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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信半疑 청춘을 사른 연구원들 … “돈 만으론 만들어지지 않죠”
半信半疑 청춘을 사른 연구원들 … “돈 만으론 만들어지지 않죠”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3.19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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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 풍경

“크리스탈 모양의 단백질 結晶에 엑스레이를 쏘면 回折이 일어납니다. 이 회절의 패턴을 분석해서 역추적해 들어가면 정확한 단백질 결정 구조를 알 수 있죠. 이때 방사광에서 뽑아낸 엑스선이 연구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김경진 팀장(사진 왼쪽, 빔라인부 X선)이 한 연구원에게 빔라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김경진 포스텍 방사광가속기연구소 운영2팀장(빔라인부·X선)의 연구분야는 구조생물학, 그 중에서 ‘단백질 결정학’이다. 생체의 반응을 주도하는 단백질 기능을 분석해 몸의 생리를 규명해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 팀장이 관리하는 구조생물학 분야에는 3개의 빔라인이 배정돼 있다. 정규스텝은 6명이다. 이들 말고도 위촉연구원, 위촉기술원 등 비정규스텝이 더 있다. 이들은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외부에서 찾아온 연구자들의 실험을 돕는다.

머리카락, 전화기 변색될 정도로 매달려

“연구 인프라는 미국 가속기연구소가 더 나을진 몰라도, 제가 외국인이라 특정한 업무를 돕는 일밖에 못했어요. 이곳에선 훨씬 더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할 수 있습니다.”

김 팀장은 2003년, 포스텍 가속기연구소에 왔다. 그전까지는 미국 최대 가속기연구소 중 하나인 AP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다. 부임하고 2년 정도는 빔라인 ‘짓는’ 업무를 맡았다. 

“선형가속기, 저장링, 빔라인이 한 몸으로 돼 있어서 빔라인을 세팅하는 일이 보기보다 간단치 않아요. 책 읽고 부품 공장직원들에게 물어보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온종일 라인에서 작업을 했는데 형광등 탓에 머리가 탈색이 다됐어요. 전화기 표면도 누렇게 색이 바랠 정도였죠.”   

그래도 요즘은 흥이 난다. 김 팀장이 귀국했을 때만해도 10곳에 불과했던 단백질 결정학 분야 연구팀이 60곳을 넘어섰다. “방사광가속기가 없으면 당장 불편한 수준이 아니라 연구가 불가능해요. (빔라인 건설을) 열심히 했는데 쓰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죠.” 

김 팀장은 최근 간질을 유발하는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규명하고 활성산소가 어떤 기작을 통해 간질에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했다. 방사광가속기 지원업무를 하면서도 최근 6년간 연구논문을 30편이나 썼다. 연구소 생활 10여년, 김 팀장은 확신에 차있다.

“방사광가속기는 건설하는 데 수천억원이 들고, 운영비로만 연간 수백억원이 필요한 큰 사업입니다. 투자가치가 있는지를 경제논리로 따지면 시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막대한 예산을 쓴다고 뚝딱 지어지는 건 더더욱 아니거든요.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을 지연시키다보면 시작조차 못한다’는 작은 진리를 저기 저 방사광가속기가 알려주고 있잖아요.”

저장링에서는 전자가 방사광을 내며 돌고 있다. 저장링이 발전소라면 빔라인은 방사광을 끌어다 쓰는 일종의 작은 실험실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연구자들은 이 빛을 끌어다 자기 연구에 쓴다. 30개 실험실이 연중 192일, 24시간 가동된다. 사진은 빔라인 전광판(맨 위), 전자총(가운데 왼쪽), 빔라인(오른쪽), 선형가속기(맨 아래).

피부로 느끼면서 직관적으로 실험

김 팀장이 던진 뒷말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전자가 저장링을 돌 듯 머리 속에 뱅글뱅글 맴돌았다. 저장링의 궤도를 따라 빔라인을 끼고 걷는데 한 여성연구원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스쳐갔다. 기자는 연구원을 돌려세웠다. 

김기정 책임연구원(빔라인부·자외선운영팀)은 앳된 얼굴과 달리 연구소의 창단멤버다. 1993년 한 지역 국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이곳에 왔다. 선형가속기도 미처 다 지어지지 않았을 때다. 저장링을 막 설치할 때라 빔라인은 2곳에 불과했다. 김 연구원을 포함해 석·박사 연구원 예닐곱 명이 이 빔라인에 달라붙었다. 

“표면물리(초고진공)를 전공했는데 당시에는 새 학문분야라 전국에 4팀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방사광가속기가 지어지면 연속적인 포턴 에너지를 선택해서 쓸 수 있다는 막연한 정보를 갖고 있었죠. 이곳에 오면 뭔가 재밌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운 때가 맞았나봐요.” 

국내에 전례가 없던 터라 김 연구원도 초창기에는 반신반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방사광가속기의 위력(?)을 체감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석사과정 때 했던 실험 시료를 빔라인에서 재확인해 본 적이 있다. 

“실리콘으로 실험한 게 있었어요. 이전에 갖고 있던 실험기구로 보면 잘 보이지 않아서 그저 ‘이럴거야’라고 유추했었거든요. 방사광으로 확인해보니 제 예상이 맞더라고요. 아, 그땐 정말 감동이었어요.” 

방사광을 쓰면 빛 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고, 선명하게 구현되니 시료의 특성을 하나하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김 연구원 말마따나 “피부로 느끼면서 직관적으로” 실험할 수 있다.

물론 연구소 생활 20년 베테랑에게도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다. 빔라인을 꼼꼼히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밤 사이 펌프 하나가 말썽을 일으킨 것. 이튿날 아침, 밸브를 열었는데 순식간에 압력이 치솟았다. 다행히 안전장치가 큰 사고를 막았지만 김 연구원은 지금도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하나의 가속기에 30개의 빔라인이 연결돼 있어서 우리 실험실의 사고가 다른 빔라인의 사고로 이어져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방사광가속기연구소는 2014년 준공을 목표로 4세대 가속기 사업에 착수했다. 방사광가속기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독일도 4세대 가속기를 도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구원들에게 4세대 가속기는 다시 찾아온 도전이다. 3세대 가속기를 정착시켜온 지난 10~20년, 이들의 노력이 ‘4세대’에서 어떻게 빛 발할지 기대된다.

포항=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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