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9 18:58:50
최근 발간된 ‘과학기술·환경·시민참여’(참여연대시민과학센터 엮음, 한울 刊)는 과학기술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수 전문가에 제한된 종래의 방식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참여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시민참여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조현석 서울산업대 교수(행정학), 김명진 경기대 강사, 윤미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원, 김두환 한국공간환경학회 학술부 부위원장, 장경석 주거복지연대 정책연구실 연구원, 빌레펠트대 박사과정의 정광진씨 등과 함께 이 책을 낸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시민과학센터 제도개혁위원장)를 만났다.
△이 책은 시민과학센터의 관심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더군요.
“1999년 말에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한 모임’이 최초로 결성됐고 이 모임이 지금의 참여연대 산하 시민과학센터가 됐지요. 과학기술 문제의 핵심은 과학기술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가 하는 시민참여로 귀결되고 있어요. 지금껏 우리가 아는 지식은 국민투표, 공청회, 시민단체 대표의 장관자문회의 참여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토론을 거쳐 의사결정에 참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무렵 서구에서는 과학기술을 맹목적인 실험으로 생각하는 리듬이 깨지고 과학기술의 사회나 환경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기술을 과학자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하지 않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형태를 고민하게 된 것이죠. 이 시기 이후 거의 유럽 전역에서 여러 가지 모델이 실험되고 파기되고 개선되는 과정을 겪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죠. 저희들은 이런 서구의 경험을 바탕을 우리 실정에 맞는 여섯 가지 모델들을 선별해 하나씩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여러 가지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셨더군요.
“저는 이 책이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과 환경에 관련된 메뉴얼로 보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이해당사자, 일반시민들에게 효과적인 답변을 제공하도록 여섯 가지 모델들을 제시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민운동가들,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행정실무가들이 우선적으로 이 책을 봤으면 합니다. 아울러 이 책을 만들면서 소위 민주주의에 관심 있는 학자들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참여민주주의가 좋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를 상의하자고 하면 자신의 영역 밖으로 간주합니다. 정치학자들이나 행정학자들조차 원론만 이야기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시민참여 모델은 주민투표와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주민투표와 다른 점은 시민참여 모델들에는 소통과 토론과정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주민투표나 국민투표는 이해당사자들의 의사표시를 통해 선호도를 집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습 효과가 기대되기도 하고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시민참여 모델이 전문가 모델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제시하신 모델중 비교적 우리사회에 적합한 것을 꼽아보시겠습니까.
“시민배심원제, 규제협상, 시나리오 워크샵은 사안에 따라서 활용이 가능합니다. 시민배심원제는 전화번호부를 통해서라든가, 랜덤 샘플링을 통해서 배심원을 선정하고 학습, 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정책 당국에 이를 수용하는 방식입니다. 시민대표 배심원 수가 20명 미만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시민의견을 수렴할 수 있습니다. 규제협상의 경우 환경과 관련된 지역의 이익갈등이 첨예할 때 아주 큰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초구의 화장장이라든가 쓰레기 소각장 등 혐오시설 처리 문제, 동강댐 건설 문제, 그린벨트 규제 문제 등도 이에 해당합니다. 시나리오 워크숍의 경우 개발자, 시민, 공무원, 전문가의 네 그룹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해 합의 도출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표성을 유지하면서 전망을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이번 연구결과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생각이십니까.
“모델 중 일부는 참여자에 의해 실제 실행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나라의 사례를 좀더 수집해보고 앞으로도 구체적인 검토를 거치도록 할 것입니다.”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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