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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화제의 책]『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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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8:58:35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괴물은 사람을 그의 침대에 맞춰 자르거나 또는 늘여서 죽였다. 그에게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침대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시민운동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기를 강요당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저자의 말은 아직 채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시민운동이 시민들의 눈과 귀가 돼 속 시원히 잘 하고 있다는 평가부터 시민단체의 본분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까지. 때로는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했다가 때로는 정권을 왜 비판만 하느냐는 질문까지. 이래도 비난받고 저래도 비난을 받는 시민운동의 기준이 아직은 분명하지 않은 탓이다.

저자는 다시 시민운동을 시지푸스에 비유한다. 지옥 타르타로스에서 언덕 위로 큰 바윗돌을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푸스. 한국 시민운동이 시지푸스의 운명에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의 이런 갈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책 ‘한국 시민운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난 10여 년간의 시민운동의 궤적을 보여 준다. 저자는 그간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과 잡지에 투고한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냈다. 1980∼1990년대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저자의 문제의식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변호사로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로 종횡무진 활동한 저자는 “시민운동은 기존의 질서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질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슴이 따끔한 말이다.

몇 년간의 행적을 담았다 보니 시의성의 측면은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는 미약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한국 시민 운동이 걸어온 여정에 관한 보고서로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시민 운동의 성립과 2000년도의 낙선낙천 운동의 성과, NGO성장의 기록들이 새록새록하다. 시민단체가 다시 찾은 작은 권리들의 의미도 되새기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찬양 일색만은 아니다.

시민단체에 대한 평가를 고르게 담으려 한 노력도 높이 살만하다. 2000년 총선연대 대변인이었던 장원 교수의 추문과 시민 단체가 안고 있는 설립·재정의 문제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우후죽순 생겨난 시민단체에 대한 우려와 열악한 현실 속에서 무관심과 지원 부족 속에 있는 시민운동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기도 한다. 시민단체에 쏟아지는 비판과 편견을 저자는 피하지 않고 받아친다. 아울러 시민운동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제도와 재정, 운영방안 등 제반조건도 세밀하게 탐색하고 있다. 그는 때때로 이런 무관심에 참여연대의 문을 닫고 시민운동을 그만두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대로 “형극이고 고난의 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은 다시 시민 단체로 돌아간다. 그래도 희망은 시민단체에 있다는 것. 기득권의 세력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는 함께 하는 삶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민운동은 꿈을 꾸는 일이다”라 말한다. 그 꿈이 활짝 피어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을 비료로 줘야 할 것 같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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