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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_ 한미 FTA와 공공정책
시론_ 한미 FTA와 공공정책
  • 김대원 서울시립대·국제경제법
  • 승인 2012.03.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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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서울시립대·국제경제법
우여곡절 끝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15일 결국 발효됐다. 굳이 ‘사실의 규범적 효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기정사실이 돼 버린 것에 쉽게 체념하고 적응하려는 우리네 정서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과거의 논란을 접어두고 미래지향적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될 만한 시점이다. 특히 국가 경쟁력 제고의 강력한 수단으로 포장돼 시민사회의 당연한 우려와 비판들을 흘려듣고 일방적으로 추진돼 온 한미 FTA인 만큼 사후적이나마 그 제도적 파급효과에 대한 면밀한 대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우리 법제와 충돌 가능성 높아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도 그러했지만 한미 FTA의 생산성을 가름하는 중요한 지표는 역시 한미 FTA가 향후 우리의 공공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공익을 위해 시장경제의 폐해를 교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공공정책의 본질이라면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를 모델로 하고 있는 한미 FTA는 틀림없이 우리의 공공정책 추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욱이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균형 있는 경제 성장과 약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국가의 통제가 인정되는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를 헌법상 채택하고 있는 우리 법제와 한미 FTA는, 공공정책의 추진이라는 상황에서 충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떻게 양자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그 조화적 관계 설정을 통해 이미 제도화된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높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미 FTA의 관련 내용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찾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먼저 한미 FTA의 ‘간접수용’의 문제다. 정부의 규제가 수용이나 국유화와 동등한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의무화하고 있는 간접수용은(한미 FTA 11.6조) 우리 헌법상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와 배치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생소한 제도다. 물론 ‘특별희생’의 발생이나 ‘매우 이례적인’ 경우 이외에는 공중보건, 환경 등의 공공복지적 성격의 조치는 간접수용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되어 있지만(부속서 11-나), 간접수용에 관한 투자 분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적법절차’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라는,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모호한 의무는 부담하기 때문에(11.6조 1항) 공공정책의 효율적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둘째로 국가-투자자 제소(ISD)의 파급효과다. 정부 조치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ISD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투자자에 의한 정부 조치의 제한이 당연히 가능한 제도다. ISD는 여러 국가와의 투자보장 협정에서 우리가 받아들인 제도지만 한미 FTA에서는 그 범위와 효과가 상대적으로 매우 넓고 깊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를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또한 정부 발표대로 공공정책과 관련된 분야의 진입이 이미 제한됐고 필요하다면 예외조항을 활용해 공공정책의 추진을 위협하는 ISD를 배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소박한 ‘희망사항’이다. 한미 FTA에서 공공정책의 수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발전, 통신, 건설 등의 기반사업 진입 제한은 설정돼 있지만 공공정책의 ‘간접적’ 대상인 되는 대부분의 분야도 ISD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유보나 미래유보를 통해 그러한 투자분야에 대한 우리의 규제권이 설정되어 있다고는 하나 ISD 분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왔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11.5조) 의무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적용돼 공공정책 추진의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식돼야 한다.

핵심과제는 결국 민주주의 실현 문제

그렇다면 어떠한 발전적 대응이 가능할 것인가. 가장 먼저 공공정책에 미칠 한미 FTA의 영향력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대응을 준비하는 정부의 성숙한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안전장치가 설정돼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접근은 너무도 소아적인 대응이고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대처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로 국제조약을 즉각적으로 국내 법제로 수용하는 현행 헌법의 일원적인 접근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필요하다. 한미 FTA 논의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그 효율성이 입증됐지만, 체결된 국제조약의 국내적 영향을 절연시키면서 의회의 정밀한 심사와 이해관계인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하는 영미식의 이원적인 체제로의 전환을 고려할 시점이다.

셋째 한미 FTA에 따른 피해 분야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를 법제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2003년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이 감동적으로 설파한 것처럼 결국 ‘국제화는 국내적 실현을 통해 달성되고 그 맥락에서 정당성을 갖는다’는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성찰이 특히나 필요한 지금이다. 이것은 국회나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이 거의 없어 각종 개방조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농어민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한 정책적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한미 FTA의 발전적 전망을 위한 핵심적 과제는 그 제도화를 담당할 정치 제도나 정부의 도덕성과 효율성이 얼마나 담보되는가로, 결국 민주주의 실현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제나 저제나 4월 총선이 기다려지는 요즈음이다.


김대원 서울시립대·국제경제법
스위스 베른대에서 「WTO법상 비위반제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무역연구소 연구원과 국제경제법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 『신국제경제법』, 『수출통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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