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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국경제의 위기와 구조조정
대담:한국경제의 위기와 구조조정
  • 교수신문
  • 승인 2000.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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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구조조정, 효율성과 민주성의 딜레마를 넘어서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라는 활동공간의 이질성 때문에 불꽃튀는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는 배반당했다. 대립되는 지점 못지 않게 일치하는 지점이 많았던 까닭이다. 주장의 시비를 가리기보다 두 사람이 일치하는 부분과 불일치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현실인식의 어떤 차이로부터 비롯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몫이다.

2000년, 경제위기의 원인

김기원(이하 ‘김’): 97년처럼 외환위기가 재발할 상황은 아닙니다. 불안을 야기하고 만성화시키는 잠재적 위기상황이지요. 첫 번째 원인은 우리경제의 불안정성에 있습니다. 재벌·금융시스템 개혁이 미진해 조그만 외부의 충격에도 국민경제가 흔들립니다. IMF 이후 대외개방을 급속하게 추진한 결과입니다. 다음으로 정부의 취약한 위기대처능력이 지적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국민이 위기의식을 공유했습니다. 게다가 IMF가 ‘교시’까지 내려줬지요. 그런데 지금은 대우차나 현대건설 처리과정에서 드러나듯 모든 것이 갈팡질팡입니다. 지지세력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재계나 노동계 모두 외면해요. 고통분담원칙이 훼손됐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지요.

장상환(이하 ‘장’):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합니다. 경기순환이란 측면에서 볼 때 지금 한국경제는 하강국면에 들어섰습니다. 문제는 과거의 순환국면과는 달리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구조조정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됐기 때문이죠. 빈부격차와 독점자본의 지배가 심할수록 불황의 강도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금융시장의 양극화가 지적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주식·금융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외국자본입니다. 주가총액의 30%라고 하지만 우량기업의 경우엔 외국자본의 비율이 60%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우량기업은 주로 외국자본과 거래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이 심화되는 것은 당연하죠. 해외요인도 있습니다. 지금 미국경제의 전망이 썩 밝지 못합니다. 마이너스 성장을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이것이 결국 한국 반도체의 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DJ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장: 저는 종속적 신자유주의라고 봅니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을 보세요. 철저히 노동자와 국민대중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외국투자자의 이익만 보호해줬을 뿐이죠. 그 결과 빈부격차가 심화됐습니다. 97년 지니계수가 0.39였는데 98년에는 0.44로 높아졌어요. 게다가 원화가치 하락으로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부문은 고수익을 올린 반면, 내수산업이나 중소기업은 반대로 어려워졌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식과 금융시장의 종속입니다. 그 결과 우량기업에서 발생하는 고수익은 대부분 외국으로 유출되고, 국내금융기관은 이윤을 흡수하지 못하니 대출을 못해주고, 그것이 다시 기업부실과 금융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고성장과 금융부실의 누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94∼97년 멕시코와 유사합니다. 외환보유고가 9백억 달러에 이르지만 경제는 곪아가고 있어요. 중남미 경제로 전락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중남미화 운운하는 것은 대단히 선동적인 표현입니다.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국내자본의 경제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남미는 토지개혁도 안돼 농촌게릴라들이 활동하는 곳이에요. 삼성처럼 D램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한 자본이 중남미에 하나라도 있습니까? 현실은 바로 봐야죠. 물론 대외개방의 속도와 범위는 문제가 있어요. 그렇다고 70년대 종속이론가들처럼 세계자본주의에서 이탈해 자력갱생노선을 걷자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개방의 속도와 범위를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장: 과거에는 우리가 경제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한때 한국기업의 제3세계 진출을 두고 한국자본주의가 亞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우리가 무슨 아제국주의입니까? 지금 우리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외국자본입니다.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 때, 기술개발은 제한받고, 발전은 제약될 수밖에 없어요.

김: 종속적 신자유주의라는 진단 역시 동의하기 힘들군요. DJ정부는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정상화·발전시켜야 하는 과제와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으로 야기되는 희생을 최소화해야하는 이중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DJ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신자유주의적·사민주의적·구자유주의적 성격이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노사정 위원회가 생기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제도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확충되면서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사민주의적 요소가 대량 도입된 것이 사실입니다. 재벌개혁만 해도 그렇습니다.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그렇지, DJ정부의 구상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구자유주의적인 개혁입니다.

장: 글쎄요. 국민들 가운데 사회보장제가 제대로 작동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신자유주의 국가라고 실업자를 방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안전망이란 용어 자체가 신자유주의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선진국보다 사회보장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어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불황기임에도 재정적자를 감수하지 않고, 화폐가치 안정을 위해 성장을 억제하는 정책을 구사하는 것만 봐도 이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는 명백해 집니다. 재벌개혁도 긍정적인 면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지배 방식을 합리화한다는 것이지,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김 : 좋아요.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요소라 칩시다. 그렇다고 정권타도투쟁을 전개할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신자유주의를 본질적인 것이라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대중의 삶이 실제로 나아질 수 있습니까? 이건 대단히 현학적이고 소모적인 논의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비록 본질이라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사회민주주의의 싹은 최대화하고, 구자유주의적 개혁은 제대로 실시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줌으로써 선진적 자본주의 구조를 확보하고 민주적인 책임전문경영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게 차라리 현실적인 해법 아닌가요?

장: 구자유주의건 신자유주의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김선생님은 그것이 전진이라고 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전진입니까? 결국 자본을 위한 것 아닙니까? 제대로 된 재벌개혁이라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노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이런 개혁들은 도외시한 채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주식소유자의 지배만 강화해나간다면, 기업은 발전하더라도 국민경제 전체의 불안정은 오히려 심화될 수 있습니다.

공기업 구조조정, 해법은 있는가

김: 공기업의 부패와 비효율성을 척결하는 개혁은 필요합니다. 과잉인력이 존재한다면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이익이지요. 그러나 노동력의 배분은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은 정부가 일률적으로 인원감축지시를 내리는 식인데, 이건 아니에요. 해당기업의 실정을 감안한 공정한 평가가 우선이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감축의 타이밍입니다. 민간기업에서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판국에 공기업더러 인력감축 하라면 어떡합니까? 그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래서 공기업의 인원감축은 가급적 호황기에 이뤄져야 하는 겁니다. 물론 재취업 알선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지요.

장: 김선생님 말씀대로 지금의 공기업체제는 수술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필요한 부문, 요컨대 효율성이 필요한 부문은 민영화를 할 수도 있어요. 문제는 민영화의 방식이죠. 재벌이나 외국기업에 매각할 경우엔 국민경제의 왜곡이 발생합니다. 민영화를 하더라도 시민대표·노동자·금융기관 등이 함께 지배하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습니다. 반면 공공성이 높은 부문은 민영화를 해선 안됩니다. 민영화할 경우 독점의 폐해가 발생하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죠.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지금 같은 불황기엔 오히려 공공부문을 확대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입니다. 이를테면 여성, 노인, 장애인을 위시한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공기업에서 배출된 인력을 도서관·의료·체육시설 같은 복지부문에 배치하는 방안이지요.

김: 큰 틀에서 장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민영화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나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주장 모두 틀렸어요. 공기업은 효율성과 공공성의 조화로운 발전이 필요하니까요. 덧붙인다면 공기업에 대한 정치권·정부의 인사-경영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경영진의 선임과 교체과정, 경영진의 권한과 책임, 보상과 처벌을 투명하게 해서 책임전문경영체제를 확립해야죠. 문제는 효율성이 중요한 부문과 공공성이 중요한 부문을 구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개별기업의 사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판단해야 하니까요.

장: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일만은 아닙니다. 규모가 커서 사적 자본이 운영하기 어려운 부문, 예컨대 공익적 성격을 띠는 수도, 전력 같은 부문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투자·관리해야할 부문입니다. 반면 불황기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한시적으로 공기업화한 기업이라면, 경영이 안정될 경우 민영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수익성이 중시되는 기업들일 테니까요.

무엇이 진보적 구조조정인가

장: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노동자와 국민이 희생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투자자들, 자산가들의 부담에 의한 부실해소가 이뤄져야 합니다. 둘째, 적극적인 재정확대정책입니다. 불황기에는 재정확대정책,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확충과 같은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기본이지요. 세 번째는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사회화입니다. 노동자·금융기관·소비자의 소유-경영 참가를 확대시킴으로써 기업경영을 안정시키면서 지나친 경쟁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겠죠. 넷째는 외국자본에 대한 통제입니다. 이를테면 주식시장 점유비율을 10%로 제한한다거나, 투자허가제, 가변예치제 등을 도입해 자본의 운동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결국 일국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주범이니까요.

김: 사회화론의 대의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에는 항상 효율성과 민주성의 딜레마가 제기되기 마련입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죠. 그런데 민주성이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주장만큼이나, 민주성이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주장도 잘못입니다. 잠정적으로 저는 두 가지가 긴장·갈등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장: 김선생님 말씀은 사회화나 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효율성을 침식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그런데 민주성과 효율성을 대립관계로 봐선 안됩니다. 이것은 선진국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월마트가 좋은 사례죠. 종업원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소유지분을 보장하고 경영에 참여시켰더니 생산성과 매출액이 늘었어요. 노동자들을 머슴같이 부려먹는 구조로는 기술개발이나 생산성 혁신도 힘듭니다.

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저도 진보적 구조개혁에 동의합니다. 진보적 구조개혁의 원칙은 첫 번째가 공평한 고통분담, 두 번째는 지엽말단적 개혁이 아닌 본질적 개혁입니다. 공평한 고통분담이란 부실책임과 부담능력에 상응하는 고통분담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게 안 지켜져 노동자들이 불만을 갖게된 거죠. 그렇다고 노동계가 전적으로 잘한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노동계의 움직임을 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는 그릇된 선택이었습니다. 정부와의 협상창구만 잃어버린 셈 아닌가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투쟁과 교섭을 적절히 병행하는 유연한 전술이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전술의 일관성도 부족했어요. 처음에는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고 하더니 요즘엔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하는 듯한 인상이에요. 결국 뭘 얻었습니까? 노동계가 개혁의 저항세력으로 비쳐지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수세적 방어가 아니라 공세적 방어입니다. 구조조정을 무작정 반대할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개혁, 정경유착과 재벌의 소유지배경영구조 타파와 같은 본질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해야 합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장: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기성 보수정당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실련·참여연대 같은 종합적 시민운동단체가 기형적 정당정치의 취약함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셈이죠. 그런데 IMF사태를 계기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재벌개혁론이나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주주이익을 대변하고 기업의 수익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인력감축에 동조하고,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민불편 운운하고…이런 행태들이 결국 노동운동과의 갈등을 빚어낸 것이죠. 과연 자본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입니까? 시민운동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구도 속에서 어느 편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숙고해야 합니다.

김: 자꾸 소액주주운동을 걸고넘어지시는데,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소액주주운동은 주주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액주주의 힘을 활용해 기업의 전근대성을 타파하자는 운동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운동입니까? 그리고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시민단체가 불평했다고 하시는데, 작년 지하철 파업때 경실련이 파업 자제하라는 성명을 딱 한번 발표한 적은 있어요. 자꾸 그걸 갖고 시민운동을 적대시한다면 저희로선 억울합니다. 왜 시민운동은 노동자들의 소유경영참가를 요구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듣습니다만, 그건 사실 노동자들이 해야할 이야기 아닙니까? 그걸 시민단체가 제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니 참 답답할 노릇이에요. 물론 장선생님이나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노동운동 주변에서 자꾸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차이와 분열을 과장하는 지식인들이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대립할 때, 이득을 챙기는 쪽은 어딥니까? 보수진영이잖아요.

장: 노동운동 역시 연대를 원합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자본과 노동의 대결구도 아래서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려되는 부분은 정부가 예산지원을 통해 시민단체의 입장과 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시민단체 스스로 자신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지요. 일각에서는 정치세력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경우, 지금으로선 합리적인 자본가 지배를 위한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운동과의 대립은 보다 첨예화될 수 있습니다.

김: 굳이 입장을 밝히라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동일성과 차별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이 속의 연대가 중요합니다. 사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안에 따라 공동성명서를 발표한다거나, 범국민대책위 같은 조직도 공동으로 꾸리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사안에 대해 협력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진보를 지향하는 세력이 힘을 합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지만, 서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장상환이 말하는 김기원

실사구시 강조하는 점진 개혁론자


공부도 사회활동도 오랫동안 함께 해왔는데, 요즘 와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쩔 수 없다. 사회세력들 사이의 첨예한 대결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절친했던 사이라도 입장이 갈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중립은 없으니까. 하지만 김기원은 두드러진 사람이다. 무엇보다 실사구시적인 자세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요즘에는 시민단체에 관여하며 정부관료들과의 접촉도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조언을 통해 정책의 오류를 시정할 수도,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의 역학관계가 노동측에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김기원은 사회보장확대투쟁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노동측의 세력이 우세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노동운동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애정을 가져줬으면 한다. 다만 시민단체 일을 하다보면 정부측에 지나치게 의존하게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현실적으로 힘있는 쪽에 의지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용이하다. 그러나 지나친 의존은 초기에 가졌던 건강한 문제의식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김기원은 자본주의를 뛰어넘자는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이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든다. 나 역시 과거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목표는 민주적 경제체제다.


● 김기원이 말하는 장상환

근본적 개혁 지향하는 이상주의자


나이 쉰을 넘겨 장상환처럼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본받을 부분이다.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점도 많다. 차이가 있다면 DJ정부에 대한 대응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DJ정부는 진보세력보다 수구세력으로부터 더욱 심하게 비판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보장제도나 구자유주의적 개혁은 생산적 비판을 통해 더욱 싹을 살려줘야 할 부분이 아닌가. 우리사회의 대안과 관련해서도 장상환과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역사에 압축은 있지만 비약은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를 뛰어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우리처럼 전근대성이 뿌리깊게 잔존한 사회에서는 프랑스대혁명의 자유·평등·박애만 내걸어도 충분하다. 굳이 사회주의를 내걸 필요는 없다. 독일식 이해당사자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장점을 흡수하는 체제가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본다. 장상환은 내가 시민단체활동을 하면서 정부측 인사들과 접촉하는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접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대화와 투쟁의 적절한 배합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노사정 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활용할 것은 활용하고 투쟁이 필요할 때는 밖에 나가 투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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