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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 봄, 그리고 생산적인 것
문화비평_ 봄, 그리고 생산적인 것
  •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사
  • 승인 2012.03.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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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사
봄이 마당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날이 좀 풀린 지난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더군요. 새로운 학기와 새로운 계절이 열리는 3월에는 움츠렸던 시간을 뒤로 하고 희망을 담아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봄에 하루를 놀면 겨울에 열흘을 굶는다는 속담은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없다고, 시작을 상징하는 봄의 역동성을 잘 일러줍니다.   

허나 저는 봄을 활동하는 계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씨’를 뿌리는 사색의 시기로 생각합니다. 수확하는 가을보다 씨를 뿌리는 계절의 사색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거든요. 그저 시작하지 말고 충분히 생각하고 시작하자는 뜻입니다. 빠른 속도를 내는 모든 것이 환영을 받는 요즘에는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사람을 느리다거나 비생산적이라고 부정적으로 파악합니다만.

사실 만물이 약동하는 봄날의 사색은 게으름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른바 사색은 활동이 부족한 걸 의미하는 게으름과 비슷한 상태니까요. 행동하지 않는 지성을 비판하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생각이 많은 사람은 게으른 사람처럼 뭔가 부족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생각하는 것은 열심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게으름처럼 생산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요.

“그 사람은 생산적이야”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생산적’이란 의미는 눈에 보이는 결과나 당장 이익이 수반되는 행동을 이릅니다. 월든 호숫가에서 살았던 미국의 사상가 헨리 소로의 말처럼, 투기꾼으로 하루를 보내거나 숲을 베어내는 환경파괴적인 행동도 생산적인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매일 반나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히 채워 숲속을 산책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힙니다.”

비생산적인 사람들은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꾸준하게 움직인 개미와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한 베짱이가 굶주림의 처벌을 받는다고 가르친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사회와 국가가 정한 대로 분주하게 살지 않는 자들은 불온한 생각을 하게 돼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간주됩니다. 그래서 정부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일하게 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도록 만들었지요.

국가의 자리에 부모를 대입할 수 있겠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방과 후에도 피아노를 배우고 태권도를 익히며 미술학원에 가느라고 뛰어놀거나 생각할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험한 세상에서 안전궤도를 돈다고 믿는 거지요. 그러면서 학교와 학원만 오간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근면을 강조하는 19세기 후반의 미국을 비판한 철학자 니체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는 근면은 사람에게 고삐를 매어 이성과 욕망, 창의력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근면은 최상의 경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상의 방법은 ‘무슨 일이든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갈대에서 일하는 기계가 돼 갔지요. 

그러나 세상에는 생산적이지 않아도 가치를 가진 일이 많습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강조하던 근면의 시대인 지난 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상상력과 창조성이 한층 더 필요해졌고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생각이 많고 그래서 사회에 위협적이라고 통제한 논리를 뒤집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이야말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생산적인 행동이 됩니다.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빠른 걸음에서 아름다운 시상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긴 어려우니까요. 게으른 시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휘트먼이 태평하고 무심한 무위를 칭송한 건 그래서였지요. 19세기의 그는 “가끔가다 한 번씩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나 12시간동안 몰아서 일한 뒤 다음 날 잠을 자며 빈둥대는 사람에겐 호감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죄악이고, 뭔가를 하는 건 좋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여가가 늘어나는 걸 환영하면서도 게으르게 여가를 보내는 걸 불행이라고 생각하고요. 여가시간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여행을 하거나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바쁘게 움직여야 여가를 선용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긴 겨울을 누르고 다가온 봄날에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일찍이 1928년에 유럽을 여행한 이성용은 “문명이 진보될수록 인심이 강박해지고… 생활의 경쟁이 너무나 극렬하야 길가에 나가서 눈 한번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나 기계적으로 팽팽 돌아가고 무슨 일에나 물질로만 따져 나아가려는” 시대를 개탄했습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나 한층 강박해지고 물질만 따지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봄의 여유를 갖자고 미리 제안합니다.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요? “이른 봄입니다!”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ㆍ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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