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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57) 키조개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57) 키조개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2.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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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봄철 것이 훨씬 맛이 좋아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집사람이 일껏 싸구려 바닷조개(진주담치) 한 소쿠리를 사와 수돗물에 담아 밤새 해감을 한다. 흔히 이걸 ‘홍합’이라지만 언감생심, 그것은 껍데기가 크고 딴딴한 것이 하도 귀하고 비싸 맛 볼 꿈도 못 꾼다.

산채로 펄펄 끓는 물에 한꺼번에 쏟아 붓고는 알뜰살뜰 얇게 토막 낸 싱싱한 무, 매만진 콩나물, 매매 다진 마늘, 쫑쫑 썬 부추를 집어넣어 한참을 끓이니 말해서 조갯국이다. 후룩 후루룩, 푹 우려낸 짭조름하고 감칠 맛 나는 조개진국에는 간에 좋다는 타우린(taurine)이 많이 들었다고 하던가, 시원한 것이 술 속 풀이에 으뜸이다. 입을 짝짝 벌린 조개를 집어 속 알(조갯살)을 쏙 빼먹었는데도 으레 껍데기 안벽에 하얀 살점 두 개가 덧붙어 있지 않은가. 요지부동, 잘 안 떨어지고 버티지만 궁상맞게도(?) 안간힘을 다해 굳이 그것들을 떼먹는 버릇을 가진 나다.

‘조개부전 이 맞듯’한다고, 맨손으로 살아있는 조개 입을 여는 것은 힘이 장사라도 어림없다. 앞서 젓가락으로 따 먹은 것은 다름 아닌 두 조가비를 꽉 붙잡고 있던 단단하고 질깃한 힘살, 閉殼筋(adductor muscle)이다. 조개껍데기 틈새에 날선 칼을 집어넣어 자르거나, 굽고 삶아 힘이 부치거나 빠지지 않으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리 허술하고 헐겁게 만들어진 조개가 아니다. 아무리 다그쳐도 묵묵부답할 때를 ‘조개 입 닿듯’한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키조개(Atrina pectinata, comb pen shell)는 마치 곡식을 까불러 고르는 앞은 넓고 펑펑하게, 뒤는 좁고 우긋하게 고리버들 엮어 만든 키(箕)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더러 이불에 쉬하면 머리에 뒤집어쓰고 소금 빌러 갔었던 바로 그 키(쳉이)가 아닌가.

키조개는 연체동물 중에서 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二枚貝類)로, 자웅이체이며 난생하고, 산란기의 암컷 살(생식소)은 적갈색이고 수컷은 노란색이다. 각장 145㎜, 각고 250~300㎜, 각폭 100㎜ 남짓한 대형 종으로 뾰족한 殼頂(조개껍데기의 가장 높은 끝부분)에서 폭이 점점 넓게 퍼져 전체적으로 긴 직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이고, 두 껍데기가 서로 달라 붙어있는 등 쪽 가장자리(背緣)는 직선이다.

조가비는 아주 얇으며 겉면은 펑퍼짐하고 미끈거리는 것도 있지만 보통은 방사상의 도드라짐(放射肋)과 生長線이 뚜렷하고, 그 위에 꺼칠꺼칠한 비늘돌기(鱗片突起)가 줄지어 잔뜩 나 있다. 껍데기 겉은 사는 곳에 따라 청록색, 녹갈색 또는 황록색이고 안은 진주 광택을 내고, 껍데기(貝殼)는 마르면 쩍쩍 금이 가고 쉽게 부스러진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서 나며, 內海나 內灣의 潮間帶에서부터 자그마치 30~50m 되는 깊은 모래 섞인 진흙 밭에 마구 각정부를 푹 박고 잔뜩 몰려 群棲한다. 주산지 중의 한 곳이 충남, 보령, 오천이라 하며, 산란시기인 7, 8월은 되도록 잡는 것을 삼가고, 잠수부들이 깊은 물속에 들어가 손으로 잡는다.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종으로 인도, 태평양, 동인도, 필리핀, 남동중국해, 홍콩, 대만, 일본 등지에 널리 서식한다.

이 이야기 하자고 길게 말은 늘어놨나 보다. 대합ㆍ바지락 같은 조개는 앞에서 말한 前閉殼筋과 後閉殼筋이 거의 같은 모양에 비슷한 크기지만, 국자가리비ㆍ큰가리비(scallop)들은 전폐각근은 완전히 소실되고 다만 커더란 후폐각근만이 남아 중앙에 큼직하게 붙어있고, 키조개는 아주 작아진 전폐각근이 각정 가까이에 있고 후폐각근은 탱탱하고 빵빵하게 아주 큰 것이 가운데자리에 원기둥꼴로 떡하니 자리 잡았다.

이것이 부드럽고 쫄깃한 속살로 사람들이 즐겨먹는 ‘貝柱’라는 것이며, ‘조개관자’라거나 일본 말로 ‘가이바시(かい는 조개, ばしら는 버팀기둥)’라 부른다. 이야깃거리 하나 알려드렸으니 조개구이나 해물칼국수, 가리비ㆍ키조개 요리를 먹으면서 ‘조개껍데기 닫는 힘살’을 잘 살펴보실 것이다.

대부분 소금에 절여 말리거나(鹽乾) 냉동해 팔지만 싱싱한 것은 꼬치, 볶음, 구이, 무침, 회, 초밥, 전, 죽, 탕 등으로 요리하며, 연한 살이 입에 살살 녹는다. ‘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봄철 것이 훨씬 맛 좋다고 한다. 허참, 벌써 군침이 한입 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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