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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58 고사리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58 고사리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3.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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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고사리 올리는 이유는?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고사리는 야산의 양지바른 곳에 自生한다. 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고 했다. 딱 맞는 말이다. 고사리 꺾기도 그러하니, 마음을 다잡지 않고 얼핏 딴 생각하면 번번이 빤히 눈앞에 두고도 자칫 놓치기 일쑤다. 낫을 놓고 ‘ㄱ’자를 모르고, 빨래집게를 보고도 ‘A’자를 모른다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말이지.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한 번 안면 텄다 하면 마침내 산지사방이 온통 고사리 천지요,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주변에 맞서는 친구 놈이 버티고 있다.

고사리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미터 가량이며, 이른 봄에 딴 풀들은 추워서 웅크리고 꿈쩍도 않는데 녀석들은 남보다 일찌감치 뿌리줄기(根莖)에서 빼족빼족 새싹을 틔운다. ‘고사리도 꺾을 때 꺾는다’고 무슨 일이든 다 해야 할 시기가 있는 것이니 그때그때 여지없이 해치워야 한다. 아뿔싸, 게다가 우물쭈물 아차 하면 남들이 채간다. 해마다 다니는 사람들은 머리에 고사리 지도가 그려져 있어 어디에 얼마나 나는지 훤히 알지만 초행인 사람은 두리번두리번, 수북이 너부러져 있는 묵은 고사리 덤불을 얼른 찾는 것이 지름길이다.

눈앞에 두고도 놓치기 일쑤

한 뼘 남직한 어린 고사리가 다소곳이 서있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탱탱하게 물 오른 대궁이(줄기)를 잡고 단번에 살짝 밀면 쉽게 톡 꺾이고 남은 아랫동아리(그루터기)의 다친 자리를 아물게 하는 진물이 흥건하다. 보통은 허리 한 번 꺾어 고사리 하나를 따니 한참 후면 꾸부정한 허리가 내 허리가 아니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어린 것들을 파다 심거나 어린종묘를 사다가 메마른 산자락의 밭뙈기에 줄줄이 심어 먹는다.

지금의 고사리(fern)는 약 1억4천500만 년 전에 태어난 아주 오래된 식물로, 세계적으로 1만2천 종의 양치식물(잎의 가장자리가 꼭 양의 이빨을 닮아 붙은 이름)이 있으며, 잎ㆍ줄기ㆍ뿌리의 구별이 뚜렷하고, 물관과 체관을 갖는 관다발식물이며, 꽃이 피지 않고(은하식물) 포자(홀씨)로 번식하는 포자식물이다. 다른 말로 솔이끼나 우산이끼 같은 선태식물과 꽃식물(현화식물)의 중간에 놓인 식물이다. 자생하는 고사리 중에 여남은 종을 식용한다는데 대표적인 것이 고사리, 고비, 관중들이다.

고사리는 뿌리줄기(地下莖, rhizome)를 뻗어 거기서 새순을 내기도 하고, 포자로도 번식한다. 이파리 뒷면에 있는 수많은 포자낭(홀씨주머니)서 감수분열로 포자가 형성되고, 그것이 땅에 떨어져 줄곧 싹을 틔우니 전엽체(prothallus)다. 헛뿌리(虛根)가 붙어있는 전엽체에 여럿 정자 만드는 장정기와 한 개의 난자를 만드는 장란기가 형성되고,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자라니 그것이 어린 고사리다.

쭉 뻗은 줄기 꼭대기에 꼬불꼬불, 똘똘 말린 잎 뭉치가 똑 꽉 쥔 아기 손(‘고사리 손’이란 말이 여기서 옴) 모양이며, 이것이 바이올린의 머리 닮았다고 ‘fiddlehead’라 하며, 나선상의 말림이 슬슬 풀리면서 널따란 새 잎사귀가 손을 편다. 따온 고사리에서 뻣뻣하게 센 줄기는 가려 버리고 끝의 여린 고사리 잎은 고스란히 따 모으니 ‘고사리 밥’이다.

번식력 강해 꺾어도 1주일 지나면 새순 피워

고사리를 삶아 찬물에 깨끗이 씻어, 다른 산나물도 다 그렇듯이, 물에 푹 담가 불려서 독을 우려낸다. 참기름, 간장, 다진 파, 다진 마늘, 깨소금들을 넣고 조물조물 양념해 볶으니 고사리나물이다. 날달걀이 그렇듯이 익혀 우려내지 않은 고사리에는 티아미나아제(thiaminase)라는 효소가 들어있어 비타민 B1(thiamine)을 분해하니 해롭다. 또 흔히 고사리가 정력을 떨어뜨린다고 알려졌으나 단백질이 많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식이섬유가 풍부해 배변에도 좋다한다.

그런데 고사리는 번식력이 하도 강해서 아무리 송두리째 꺾었어도 일주일만 지나면 끝끝내 꼿꼿이 새순들을 피운다. 이처럼 퍽이나 끈질기고 억세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종자를 남기니, 제사상에 고사리를 올리는 것은 이처럼 후사를 지리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라 한다. 모름지기 제상에는 자식들의 정성이 담겨야 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정성이 지극하면 동지섣달에도 꽃이 핀다’ 하지 않는가.

 

권오길 강원대 몀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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