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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32> 한완상의 『民衆社會學』
[우리시대의 고전]<32> 한완상의 『民衆社會學』
  • 강수택 / 경상대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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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9:04:08

한완상(1936~)
1936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6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강제해직당했으며 1980년 복직했으나 김대중 사건으로 다시 복역했다. 그 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정치해금과 복권이 이뤄져 1984년 귀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돌아와 ‘민중사회학’을 출간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김대중 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인적 자원부 장관을 지냈으며 한국방송통신대와 상지대의 총장을 지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1990년대에는 공직 외에 여러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해온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현대사회와 청년문화’(1973), ‘현대사회학의 위기’(1976), ‘지식인과 허위의식’(1977), ‘민중과 지식인’(1980), ‘민중사회학’(1984), ‘한국현실과 한국사회학’(1992) 등이 있다.

강수택 / 경상대·사회학

1984년에 출간된 ‘민중사회학’은 원래 1978∼1980년에 씌어진 글이 ‘민중과 사회’(1980)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을 일부 보완한 것이다. ‘민중사회학’이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사회학적 민중론이다. 이것은 1970년대 들어 신학자와 문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돼가던 민중 논의를 한완상 교수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가다듬고 체계화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작업의 출발점은 민중 개념을 사회학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민중을 정치적, 경제적, 혹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자로 규정하고 즉자적 민중과 대자적 민중을 구분하는 등 오늘날 비교적 친숙해진 여러 의미 있는 개념과 이론 구성을 시도했다.

당시의 폭압적인 군사정권 아래에서는, 이처럼 지배 집단이 아닌 피지배 집단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의 발생, 전개, 좌절과 희망 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비판성과 실천성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지배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피지배집단, 즉 민중을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 세우려는 이론 작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민중사회학’은 주요 관심을 민중 혹은 민중 담론에만 국한시키거나 이들을 단지 연구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은 더 나아가 기존의 보수적인 강단 사회학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대안적 관점 내지는 방법론을 표방하기까지 했다. “오늘의 한국 사회학은 민중사회학의 시각을 취해야 할 때가 왔으며 민중사회학의 규범적 요청에 귀를 기울일 때가 왔다.”‘민중사회학’은 “가치 중립성”을 내세우면서 현실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리던 주류 사회학의 경향에 대해서 민중과 지배세력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실천적 의도로 강력히 도전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치 굴드너의 ‘다가오는 서구 사회학의 위기’(1970)가 미국 사회학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민중사회학’은 “한국 사회학에 대한 사회학(sociology of Korean sociology),” 즉 한국 사회학의 어제와 오늘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성찰적 사회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굴드너의 이 책이 미국의 주류 사회학을 비교적 철저하게 분석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것과 달리 ‘민중사회학’은 한국 사회학의 보수적인 경향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담고 있지 않다. 이런 분석은 부분적으로 후에 이뤄졌다.

하지만 어쨌든 ‘민중사회학’의 기본인식, 즉 소외된 민중을 향한 관심과 이들에 대한 지식인의 연대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민중적 인식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주류 사회학에 대항하는 대안적 사회학의 기본인식으로 자리잡아갔다. 그 결과 학술운동 차원에서 젊은 세대 학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진보적 사회과학계는 이제 민중적 인식을 하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민중적 인식이 1980년대를 통해 폭넓게 자리잡아 갔다고 해서 곧 ‘민중사회학’의 관점이 폭넓게 수용돼 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에 들어 계급론이, 그것도 맑스 레닌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돼 진보적 사회과학계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되면서부터는 계급론이 민중적 인식의 실제 내용을 채워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민중론을 계급론과 차별화시켰던 ‘민중사회학’의 관점은 계급론의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물론 계급론의 관점에서 ‘민중사회학’을 비판하는 이러한 경향 가운데에는 그래도 ‘민중사회학’의 관점을 진보적 한국 사회학을 발전시킬 소중한 지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입장도 있었다. 하지만 소위 정통적인 입장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망에 갇혀” 있는 ‘민중사회학’의 관점이야말로 명백히 극복되고 단절돼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한완상 교수 자신도 민중론의 다른 분야와 달리 민중사회학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에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젊고 비판적인 세대를 통해 민중사회학이 계승 발전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와서 쓴 글에서 그는 1980년대의 진보적인 사회학이 소위 민족·민중 사회학이라는 이름과 달리 계급 환원론에 빠져버렸으며, 그 결과 구체적인 민중의 고통을 방치하거나 추상화하는 愚를 범해 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비교적 멀리 보낸 오늘날 21세기 초의 시점에서 ‘민중사회학’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은 단지 그것이 1970년대라는 지나간 시대의 지적인 유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중사회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군사정권 아래 있던 한국사회의 모순을 과감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비판 사회학 저술일 뿐 아니라 당시의 보수적인 주류사회학이나 그 이후에 전개된 경직된 진보주의 사회학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도 이미 담고 있었던 지혜로운 성찰적 사회학 저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국가나 시장의 강압적인 힘과 논리로부터 자신의 삶의 세계를 지켜나가려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려는 사회학도들에게 여전히 커다란 지혜와 힘을 제공하는 희망의 사회학, 공감의 사회학 저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1970년대 말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태어난‘민중사회학’의 관점과 지혜를 오늘의 현실에 맞게 더욱 발전시키고 심화시킬 과제는 그 시대와 이어진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도 반성하며 돌아 볼 수 있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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