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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에게 주는 미국 유학 60년의 교훈과 지혜
후학에게 주는 미국 유학 60년의 교훈과 지혜
  • 김일평 미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2.03.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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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미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회고록(1) 연재에 앞서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미국 내 한국학 연구의 ‘1세대 전문가’로 꼽히는 김일평(金一平·81·사진) 코네티컷대 명예교수는 뛰어난 한반도 문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1931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했다. 휴전이 된 1953년 미국으로 건너가 켄터키주 애스베리대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했다. 1963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선임연구원을 거쳐 1965년 이후 인디애나대에서 가르쳤다.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코네티컷대에 봉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외교연구원 교수 등 미국내 연구자들을 지도, 후원하기도 했다. 국내 학자로는 김동성 중앙대 교수, 김동수 서울시립대 교수, 남정휴 경기대 교수, 기기정 연세대 교수, 홍욱헌 포스텍 교수, 김병일 경희대 교수 등이 그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교수신문> 김일평 교수의 회고록 '미국 유학 60년'을 이번 호부터 소개한다. 김일평 교수 회고록은 <교수신문> 인터넷판에 매주 연재될 예정이다. 김 교수의 회고록은 미국 내 한국학 연구 1세대의 형성과 그 과정에서의 자긍심, 그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국내 학계의 지적 교류 풍경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유학의 길을 떠난 것이 1953년 9월 이였으니 벌서 반세기가 지나고 60년도 넘은 세월이 흘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도 많이 변하고 나도 많이 변했다. 물론 한국도 변하고, 세계도 천지개벽을 했다고 할 만큼 변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나는 미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공부하면서 또 대학에서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교수생활을 하면서 미국도 변하고, 한국도 변하고 그리고 세계가 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미국유학 반세기 동안에 배운 것과 나의 인생경험을 나의 회고록에 기록해 놓기로 했다. 한국에서 미국유학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유학지망생과 그리고 우리 후세들에게 나의 회고록은 '미래에 대한 그들의 예측'이 될 수도 있고, 또 미래를 향한 역사적인 교훈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지난 해 타계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Paul Samuelson)은 그해 6월 “역사야 말로 어떤 가설이나 실험보다 더 좋은 자료"라고 말하면서 역사에 대한 존경과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나는 한국 유학생으로 1950년대에 미국에 와서 미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공부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실질적으로 경험했던, 살아있는 역사를 여기에 기록해 놓고자 한다. 나의 회고록은 격동기의 반세기 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1930년 5월 5일 (경오년 말띠)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영월은 우리 조선역사의 6대조 단종왕의 묘가 있는 곳이 아닌가. 그리고 만주사변 (1931), 중일중전쟁 (일본과 중국의 전쟁, 1937~1945), 그리고 대동아 전쟁(제2차 세계대전, 1941~1945) 등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차분하게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미국으로 유학하면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린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 (Korean War. 최근 한국언론에서는 6·25 전쟁이라고 통일함) 와중에서 나는 20대의 나이에 한국 육군 연락장교로 전쟁에 참전했다. 한국군에서 3년간의 육군 연락장교의 임무를 끝마치고 미국유학의 길을 떠났다. 6·25전쟁 중 나는 연락 장교로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역할을 담당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내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초반 25년간은 대동아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격동 속에서 흘러갔으며, 곧이어 6·25전쟁 중 일선에 나가서 전투에 참가하는 경험도 해 보았다. 그리고 남은 반세기는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또 미국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한국 유학생들을 가르치는 기회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잿더미로 변한 한국 땅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 꿈을 품고 미국유학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속을 거치고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23세의 나는 그해 9월에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미국유학은 한국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 같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나는 미국에서 유학생의 생활도 해보았고, 또 미국 대학교에서 교수로 오래 생활하기도 했다. 그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웠던가? 또 내가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나의 유학 60년을 돌아보면서 유학생으로서의 생활과 미국대학의 교수로서의 생활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놓고자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이긴 하지만, 한국 학계에 다소나마 쓸모가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이 소소한 회고에 담긴 한국 지식인의 미국 유학 과정과 지식의 습득이 우리 후배들에게 하나의 '타산지석'의 교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보람 있는 '회고'일 것이며, 응당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나의 유학생활 과 미국대학에서 교수로 생활하면서 목격한 미국의 현대 역사도 이 회고록의 풍경에 포함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미국유학을 떠나게 됐으며, 낯선 미국사회에서 유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어떻게 미국 역사를 배워왔는지, 그리고 미국 현대사에 대한 나의 느낀 바를 가능한 한 복기해내며 기록하고자 한다. 미국 유학생의 생활은 1950년대나 2000년대의 오늘까지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회고록에는 특히 미국에서 겪는 한국 유학생들의 고충, 그들의 의미 있는 학위취득 과정도 기록될 것이다. 역시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을 한국의 후학들에게 내밀한 미국 대학가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선택을 돕고자 하는 뜻에서다. 나의 회고록이 그들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미국으로 유학하는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미국의 역사와 미국사회의 변천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고 또 미국사회의 변천과정을 조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종종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나침반이 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이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나는 '배우면 알고, 알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경구를 등불처럼 밝혀 집필 동기를 잃지 않고자 했다. 나는 한국에서 사반세기(25년) 동안 살았다. 또 미국에 와서는 반세기 넘게 살았으니 동양과 서양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비교할 수 있는 지혜와 철학도 얼추 생겼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어떻게 미래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하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작은 회고록이 그런 문제를 환기한다면 나는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또 나의 회고록을 통해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를 비교 연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어떻게 접목 할 수 있을지 비전과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인류의 희망사항인 세계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 이 노구의 회고록을 통해 우리가 다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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