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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에서‘활용’으로 대학 도서관 패러다임 바꿔
‘보존’에서‘활용’으로 대학 도서관 패러다임 바꿔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03.05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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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고문헌시스템의 과거, 현재, 미래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 저력’을 조명하기 위해 교수신문이 기획한‘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는 대학 내부의 집합적 노력, 유산의 역사성과 사회적 기여 가능성, 잠재성, 세계적 가능성 등을 평가해 최종 선정했다. 13편의 유산 가운데 열 번째로 경상대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을 조명해 본다. 20여 년의 노력 끝에 완성한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남명학파와 경상우도 지역 유학자의 문집뿐 아니라 군지ㆍ읍지 등의 역사 자료를 망라해 한국학 연구의 양과 질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퇴계학파와 남명학파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데도 유용한 자료다.

 

5번의 고배와 5번의 축배. 경상대 도서관이 남명학고문헌시스템(http://nmh.gnu.ac.kr)을 구축하기까지의 10년 노력을 설명할 수 있는 말로 ‘칠전팔기의 정신’만큼 더 적절한 것은 없어 보인다.

경상대 도서관이 소장한 경남지역 고문헌 자료를 디지털화하기로 하고 장기 계획을 수립한 것은 2002년이다. 고문헌은 우리 선조들이 후손에게 물러준 소중한 기록유산인데 원본 자료는 각 기관이 소장하더라도 내용은 전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정보통신부가 주관하던 국가 DB구축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2년 연속 고배를 마셨다. 3수 끝에 드디어 2004년,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국가DB구축사업에 선정됐다. 939종 1천573책 26만840면의 고서를 스캔해 화상정보를 구축했다. 하지만 화상정보로는 충분치 않았다. 검색기능이 없어 원하는 자료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2005년부터는 화상정보를 텍스트로 전환해 본문 검색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민간 소장 고문헌 수집·관리 앞장서

축배를 든 것도 잠시. 2006년부터 3년 연속 사업 선정에 탈락했다. 다들 포기하라고 말렸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불굴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2009년부터 3년 연속 사업을 따낼 수 있었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남명학고문헌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이렇게 구축한 남명학 관련 경남지역 고문서가 1천303종 2천649책이다. 원문 이미지는 41만면, 원문 텍스트는 5천600만자에 달한다.

남명 조식과 관련된 문집이나 교유한 인물의 문집뿐 아니라 경상우도(낙동강 서쪽) 지역 유학자의 문집, 군지ㆍ읍지 등의 역사기록이나 고문서를 망라하고 있다. 국가적인 통치자료와 지방의 역사 자료를 결합해 한국학 연구의 양과 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경상좌도(낙동강 동쪽)의 퇴계학파와 경상우도의 남명학파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데도 유용한 자료라는 평가다.

원창애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구축한 『한국문집총간』은 저명학자 중심인데 반해 지방 유학자의 흐름이나 학맥, 인맥, 계보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사상 연구에도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자료”라고 말한다. 이정욱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학문적 교류를 알아보는 데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지역별로 이런 DB가 활성화될 때 한국학 연구의 내용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대학 도서관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으로도 평가받는다. 원창애 선임연구원은 “전국 대학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이 많은데 연구자들이 원문 보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학 도서관으로서는 선진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상필 경상대 교수(한문학과)는 “지금까지의 대학 도서관이 자료 보존에 그쳤다면 활용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굴의 의지만으로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충실한 자료 조사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출발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경상대 부설 경남문화연구원이 진주 인근 지역인 금산면으로 종합학술조사를 나간 게 계기가 됐다. 수곡면, 대평면 등 면 단위로 민간이 소장한 고문헌 조사를 계속해 나갔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부경남지역의 고문헌을 군 단위로 조사했다.

자료 조사 덕분에 경남 전역의 고문헌 소장 현황과 분포, 특징 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는 남명학고문헌시스템 구축의 밑거름이 됐다. 초창기부터 고문헌 조사에 참여했던 김준형 경상대 교수(역사교육과)는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는 경남지역의 거의 모든 군을 샅샅이 조사했다”라며 “조사를 나가보면 중요한 역사 자료가 유실되거나 훼손된 경우가 많아 기증과 위탁을 설득해 나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수집된 고문헌이 5만여 점. 수집된 고문헌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 역사자료 정보화사업을 유치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목록을 작성해 뒀다.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어느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경남문화연구원에서 경남지역 고문헌 조사를 실시하면, 도서관에서는 민간이 소장한 고문헌을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했다. 또 남명학연구소는 고문헌을 분석해 경상우도 지역 고문헌의 특징과 현황을 파악해 뒀기 때문에 가능한 사업이었다. 경상대는 1999년 남명학과 지역 역사학을 인문사회계열 특성화 분야로 지정해 이를 지원했다. 남명학과 지역학 연구를 위해 지역주민들은 대학 안에 남명학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DB 구축 넘어 원문 번역작업에도 착수

DB 구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경상대는 지난해 한국고전번역원으로부터 영남권역 번역센터를 유치해 경상우도 지역 문집 번역작업에 착수했다. 그 동안 수집 정리해 DB화한 고문헌을 체계적으로 번역해 대중화하면 학술연구도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이상필 교수는 “고문헌 속에 녹아 있는 사상이나 역사뿐 아니라 각종 지명, 인명, 특산물, 지리, 인물 등의 정보를 얻게 돼 새로운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이나 콘텐츠 개발,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대했다.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고문헌도서관도 건립한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190억 원을 확보해 설계를 마쳤다. 하반기에 착공할 예정이다. 김명순 경상대 도서관장(불어불문학과)은 “경남 전역에 흩어져 있는 고문헌이 약 20만 점으로 파악되고 있다.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ㆍ정리하고, 그 가운데 중요한 자료는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 등 질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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