의 재원이 확보되지 않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연구를 수주 받는 현실로는 공공부문에 있어 깊이 있는 정책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대학 내 사회과학연구소가 직면한 불안정한 재정 문제, 그리고 학문간 통섭의 주문은 쉬운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주제다. 사회자로 참여한 김기정 교수는 “대학연구소가 교내 연구역량들을 효율적으로 결집시키는 연구거버넌스를 만들고, 학제간 연구, 통섭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대학연구소의 역할을 주문함녀서 “대학의 열악한 재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아젠다를 가지지 않는 정부투자, 기업의 사적 이익과 별개의 후원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해결책보다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날 학술대회는 그래도 '이름값'은 한 것으로 보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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