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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공동세미나를 들여다보니
[초점] 한국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공동세미나를 들여다보니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7.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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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1 00:00:00

지난달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순수문화예술과 문화콘텐츠산업, 그 조우와 성장을 위하여’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함께 모여 연 공동세미나이다. 문화예술진흥원은 문화관광부에서 순수예술 지원과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이고, 지난해 8월 문을 연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인 문화콘텐츠만 전문적으로 키우는 곳이다. 같은 문화관광부 소속이지만, 그 목적과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문화예술진흥원이 연극이나 미술 등 전통적인 예술을 손으로 키우는 ‘텃밭’이라면, 문화콘텐츠진흥원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기계로 찍어내는 ‘공장’과도 같은 곳이다.

21세기 문화산업, 규모의 문제인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고, 정부 지원과 정책에 따라 민감하게 대립할 수 없는 두 단체이기에 이번 세미나는 “순수문화예술과 문화콘텐츠산업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구체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 아래 꾸려졌다. 토론 전체를 이끈 사안은 바로 문화예술 인력 문제. 디지털 시대이지만, 결국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를 이끌 ‘사람’이 중요하다는 데 논의의 흐름이 모아진 것.

‘문화콘텐츠산업계의 문화예술 인력 수요와 정책과제’의 첫 발제자로 나온 박세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애니메이션학과)는 디지털 문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도제식 시스템 위주의 인력양성’ 문제를 지적했다. 영상산업, 멀티미디어출판, 디지털음향 등 문화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급변하는 환경에 필요한 인력 수급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박세형 교수가 내린 문화산업 인력 양성의 기본방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비교 우위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로, 자칫 게임, 애니메이션 등 ‘떠오르는’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비칠 수 있다. 지원 방안 역시 ‘첨단 장비 지원 및 프로젝트 지원’, ‘순수예술과 문화콘텐츠 공동 테마스쿨 설립’ 등 외연적인 것에 치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처음 토론을 꾸릴 때의 목적은 순수예술과 문화콘텐츠가 대등한 위치에서 만나고 나누는 자리였지만, 순수예술이 문화콘텐츠의 ‘재료’나 ‘바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은 발제문과 토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계속된다. 시나리오 작가 이범식씨는 “정보의 다양성이 우선시되는 21세기의 문화산업은 다양하고 질 좋은 콘텐츠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순수예술 분야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인 작품성과 예술성이 내포된 많은 창작물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 등 대다수의 콘텐츠들은 기본적으로는 순수예술의 창작성을 ‘벤치마킹’하고, 나아가 이미 완성된 순수예술 창작물을 ‘가공’해서 콘텐츠 산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시각이다. “순수예술 분야가 더 이상 닫혀진 오브제로서가 아니라 참여의 과정을 드러내 보이는 열린 대상물이 돼야 하며, 순수예술 분야도 문화적 순수성과 아카데믹함을 넘어서서, 그 의미와 사용 영역을 더 확장시켜 문화산업 부문과 접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순수예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그다지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 ‘순수예술’ 곶감 빼먹나

그러나, 순수예술을 말하는 이들 역시 문화콘텐츠의 소재와 바탕의 역할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합의를 보이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순수예술이 문화콘텐츠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복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을 때,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예술학부)의 주장은 소리가 너무 작아 애처러울 정도이다. “순수예술인들마저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경제 논리를 스스로 앞세우며 순수예술이 어떻게 돈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입증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그는 “순수예술이 솔선해서 그 자신의 경제적 효용성을 강조하려고 애쓸수록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순수예술의 생명은 ‘창조적 정신’에 있는데 경제적 효용이라는 강박에 구속될 경우 순수예술의 창조성이 떨어진다는 논리이다. 순수예술이 문화콘텐츠에 마냥 이용되는 현실이 못마땅하기는 하나, 그에 반박할만한 논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애니메이션 제작자, 영화사 대표 등 첨단 콘텐츠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형평성을 잃어보인다.

문화가 돈이 된다는 데 다른 생각을 제기하는 사람은 이제 없는 듯 하다. 이제 문화라 하면, 디지털 콘텐츠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21세기의 문화지형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 여건 아래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문화콘텐츠산업이 순수예술에 손 내미는 ‘아량’을 보이는 듯 하지만, 그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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