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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들 성과 적극 반영…학자는 '大器晩成' 덕목으로 삼야야"
"후학들 성과 적극 반영…학자는 '大器晩成' 덕목으로 삼야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3.27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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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만에 『한국 그림의 전통』개정판 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71·사진)는 지난 2006년 2월 모교인 서울대에서 정년을 맞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
1940년생. 하버드대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서울대역 근처에 마련한 그의 연구실. 안 교수가 내보인 출간 목록에는 『한국 미술사 연구』(2012),『조선왕조시대의 산수화』(2013), 『한국의 소상팔경도』(2013),『Aspects of Korean Paintings』(2013),『Korean Arts』(2014),『한국그림의 역사』(2015),『Korean Paintings』(2016),『美大生을 위한 한국미술사』(2017),『韓國美術史の硏究』(2018),『韓國繪畵史の傳統』(2018),『책과 함께 전시와 함께』(2019) 등이 차례로 적혀 있다.
났다. 1998년 상재한 『한국 회화의 전통』을 수정 증보해 최근『한국 그림의 전통』(사회평론, 2012.3)으로 내놓음으로써, 그가 정년을 준비하면서 계획했던 저술 17권의 목록은 이제 11권으로 줄어들었다. 『한국 그림의 전통』은 '안휘준'이란 이름으로 내놓은 39번째 책이기도 하다. 1988년 판에서 대폭 내용을 수정했으며, 당시 출간된 책이 절판됐기 때문에 별도의 책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 그림의 전통』이 1988년 저본과 달라진 점은, '회화'에서 '그림'으로 단순히 제목만 바뀐 데 있지 않다. 종래의 나열식 편집을 탈피해 총론편, 산수화편, 풍속화편, 회화교섭편의 4개 장으로 재편하고 부록을 첨가했으며, 편제의 변경을 꾀하기도 했다. 「한국의 소상팔경도」를 별도의 책으로 펴내기 위해 이번 책에서는 제외했다. 대신 「한국 회화사상 중국회화의 의의」라는 새 글을 담았다. 내용도 대폭 수정?보완했다. 특히 그가 길러낸 미술사학계의 젊은 후진들의 논문 성과를 충실하게 반영하려 애쓴 것이 독특하다. 다양한 도판을 수록하는 한편, 최신의 업적을 포함한 참고문헌 목록도 새롭게 추가했다. 무엇보다 2008년 공개강연회에서 발표한「미개척 분야와의 씨름-나의 한국회화사 연구」를 부록으로 첨부한 것이 이채롭다. '안휘준과 미술사 연구'를 주 내용으로 한 이 글은, 한국 미술사와 맺은 그의 독특한 인연, 학자로서의 안휘준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삼불과 여당, 그리고 '만들어진 미술사가'

그가 미술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스스로의 적극적인 선택 결과는 아니었지만, 운명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고교 시절 그의 담임은 '상과대'를 권유했다. 그러나 상과대를 나와 은행원이나 회사원이 된 모습은 왠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서울대 문리과대학에 '고고인류학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입시를 불과 3개월 앞둔 상태에서 '상과대' 진학 준비를 포기하고 문리과대학으로 진로를 틀게 됐다. 그게 1961년의 일이다. 신설 학과에 진학한 그는 이곳에서 삼불 김원용 선생과 여당 김재원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 스스로 "대단한 행운의 덕이다"라고 말하는 운명적인 조우가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를 '만들어진 미술사가'라고 일컫는 안휘준 교수는, 삼불과 여당 선생의 권유로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오른다.

"당시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였던 여당 선생이 어느날 강의를 마친 뒤 저를 부르시더군요. 미술사가 매우 중요한 분야인데, 국내에서는 전공할 길이 없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정규 커리큘럼을 거치지 않은 독학한 분들 뿐이니, 외국에 나가 미술사를 전공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삼불 김원용 교수도 여당 선생의 제안대로 따르는 게 좋겠다고 그를 격려했다.  은사들의 결정에 따른 결과, 오늘의 자신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그의 이력은 그로 하여금 미대 창작 실기 부문과 인문대의 인문학 교육 양쪽 모두에 몸담게 만들었다. 홍익대에서는 창작을 지망하는 학부생들을, 이후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인문대학에서 인문학의 한 분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미술사를 강의했던 것이다. 안 교수는 미술사를 인문학의 한 분야로 중요하게 다뤄야한다고 역설했지만, 동료 인문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미술사를 인문학의 한 분과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세월이 지났어도 동료 인문학자들의 그런 태도가 안 교수에는 여전히 '속상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인문학은 예술적 소양을 함께 갖춰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文史哲은, 정확하게 말한다면 문사철에 '藝'가 포함돼야 해요. 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인간의 다양한 심성과 창조성을 인문학이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프랑스의 소르본대 등 많은 대학들이 이미 미술사를 독립적인 인문학의 한 학문으로 오랫동안 다뤄왔음을 강조했다. 

 

"정년후에 대학에서 강의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니까요.

후임이 한 학기 늦에 오는 바람에 한 학기 강의를 더 할 수밖에 없었죠.

언젠가는 대학교육 체제가 '문리과대학' 시절로 되돌아 갔으면 좋겠어요.

힘들었지만 폭넓은 소양을 쌓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식견과 안목을 넓히는 공부가 필요하죠."

 

『한국 그림의 전통』의 특장점 가운데 하나는 1988년 이후 미술사학계 후학들의 학문적 성과를 각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 소통하고자 한 부분이다. "각주는 학자들의 성실성의 지표입니다. 요즘 각주 없는 '개설서'가 출판되는데, 개설서일수록 각주들이 많아야 한다고 봐요. 각주도 안 단 개설서를 내는 후배들을 보면 속상해요. 그게 다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행위기 때문이죠. 표절인 셈이죠." 그래서 안 교수는 각주 없이 책을 내는 행위를 학자와 세상의 타협이라고 본다. 그런 그에게도 속상한 기억이 있다. 『안견과 몽유도원도』(2009) 개정판을 내면서 안 교수 역시 '각주'를 빼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대중적으로 읽히는 데 무겁지 않냐는 의견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안 교수는 이를 '타협'이라고 말한다. "그때 타협했던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더군요. 후회막급했죠. 독자들의 수준을폄하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 이후 각주 없는 책은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결국 각주는 학자로서의 성실성의 표현인 동시에, 학문 공동체가 일궈낸 성과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한국 그림의 전통』은 각 장마다 그런 각주들이 빼곡하다. 참고문헌에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무렵까지의 학문적 성과들이 모여 있다.

미개척 분야인 미술사, 특히 회화를 주류로 일궈온 1세대 학자로서 그가 뿌듯해하는 부분은, 『한국 회화의 전통』이 당시 시대적 흐름과 궤를 같이 했다는 대목이다. 경제성장과 사회의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한국 회화를 감상하고 이해하려는 문화적 욕구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는 가운데 맺어진 결실이 바로 『한국 회화의 전통』이란 설명이다. 이런 자긍심 탓인지 안 교수는 24년 만에 수정 보완해 출간한 『한국 그림의 전통』을 들고 내내 상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년처럼 들뜬 표정이지만, 학자로서 그의 태도는 강직해보였다. 정년을 하게 되면, 강의는 맡지 않는다, 그리고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되면, 타분야 발표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듣는다는 것 등을 원칙으로 삼았다. "정년을 한 뒤에는, 후학을 위해 강의를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후 일체의 강의를 맡지 않았습니다. 후임이 한 학기 늦게 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한 학기 강의를 하긴 했죠." 서울대에서 정년을 한 뒤 그는 잠시 명지대 석좌교수로 머물렀다. 그렇지만 그 기간도 매우 짧았다. "강의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명지대 석좌교수로 갔지만, 강의도 하지 않고 그런 대우 받는 게 사실 그렇잖아요? 그래서 박사과정 지도만 잠시하고 그 자리에서도 물러났어요. 저술하고 강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비록 저술에 몰두하고 있는 정년퇴임 교수이긴 하지만, 안 교수는 대학교육의 개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 폭넓은 학문적 소양이 지금의 대학에는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전공 안으로 깊이 들어가다보니 학자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 모두 자기 분야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폭넓은 인간의 이해를 전제하는데, 식견과 안목을 넓히려면 다양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울대의 경우로 한정한다면, 과거 서울대 문리과대학 체제로 언젠가는 돌아갔으면 해요. 180학점을 공부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결국 그만큼 식견과 안목을 쌓을 수 있을테니까요."

시마다 슈지로와 학자의 기본 덕목

어느덧 원로가 된 안휘준 교수. 그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절대 서두르지 말라. "요즘 다들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요. 大器晩成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덕목입니다. 천천히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는 학자가 됐으면 해요." 그는 동양미술사의 거목인 일본의 시마다 슈지로(島田修二郞)를 예로 들었다. 시마다 슈지로는 교토박물관 학예관으로 학문에 뛰어든 인물이다. 젊을 때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마침내 동양미술사의 거목이 됐다. 안 교수는 식견과 안목은 하루아침에 갖춰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재능을 허비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의 정치적 신조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다. 올 大選에서는 이 기본적 가치를 수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정당과 후보에게 지지표를 보낼 예정이다. 그는 영화 「버킷 리스트」처럼, 꼭 출간해야 할 저술 목록을 지니고 다닌다. 이제 11권의 저술 목록이 남아있다. 2019년 『책과 함께 전시와 함께』가 목록의 끝에 있다. 어쩌면 그 책이 '끝'은 아닐 것이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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