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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국민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주제로 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속 세미나
[학술대회] ‘국민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주제로 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속 세미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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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8:20:09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의 연속 세미나에 참가한 대학원생 이 아무개 씨는 깜짝 놀랐다.

3시간으로 예정된 세미나의 발표자는 단 한 명. 여러 학자들이 동시에 발표를 하는 까닭에 주어진 발표시간도, 토론 시간도 짧은 다른 학술대회에 비해 발표시간도 토론시간도 이례적으로 많은 시간이었다. 주어진 자료집도 발표문의 전문을 실은 것이 아니라, 간략한 요약문이었다. 세미나에 참가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 그러나 세미나는 두 시간 가량의 발표를 포함해 네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식민지 지배와 언어

지난달 27일과 28일, 지난 3일에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원장 제임스 팔레)이 개최한 ‘국민국가의 언어와 문화’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흘간 5명이 발표한 세미나 방식도 그렇거니와, 일본의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한 것.

이번 세미나에서는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연숙 히토츠바시대 교수(사회언어학)를 비롯해 야스다 도시아키 히토츠바시대 교수(일어학), 이마후쿠 류타 삿뽀로대 교수(문화인류학),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일본근대문학), 시나다 요시카스 세신여대 교수(일본고전문학) 등 일본 학자들이 각각 언어, 국어학, 근대 문학 등의 주제를 통해 일본의 국민국가 형성과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각기 달라 보이는 이들의 접근 방식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집약될 수 있었다. 20세기 초 일본의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식민주의가 동아시아에 미쳤던 영향을 어떻게 분석하고 비판할 것이며, 어떻게 이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연숙 교수는 먼저 국민의 개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내이션이 민족이냐 국민이냐는 해석에 따라 담지하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국민 개념과 식민지동화정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일본의 국민 개념이 가진 모순을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국민 개념은 메이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자연주의적·혈통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천황적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혈통주의적인 ‘국민’의 개념을 관철할 경우, ‘피’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이민족을 일본인에 동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담은 학문

따라서 ‘국민’ 개념의 ‘자연성’을 희석시킬 필요가 있는데, 이런 기능을 한 것이 바로 식민지의 언어정책이다. “식민지 지배를 통해 볼 때, 일본의 ‘국민’ 개념의 모순이 확연히 떠오른다”는 것.

야스다 도시아키 교수는 ‘국어학과 식민지’ 세미나에서 경성제국대학에 강요된 국어학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그는 1895년 제국대학 내에 국어연구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건의문에서 “대일본제국의 국어는 야마토 민족의 정신적 혈액이기 때문에, 인종의 결합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어 교육의 실행으로 국민적 자질을 고양해야 한다”는 주장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민지에 일본어를 이식하는 과정의 당위성 획득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야스다 토시야끼 교수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학문’이 실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함의하고 있으며, 국어학은 허상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고모리 요이치 교수의 ‘국민국가와 근대문학’ 세미나. 근대 일본문학의 대가인 나츠메 소세키와, 소세키 연구자로서의 고모리 요이치 교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국민국가에 대한 동의와 비판적인 시각을 동시에 읽어내며,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논했다.

시나다 요시카스 교수는 ‘근대 일본의 국민고전의 형성’에서 망요슈(万葉集)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의 국민가요라 불리는 망요슈는 우리나라의 향가와 비슷한 노래집으로 일본 국어 교과서뿐만 아니라 시민대학 등에서도 강독 강좌가 열릴 정도로 인기 있는 문학 장르이다. 그러나 시나다 요시카스 교수는 망요슈는 8 세기 말 경 고대 귀족들의 노래집으로 완성된 이후 천년 이상 일본인들과는 전혀 관계없던 책이었으며, 1890년에 망요슈가 갑자기 일본국민의 ‘고전’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즉 망요슈가 일본민족의 고전으로 떠오른 것은 전통의식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근대 국민국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 국민국가 형성에 대한 비판을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이연숙 교수는 “지금 근대국가 담론이 식민지와 분단의 과정을 통해 국민국가를 형성한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북한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상호교류에 의미를 매겼다.

국민국가 형성위해 창조된 전통의식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의 기억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 “근대는 서양 중심의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아시아의 언어로 자립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기를 바란다”는 고모리 요이치 교수의 말처럼 근대 국민국가 연구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미나를 기획한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국문학)는 “기존의 강의 중심의 세미나가 아니라, 당대의 학문 경향을 이끌어 가는 지식인들의 의견을 자세히 듣고 자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의도를 밝혔다.

세미나에 참가한 백영서 연세대 교수(사학)는 “기존의 학술대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돼,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백 교수는 “동아시아 연구를 위해서는 다른 관점을 가진 연구자들도 함께 참여할 필요가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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