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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미술본색』(개마고원 刊)통해 미술계 비판한 윤범모 경원대 교수(동양화)
[저자인터뷰]『미술본색』(개마고원 刊)통해 미술계 비판한 윤범모 경원대 교수(동양화)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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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6 12:57:17
“아직도 저리 순진해서 어찌할꼬. 그래서 어디 미술판에서 살아남겠어.”

미술평론가 윤범모 경원대 교수가 이번에 펴낸 책 ‘미술본색’을 읽은 주위 사람들이 보내는 반응은 대개 이렇다. 속 시원하다, 할 말 했다는 칭찬도 드문 들리지만, 대부분 철없다, 뒷감당 못한다는 걱정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 내용이 참으로 적나라하다. 감추고 자실 것 없이, 에돌고 눙칠 것 없이 직격탄으로 쏘아 올린 대포알의 파장이 크다.

“미대생들이 너무 생각을 않고 우리 미술계의 실정을 모르는 것 같아서 평소 생각들을 단숨에 정리했다”는 책 ‘미술본색’이 화제가 된 이유는 거침없는 비판과 현실 진단에 있다. ‘스타양성훈요십조’에서 그는 작가들이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 행태를 역설적으로 권하고 있다. ‘제1조:역사의식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제2조:무조건 대국의 유행을 따르라, 제3조:무표정의 장식그림만이 살길이다, 제4조:무슨 짓을 해서든 유명해져라, 제5조:패거리를 이뤄 인맥을 관리하라, 제6조:경력을 관리하라, 제7조:전업작가보다는 대학교수 쪽을 택하라, 제8조:책을 읽지 마라, 제9조:그림값은 멋대로 불러라, 제10조:작가정신과 속물근성을 맞바꾸라’.

많은 작가들이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과 작가의식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고 있고, 서슴없이 속물근성에 몸을 내맡기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야유다. 그 스스로 미술평론가로 20년 넘게 살아온 ‘동종업계’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 반성하고 싶어서”라고 고백한다.

유명 작가의 그림이 몇 억 원에 팔리고, 한 해 5천건 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작가의 월계관이 넘쳐나는 미술계의 양적 팽창은 겉만 부풀어오른 것일 뿐, 속을 들여다보면 허약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윤 교수의 뼈아픈 지적이다.

그렇다면, 미술교육은 어떤가. 그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미대 교육을 비판하고 나섰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미술분야는 교수를 ‘과잉’ 대접합니다. 작가가 되려고 미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교수 되려고 미대 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미술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자와 작가가 분리되지 않는 풍토에서 생깁니다. 미대 교수들은 작가로 살 것인지, 교육자로 살 것인지에 대한 입장 정리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는 동료 교수들에게 “교육자로서 프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뜻 모호하고 규범이 없어 보이는 예술의 특성상 더더욱 논리와 체계가 필요한 까닭이다.

“‘감’으로 가르치는 실기지도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주먹구구식 교육으로는 더 이상 현대미술의 발전을 감당할 수 없어요. 교수들이 교육 성과를 제출하게 해야 합니다. 가령, ‘작품을 교육적으로 활용했더니 어떤 효과가 있더라’ 하는 것을 보고서나 논문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얘기죠. 스스로 논리와 체계를 세우고 교육자로서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그는 또한 미술계의 고질적 문제 가운데 하나인 ‘학연’을 꼬집는다. “미술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선 비평이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몇몇 대학 출신이 미술계를 꽉 잡고 있으니 비평이 맥을 못추는 건 당연하죠.”

부실한 교육, 학연, 작가의식 부재 등 날 선 비판만 책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미술계의 반성과 발전이다. “그동안 우리는 촉각을 예민하게 세우고서 북경에서 동경으로, 그리고 뉴욕과 파리 등으로 유행의 공급지를 바꾸어왔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미술을 하는 걸까. 또한 누구를 위하여 미술을 하는가. 서구 사람이 닦아준 매끄러운 길 대신에 비록 울퉁불퉁하더라도 우리의 길을 걷는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이 될 것인가.” 숨길 수 없는 미술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책의 첫머리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그의 동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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