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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원생 “‘대학’보다 ‘공공연구소’에 취업하고 싶다”
이공계 대학원생 “‘대학’보다 ‘공공연구소’에 취업하고 싶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03.12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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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총 의식조사, “대학원생도 현실 받아들이기 시작”

‘이공계 위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인문학 전공자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인문학은 위기라는 말조차 쏙 들어갔는데 이공계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시선이 묻어나는 듯하다. 정말 이공계는 나은 편일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가 교육과학기술부 의뢰를 받아 최근 완료한 「이공계 종사자의 자기인식 실태에 관한 연구」(연구책임자 이욱환)를 보면 이공계 학문후속세대의 자화상 역시 우울하기만 하다.

이번 인식 조사는 전국 25개 4년제 대학 일반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공계열 석ㆍ박사과정 학생 263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자연계열 109명, 공학계열 153명이다. 석사과정 학생이 170명으로, 박사과정 93명보다 비중이 높았다. 수도권 9개 대학과 지방 16개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향후 취업하고 싶은 직업 유형이 무엇인지 물었다.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연구자, 교수 등 전문직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80.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관리직 11.8%, 기능직ㆍ사무직 6.3% 순이었다. 전공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자연계열은 전문직 비율이 90.0%로 높게 나온 반면 공학계열은 관리직(17.1%)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향하는 경력관리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전문적 연구지향이라고 응답한 대학원생이 62.2%로 가장 많았다.

※출처: 「이공계 종사자의 자기인식 실태에 관한 연구」(연구책임자 이욱환)

석사는 기업, 박사는 공공연구소 선호

하지만 취업하고 싶은 직장 유형을 묻자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공공연구소가 42.1%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는 기업으로 38.9%가 응답했다. 대학은 18.3%로 응답 비율이 한참 낮았다. 석ㆍ박사 과정 학생이 섞여 있는 탓도 작용한다. 석사과정 학생은 기업으로 취업하겠다는 비율이 45.3%로 가장 높게 나온 반면 박사과정 학생은 대학에 취업하겠다는 비율이 31.1%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차이를 보였다. 그렇다 해도 박사과정 역시 가장 많은 학생이 공공연구소에 취업하겠다고 응답했다(40.0%).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던 한국정책분석평가원 양세훈 박사는 “대학원생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진학했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학문 연구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취업보다 학교에 교수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박사이거나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대학 박사가 아니면 교수로 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방안을 선택한 것 같다.”

양 박사는 또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2~3년 혹은 4~5년 경력을 쌓은 후 대학 전임교원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엿보겠다는 것도 공공연구소가 가장 높게 나온 한 원인으로 보인다”라면서 “그 안에서도 소위 일류대학 출신과 그렇지 못한 대학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향후 취업하고 싶은 직장 유형에 대한 설문 결과를 보면 수도권 4년제 일반대학원과 지방 4년제 일반대학원 학생 사이에 차이가 확연하다. 수도권 대학원생은 대학으로 취업하겠다는 비율이 31.3%로 전체 평균보다 13.2%포인트나 높게 나타났다. 반면 지방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은 기업으로 취업하겠다는 비율이 42.6%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학에 교수로 취업하겠다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국내 박사가 전임교원으로 자리 잡기 힘들다는 현실이 학생들의 인식에도 또렷이 박힌 셈이다.

해외유학 결심 배경은 연구·교육 환경

국내 진학보다는 유학을 선호하는 것은 이공계 대학원생도 비슷한 것 같다. 졸업 후 진로계획으로는 취업이 62.0%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유학 19.8%, 미결정 10.9%, 국내 진학 7.0% 순으로 응답했다. 해외 유학 계획을 갖고 있는 대학원생의 71.2%는 박사 후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박사과정은 25.0%였다.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서다(56.9%). 향후 국내에서 더 좋은 자리로 취업하기 용이해서라는 응답도 25.5%였다. 11.8%는 교육환경 등이 좋아서라고 응답했다. 국내 진학은 박사 후 과정(14.3%)보다 박사 과정(85.7%)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양 박사는 “박사는 국내에서 하더라도 취업을 위해 갈 수만 있다면 포닥은 외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취업이 될 경우 국내 복구를 선호하지 않아 이공계 우수인력의 두뇌유출에 대한 우려도 여전했다. 해외 유학 후 국내로 복귀하겠느냐는 질문에 55.7%가 복귀 의향이 높다고 밝혔다. 보통은 40.4%, 낮음은 3.8%에 그쳤다. 양 박사는 “과거 조사에서는 귀국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복귀 의사가 상당히 높게 나와 다시 확인해 보니 해외도 취업 환경이 어렵다 보니 일단 자리를 잡는 게 낫다는 인식이 강했다”라고 설명했다.

대학원 진학률 높이려면 장학금 확대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에서 취업이 이뤄지면 상황이 다소 달라진다. 해외 취업 후 국내에 복귀할 의향이 있는지 물은 결과 복귀하겠다는 응답이 높음 50.0%, 보통 23.1%로 감소했다. 대신 복귀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26.9%로 상승했다. 보고서는 “이를 보더라도 국내 취업보다는 해외 취업의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이들이 실제로 외국에서 정주하는 소위 ‘두뇌 유출’ 현상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해외 유학뿐 아니라 해외에 취업하고자 하는 이유도 연구 환경이 좋아서라는 응답이 45.8%로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국내 이공계 대학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이공계 학생의 대학원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는 33.3%가 우수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 확대를 꼽았다. 학교 특성화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BK21사업과 같은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29.5%)이 다음으로 많았고, 이공계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도 25.4%가 선택했다.

이공계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이 노력해야 할 점으로 이공계 대학원생은 장학제도의 확대, 실습 기자재의 충분한 확보와 현장 실습교육 강화, 외국어 교육, 의사표현능력 및 팀워크 능력 교육을 지적했다. 정부에는 이공계 출신의 고급관료 육성, 장학제도의 다양화, 이공계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강화, 기술인력 우대 풍토조성 등을 원했다. 기업에도 고용보장 노력과 복지후생 노력, 이공계 전공자에 대한 장학사업, 이공계 대학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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