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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실적경쟁 과부하 … “새벽 3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 없어요”
논문 실적경쟁 과부하 … “새벽 3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 없어요”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3.12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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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임교수의 1년_ 국립대 성과급적 연봉제 첫 대상자들의 무거운 어깨

충청지역의 한 국립대 사범대학의 A교수(59세, 남)는 지난해 상반기에 임용됐다. 동기 16명 가운데 사범대학만 6명이다. 이들은 지난달 말, 2011년 한 해의 업적을 모두 제출했다. A교수는 등재지에 3편을 올려놨다. 지난 한 해에만 총 5편을 썼는데 나머지 2편은 심사 중이다.

잠 못자고 논문 5편 썼더니 동료는 7편

“중간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요?” A교수는 기자에게 자신있게 되물으면서도 마음이 썩 편치 않다. 최근 우수교수 시상이 있었는데 동료 신임교수가 논문을 무려 7편이나 썼다는 사실을 접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7편에 근접하는 논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날 이후 어느 신임교수 모임에서 A교수는 동기 교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S·A등급을 받은 교수는 상관없지만 C등급을 받은 교수는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 결과 때문에 서로 ‘의’ 상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C등급을 받는 사람이 누구든, ‘적선했다’고 편하게 생각하자.”

사실 등재지에 3편을 발표한 A교수의 논문실적은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에 임용된 A교수는 기준 강의시수(9학점)를 넘는 12학점을 강의했다. 한 과목을 빼고 나머지는 전공 이외의 과목이라 강의 준비가 만만찮았다.

“제 전공 이외의 과목을 강의하려면 보통 3시간짜리 수업에 6~7시간은 준비해야 합니다. 4과목을 맡으면 물리적으로 일주일을 다 보내는 거에요.”

12학점에 쫓겼던 A교수는 이번 학기에는 15학점(대학원 포함, 교양 5학점)을 맡았다. 

대학이 ‘학부교육 내실화’를 앞다투며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전임교원의 강의 부담은 오롯이 신임교수들에게 떠넘겨졌다. 전임교수의 전공 강의시수를 늘리면서 교양과목도 전임교수 담당비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학생 면담, 과제물 첨삭, 시험 출제·채점 등 강의에 쏟는 시간만 해도 일주일이 금방이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할 틈도 없이 A교수는 6월을 맞았다. 

7~8월 방학에 접어들면서 A교수는 성과연봉제를 대비한 연구계획을 세웠다. 이듬해 2월, 마감기한까지 5편을 쓰기로 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교과부의 정책 탓에 당시 A교수는 15명 신임교수 모두와 경쟁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논문 생산력’이 강한 이공계 교수들을 감안해 5편 정도면 체면치례는 하진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논문에 쏟을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논문생산(!)에 주어진 시간은 여름·겨울방학. 겨울방학엔 최소한 논문 5편의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와야 했다. 새벽 1~2시 퇴근은 학기 중에서 방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집이 인천이라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토요일 오전이면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새벽을 달려야 했다. 주말 이틀을 집에서 자본 게 지난 1년 동안 2번에 불과했다.

“논문도 그냥 쓴다고 다 통과 되는 게 아니잖아요. 논문 1편 쓰면 최소한 서문은 영문으로 써야 하는데, 요즘엔 논문 형식도 철저하게 따지니 윤문을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합니다.” 지난해 신임교수들 사이에는 “화장실 가서 용변보기도 힘들다”는 말이 나돌았다. 

A교수는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몇 편 썼는지 우리끼리 얘기는 안 하니까요. 어차피 나이도 많고 호봉도 있으니, 내가 C등급 맞는 게 낫지 않을까….” 

3개월 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링거를 맞고 찾아온 후배인 동기 교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A교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불편한 진실’을 털어놓았다.

“처음이니까 이렇게 하고 올해부터는 조금 덜 해야겠어. 평가 점수 덜 받아도 돼. 이게 ‘사람’ 할 짓은 못 되는 것 같아.” 신임교수 2년차에 접어든 A교수는 올해만큼은 현물 인센티브 대신 동료와 제자, 가족의 품에서 ‘교수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1년 내내 밤샘연구를 해도 업적경쟁은 끝이 없다. 국립대 성과급적 연봉제 1년, 신임교수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공과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산의 한 국립대 공과대학의 B교수(45세, 남)는 하반기에 임용됐다. 동기 교수 5명과 경쟁한다. B교수는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신임교수 1년을 평가해 달라고 묻자 “새벽 3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 없어요. 더 이상 저는 더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 것 같아요. 만약에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B교수는 한 산업체에서 약 10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임용됐다. B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쓰기 시작한 논문을 11월에 투고했다. 심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마감한 논문실적은 사실상 ‘0’이다. B교수의 연구분야는 일반적으로 논문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신임교수로, 포부를 안고 학생들 가르치는 데 많은 공력을 쏟긴 했어요. 지금도 시간을 꽉 채워서 쓰는데 논문을 더 써내라고 하면 강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강의 대신 논문으로) 마음을 고쳐먹을지 고민 중이에요.” 

올해도 여전히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하는 B교수도 학과 동료교수들이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긴 마찬가지다. B교수는 그러나 “아쉬우면 프로젝트 하나 더 따서 ‘돈’ 벌면 됩니다”라며 스스로를 추스렸다.

부임 6개월 만에 ‘SCI급 2편’, 이유 있었네

이 대학의 공과대학 신임교수들은 B교수처럼 논문실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하반기에 임용됐고, 실험실 세팅과 강의하는 데 시간을 다 써버렸다. 오히려 SCI급 논문을 2편 써낸 C교수(43세, 남)가 특이한 경우다. 지난해 하반기 임용된 C교수는 어떻게 6개월 만에 SCI급 논문을 2편이나 썼을까.

C교수는 미국의 한 대학의 정년트랙 교수 출신이다. 지난해 6월까지 미국에서 연구했다. 임용되기 전 이미 SCI급 저널에 특별판으로 초대 받아 둔 논문이 있었다.

“초대 받은 논문은 리뷰 등 심사과정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돼요. 신임교수가 실험실 세팅하고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이 정도 연구성과가 나오려면 2년 정도 걸리죠. 엄밀히 말하면 저도 연구실적이 없는 거에요.”

2011년 임용된 국립대학 신임교수들의 성적표가 오는 5월 말이면 나온다. 정작 신임교수들은 이 성적표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내년 2월까지 제출해야 할 ‘2012년 업적평가’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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