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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편에서 과학을 본다면?
시민의 편에서 과학을 본다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3.14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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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풍경_ 중량감 있는 과학 저술들

인문학과 달리 과학과 관련된 저술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정신이 아니라 우리 육체가 서 있는 시공간을 직접 마주하면서 집적된 증명 가능한 지식들의 체계를 엿보게 하는 데서 '매력'의 일단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잇달아 출간된 과학 저술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시민과학센터가 펴낸 『시민의 과학-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사이언스북스, 2011.12), 임경순 포스텍 교수가 지은 『과학을 성찰하다-현대 과학의 새로운 지평』(사이언스북스, 2012.2), 그리고 걸출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과학사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이철우 옮김, 아카넷, 2012.2)과 그의 자연학 에세이 선집인『여덟 마리 새끼 돼지』(김명남 옮김, 현암사, 2012.2) 등은 인문학 저술 버금가는 '지적 흥미'를 돋궈주는 책들이다.

『시민의 과학』은 시민과학센터가 대변하는 한국 시민 과학 운동 10년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지난해 초 번역 출간된 코펜하겐경영대학원 교수 앨런 어윈의 『시민과학』(김명진·김병수·김병윤 옮김, 당대, 2011.2)의 연장선에 그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앨런 어윈 교수는 "일반시민을 무지하고 감정적인 존재로 보고, 따라서 계몽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기는 기존의 과학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과학과 일반시민의 관계를 좀더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물이다. '시민의 편에서 과학을 바라보면 과연 어떻게 보일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 그는 사회이론과 과학지식 사회학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환경, 시민의 한계 등을 성찰하는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의 과학』역시 앨런 어윈의 한국적 맥락화라고 할 수 있다. 시민과학센터는 생명 윤리법 제정 운동, 과학 기술 기본법 제정 운동, 과학 기술 분야의 시민 참여 연구, 시민의 과학 기술 정책 결정 참여 등을 추구해 왔다.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11명의 글 모음으로 이뤄진 이 책은 과학 기술 민주화에 있어서 올바른 시민 참여 방향을 찾아가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공익 과학'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공익 과학이란 공공선을 진전시키기 위해 수행되는 과학을 말한다. 가장 우선되는 수혜자는 사회 전체, 미래 세대, 또는 스스로 자신을 위해 연구를 수행할 수 없는 구체저인 '대중'이다. 그러니까 이 책 역시 과학을 전문가집단의 전유물로 보는 권위주의적 시각에서 탈피해, '시민의 과학'을 모색하고자 하는 새로운 '성찰'과 고민의 흔적인 셈이다.

'공익 과학'과 '과학 성찰'

『과학을 성찰하다』는 『시민의 과학』보다 직접적으로 '성찰'을 내세우고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은 20세기 과학의 업적들이다. 얼핏 보기엔 이게 어떻게 '성찰'로 이어질까 하는 의문도 든다. 1859년 다윈의 진화론 발표에서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1926년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 1948년 가모브의 대폭발 이론,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현대인의 삶을 바꾸어 놓은 과학 기술에 얽힌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단순한 스토리 텔링이 아니라, 기업, 사회, 국가, 예술이라는 시각을 넘나들며 이들 업적의 이면에 어떤 요소가 작용했는지를 밝혀내려는 게 저자의 의도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읽어보면, 그가 제목으로 내건 '성찰'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가 비록 반환원주의와 사회 구성주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예로 들면서 '사회에 의한 과학의 구성'이 아닌 '과학에 의한 사회의 구성' 내지 '과학과 사회의 공동 구성'이란 철학적 가치관에 초점을 맞춘 과학 이해가 대중사회에 안에서 선결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리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 자신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내용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아마도 책 제목의 '성찰'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제4부 '과학 성찰의 새로운 진화'일 것이다. 거대화된 과학이 환경 사상, 예술과 만나면서 생겨나는 변화들을 다루면서 융합 기술의 출현과 비연속적인 기술 혁신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을 소개한 부분은 저자의 부지런함과 의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결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해도 그는 흔적을 드리우게 마련이다.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이다. 그의 일곱 번째 저서인 이 책은 통상적인 그의 저술 패턴을 벗어나 있다. 생물학을 통해 인류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했던 굴드가 진화의 기본 전제인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함께 논의한 내용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 변화를 과학, 특히 지질학의 발달과정과 연계시켜 흥미롭게 풀어낸다. 현대 핵물리학이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지구의 실제 나이를 46억 년으로 알아내기 전에, 지질학이 이미 그 심원한 시간의 기원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질학자들의 사유체계와 시간에 대한 관점에 굴드가 귀를 기울인 까닭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의 사유체계에 눈돌린 과학 거장

굴드에 따르면, 우리는 직선적인 '시간의 화살' 위에서 진보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항구적인 '시간의 순환' 속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가 경우에 따라서는 풍성한 상호보완적인 관점의 이해를 가능케 한다고 보았다. 과학은 자연계의 변화를 통해 질서를 고찰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이해가 궁극적으로 자연을 보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해양지질학자인 이철우 충북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저자는 우리가 지층을 통해 지구의 역사, 곧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려는 노력이 직선적인 관점보다는 순환적인 관점에서 시작해 직선적인 관점으로 발전했음을 유추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이분법적인 분석이 현상의 지나친 단순화 때문에 분석 대상에 관한 풍부한 관점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관한 이분법적 사고는 저자의 주장처럼 지질학적 사고의 발달 과정을 엿보는 유용한 틀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 교수가 내린 결론. "자연은 역사의 산물이므로 시간의 화살과 시간의 순환은 상호 보완적인 두 세계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이분법적 은유이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는 굴드의 에세이 선집 중 여섯째 권을 번역한 책이다. 그가 27년간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한 300여 편의 과학 에세이들은 굴드 자신의 편집을 거쳐 모두 10권으로 출간된 바 있다. 출간을 맡은 현암사는 그중 주요작을 선정해 꾸준히 출간할 계획이다. 역자는 이 책을 두고 "어느 한 측면에서 두드러진 점은 없을지언정,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어느 한 페이지도 뺄 것 없이 작가로서 가장 뛰어났던 시절의 굴드 그 자체다. 굴드 자신은 이 책을 '중년의 작품'이라고 불렀다"라고 의미를 매겼다. 인간 중심적 환경 파괴 및 생물군 대량 멸종에 관한 굴드다운 과학적 진단과 근본적 비판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가 얼마나 사회생물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지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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