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40 (목)
논문 600% 쓰고도 C등급 … 집단거부 조짐
논문 600% 쓰고도 C등급 … 집단거부 조짐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3.12 1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대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1년, 신임교수들이 심상찮다

                                                                                                                                        일러스트 이재열

“버티기로 했다.”

신임교수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다. 국립대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의 첫 평가 대상자가 될 2011년 신임교수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들은 지난해 방학내내 새벽 1~2시까지 연구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특히 대학간 교육경쟁이 과열된 지난해, 신임교수들은 전공과 교양을 넘나들며 책임시수를 초과하는 강의를 맡는가 하면 이공계 교수의 경우 실험실을 세팅해 가면서 연구논문을 써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6월~8월 여름방학에 집중적으로 논문을 생산해냈다.

새벽을 반납한 신임교수들은 부임 첫해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역 거점국립대의 한 교무처장은 “인근의 한 단과대학에는 신임교수 3명이 각각 600%, 800%, 1000%의 연구실적을 제출했다고 한다. 신임교수가 600%를 쓰고도 B등급이나 C등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혀를 찼다. 이 교무처장은 그러나 “이들 논문의 질은 안 봐도 뻔하다”라고 꼬집었다.

성과급적 연봉제 시행 1년, 전국 국립대학 곳곳에서 신임교수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경상지역의 한 국립대 신임교수들은 논문 1~2편으로 평균치를 맞춰놓고 연대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대학의 한 인문대학 교수는 지난해 논문 5편을 썼지만 3편을 책상서랍에 넣어놓고 두 편만 학회에 제출했다. 이 두 편은 등재후보지에 올랐다.

“첫해가 앞으로 10년을 좌우한다고 해서 논문을 5편이나 써 놨다. 등재후보지 2편이면 학과 평균이다. 몇십만원 더 받아서 뭣하겠나. 살인적인 제도의 문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제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다.”

홍갑주 부산교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두 교수가 정년까지 20년 남았다고 가정할 때 평가 첫해에 S등급(상위 20%)을 받은 교수와 B등급(하위 10%)을 받은 교수의 연봉 차이는 약 2천700만원에 달한다.(교수신문 619호 참조)

교원인사 담당자들도 이른바 ‘누적식 성과연봉제’ 탓에 신임교수들의 임용 첫해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거점대학의 ㅂ교수는 ‘눈치싸움’이 신임교수들에 국한된 게 아니라고 말한다.

“2015년부터 성과급적 연봉제 대상자가 되는 선배교수들(정년교원)은 논문을 써놓고 투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첫해에 한꺼번에 내려는 건데, 이때는 우리도 선배교수들과 함께 경쟁해야 한다. 신임교수들은 이를 위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신임교수들의 ‘첫해’를 지켜보며 선배교수들도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2009년에 임용된 부산의 한 국립대 공과대학 ㄹ교수는 “요즘 동기 모임에 나가면 등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눈다”면서도 “전공 안에서도 분야마다 논문 수준이나 생산량이 다른데 논문 수로 평가 받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신임교수들의 업적 제출이 모두 마감됐다. 5월말까지 등급을 산출해야 하는 대학도 주저하는 모양새다. 우선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임용된 신임교수들을 교육·연구·봉사영역에서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가 마뜩찮다. 하반기 신임교수는 임용 직후 서너달 사이에 논문실적을 올리기 쉽지 않을 뿐더러 강의와 관련, 교육영역 업적평가도 문제다. 이 때문에 2학기 교육업적에 곱하기 2를 해서 점수를 맞추거나 학기별 기본점수를 부여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역 거점국립대의 교무처장들은 오는 14일 연석회의를 열어 성과급적 연봉제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한 교무처장은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그렇다고 법령대로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도 “연구성과는 양적으로 늘겠지만 교수들은 가장 먼저 교육에 쏟는 시간을 줄이려 할 것이다. 논문을 많이 내는 분야에 학문 후속세대가 쏠려 분야별 양극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