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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에 따르는 요구'가 연구소 어렵게 만들어"
"'재정지원에 따르는 요구'가 연구소 어렵게 만들어"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4.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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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사회과학연구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제시

국내 사회과학연구소의 지지부진한 현실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전 연세대 교수, 정치학, 사진)은 국책연구소와 기업연구소를 운영하며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이 ‘재정지원에 따르는 요구’라고 대답한다. 후원자(patron)가 고객(client)의 노릇까지 겸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23일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40주년기념 학술대회에서였다.

함재봉 연세대 교수
이날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함 원장은 “싱크탱크의 독자적 존립을 위해서는, 독지가들의 조건 없는 기부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국내의 경우, 정부나 기업이 특정 주제로 연구를 의뢰하는데, 이는 부처의 아젠다, 기업의 아젠다일 뿐, 공공 아젠다의 부재를 초래한다”라고 지적했다.

유럽에는 귀족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있다.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필랜쓰러피(Philanthropy, 독지활동, 자선사업의 일환)’ 정신이 됐다.

함 원장은 본인이 활동했던 랜드연구소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미국 사회에 흐르는 ‘필랜쓰러피’이고, 국내 사회과학연구소가 맞닥뜨린 불안정한 현실을 타개하는 데 가장 필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CSIS(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처럼 외교안보를 위한 연구소, 헤리티지 재단처럼 의회에 보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연구소를 예로 들었다.

랜드연구소는 2차 대전 당시 공군의 전략 및 기술 향상을 위해 모였던 우수한 연구 인력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포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연구소다. 게임이론, 선형대수도 랜드연구소의 작품이다. 지금도 랜드연구소는 공군, 육군, 국방장관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통상 5년짜리 수천만불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설립초기 목적과는 달리 랜드연구소는 현재 LA시 교통출입증 문제, 카타르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큰 정책을 담당하다 보니 큰 팀들이 꾸려지고, 자연스레 학제간 연구, 통섭이 이뤄진다. 경제학자와 토목공학자, 정치학자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다. 'SCI급 논문'에 매여 연구실 밖을 나서지 못하는 국내의 실정과는 다른 모습이다.

국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함 원장은 ‘장학금, 빈민구제활동을 넘어 공공성 있는 정책연구에 사회과학연구소가 매진할 수 있도록 ‘필랜쓰러피’로의 진일보’를 요구한다. 국내 사회과학연구소의 생태계는 지금 그 과도기다.

함 원장은 “깊이 있는 정책 연구가 가능하려면 사회과학연구소들의 경쟁, 성과, 책임을 요구받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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