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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살해 전통’의 혹독한 검증에서 살아남은 텍스트
‘부친살해 전통’의 혹독한 검증에서 살아남은 텍스트
  •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 승인 2012.03.19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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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인문교육과 고전읽기 ❶ 古典은 무엇이었나(서양편)

고전은 ‘시간의 잔혹함 속에도 무수한 사람들의 검증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책’일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일까. 대학에서 고전의 활용방안을 지성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논쟁의 불을 지피고자 합니다.

10가지 동일한 주제를 놓고,  동·서양 고전의 역사를 번갈아 싣습니다. 동양은 김월회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가 중국의 고전교육 역사를 중심으로 논지를 이어가고, 서양은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고전라틴문학)가 로마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서양 고전의 역사를 따라갑니다.

 

“소크라테스는 나의 친구입니다. 나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진리가 더 가까운 친구입니다.”<대작, Maius Opus> 제1부 5장

‘나’는 플라톤이다. 하지만 목소리의 실제 주인은 로저 베이컨(1214년~1294년)이다. 베이컨의 말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말이 서양학문의 근본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부친살해’ 전통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통이 또한 ‘무엇이 고전을 만들었는가’라는 물음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말과 진리가 충돌할 경우, 플라톤은 스승이 아닌 진리를 따랐다는 것이 베이컨의 말에 담긴 핵심이다. 하지만 학문의 아버지인 스승의 살해를 미덕으로 여기는 서양학문의 부친살해 전통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해서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소크라테스, 아테네도 예외일 수 없다

부친살해! 어찌보면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전통일 수도 있기에 약간의 변명을 덧붙이겠다. 적어도, 서양고전학의 전통에서는 부친살해가 불경죄(hybris)는 아니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비판하고, 아니 스승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불경스러운 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를 권장한 이가 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였다. 전거는 다음과 같다.

“심미아스와 케베스여, 나(아마도 소크라테스)는 이런 마음으로 로고스로 향하는 길(erkomai epi logon)을 걸어갈 생각이네. 하지만, 자네들은, 만약 내 말에 동의한다면, 소크라테스는 크게 염두에 두지 말게, 오히려 진리에 무게를 더 두게나. 만약 내가 자네들에게 말한 것이 진리라면, 이에 동해주게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로고스를 통해 반박해 주게. 내 말에 도취해서 내가, 나 자신은 물론 자네들까지 속이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주게나. 마치 꿀벌이 침을 쏘고서 그냥 날라가버리듯이, 그렇게 나도 빠져나가버리지 못하도록 말일세. <파이돈> 91 b-c

인용에 따르면, 소위 ‘부친살해’의 길을 열어 준 이가 소크라테스인 셈이다. 요컨대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주장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로고스(logos)의 엄밀하고 혹독한 따짐을 견디어내었을 때라고 일갈하는 이가 바로 저 ‘소크라테스’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소크라테스가 열어준 부친살해 전통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마도 플라톤이었을 것이다. 스승이 한 말들은 물론 심지어는 스승의 초상권과 인격권까지 자기 맘대로 사용했던 이가 플라톤이었기 때문이었다. 플라톤만큼 자신의 스승을 자유자재로 활용, 남용, 오용한 철학자가 있다면, 과연 누구일까. 한데, 이게 業報였을까? 실은 플라톤도 자신도 가장 아끼었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날카로운 칼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거는 아래와 같다.

“그래도 진리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더구나 철학자로서는, 우리(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가까운 것들까지도 희생시켜야 한다네, 친구와 진리! 둘 다 모두 소중하다네. 하지만 진리를 존중하는 것이 더 경건하기 때문이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1096 a 14-17

서양학문의 덕목이 된 ‘부친살해’

인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플라톤이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스승 플라톤의 철학을 가장 강력하게 반박한 이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이다. 한데 아리스토텔레스 말이 가관이다. 아예 학문에서 ‘부친살해’는 경건한 덕목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述而不作 전통을 중시하는 학문 전통에서는 이른바 斯文亂賊으로 몰릴 수도 있기에, 저 기백이 넘치는 주장에 눈길이 간다. 어쨌든 이런 용기 덕분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권했던 ‘부친살해’의 시도는 서양학문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한데, 부친살해 전통의 기원과 관련해서 지적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전통이 실은 소위 ‘소크라테스 師團’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전통의 수립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작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전통은 이미 호메로스에게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뒷세이아>의 한 대목이다.

생각건대, 나(아마도 오뒷세우스)는 멀리서도 잘 보이는 이타케에 온 것 같지도 않고, 어떤 낯선 나라를 떠돌고 있는 것 같소. 그대(아테네)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나를 놀리고 내 마음을 시험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소. 말해 주시요. 내가 진짜 고향 땅에 온 것인지를”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네가 답했다.

“그대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구나.
해서, 내가 그대를 불행 속에 홀로 있게 내버려 둘 수가 없구나.” <오뒷세이아> 제13권 325-331행

인용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오뒷세우스의 태도이다. 자신을 늘 돌봐주던 멘토였던 여신 아테네가 해 준 말임에도, 오뒷세우스는 이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에 대해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구나”라는 아테네 여신의 댓구가 인상적이다.

어쨌든 아테네 여신이 안개를 흩어버리고 고향 땅을 그의 눈 앞에서 증명해보이기 전까지는, 자신이 고향 땅에 돌아왔다는 아테네 여신 말을 오뒷세우스는 끝까지 믿지 않는다. 물론 아테네의 말을 전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아니기에 오뒷세우스의 이런 의심 많은 태도를 소위 부친살해의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볼 수는 없다.

따짐과 검증, 학문적 방법의 이름

하지만 여신이 해 준 말임에도 이를 시험하고 검증(elenchos)하려 드는 태도는, 어찌보면, ‘불경(hybris)’에 해당하고, 이런 의미에서 이런 태도는 부친살해의 초기 현상이라 하겠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신의 말을 검증하고 시험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오뒷세우스가 예컨대 종교적 경건함이 강조되는 근동(Near East)에서 이런 태도를 보였다면, 그는 아마도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오뒷세우스의 이런 의심많은 태도를 바라보는 아테네 여신의 시선이다. 인용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녀는 오뒷세우스의 이런 태도에 분노의 눈총이 아니라 연민의 눈길을 보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양고전학의 역사에서 부친살해 전통이 굳건하게 자리잡게 된 데에는 아테네 여신의 이와 같은 시선이 한 몫 단단히 거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아테네 여신이 자신의 말을 시험하고 검증하려드는 오뒷세우스에게 화를 내고 그를 벌했다면, 과연 이후 서양학문의 역사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니까, 신의 말에 대한 의심을 단죄하는 문화적 풍토에서는 자유로운 학문과 사상의 꽃이 필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천하의 아리스토텔레스라 할지라도, 감히 스승을 학문적으로 살해하려는 시도는, 아니 그것도 모자라 부친살해를 경건한 덕목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특별히 용기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따짐과 검증이 하나의 중요한 학문 방법으로 자리잡은 학문 전통과 소위 공개적인 경합과 시합을 통해서 검증받는 뛰어남과 탁월함(arete)을 중시하는 ‘경쟁’(agon) 전통이 일상적인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문화 덕분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소개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오뒷세우스의 충실한 계승자일 것이다. 자신을 돌봐준 여신의 말도,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의 말도 시험하려 들었던 이가 오뒷세우스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 전통은 로고스를 통해서든 사실과의 대조를 통해서든, 따짐과 검증을 견디지 못하면, 그것은 진실로 혹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로 이어지고, 이게 서양 학문의 중요한 학문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결론적으로 어떤 언명이 하나의 주장으로 혹은 하나의 진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따짐과 검증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목소리를 담고 있는 책이 고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단순하게 모든 것을 망각의 세계로 삼켜버려는 시간의 횡포를 우연적으로 피해 살아남은 책이 고전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소위 ‘부친살해’ 전통의 혹독한 시험과 엄밀한 검증을 견디고 살아남은 텍스트가 고전이라는 소리다.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독일 괴팅엔대에서 「알렉산더 누메니유의 단어-의미 문채론」으로 철학박사를 받았다. 키케로의 『수사학』 역서와 「키케로의 인문학에 대하여」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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