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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온생명’을 구상한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
[인터뷰] ‘온생명’을 구상한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7.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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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생명은 정신과 문화가 담긴 과학입니다”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는 “온생명은 고유명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미 다른 외계에도 우리가 아닌 온생명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가 지칭한 ‘온생명’이 수많은 함의를 낳아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장회익 교수를 직접 만나 스스로 온생명 사상을 어떻게 자리매기고 있는지 들어봤다.

△물리학자로서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원래 물리학이 생명 아닌 것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학위를 마치던 1960년대 후반은 DNA에 대해 중요한 내용이 밝혀지면서 생명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커지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 물리학적인 용어로 해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생명의 전반적인 윤곽, 다시 말해서 생명과 생명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물의 보편적인 존재양상에 대한 이해가 물리학이 다루는 것이므로 그 배경에는 물리학적인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가이아’나 ‘생명의 그물’ 등의 이론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온생명은 생명의 기본존재 단위, 그것의 주요특성을 모두 담고 있는 메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아’나 ‘생태계’ 같은 개념 속에는 인간의 정신, 문화가 포함되고 있지 않습니다만, 온생명에는 그것이 주요부분으로 존재합니다. 가령 인체와 사람을 놓고 봤을 때 인체는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에는 유용하겠지만 사람이라는 말에는 인체가 담고 있는 의미는 물론 정신, 성격, 존엄성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제가 굳이 온생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의미 때문입니다.”

△온생명을 생각하다보면 상대적으로 낱생명에 소홀할 소지가 크지 않겠습니까.
“낱생명 자체도 정신적인 영역이 있고 상대적인 독자성을 가지고 생존하고 사멸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낱생명이 없다면 온생명이 존재하지 않고 온생명이 없으면 낱생명도 존립할 수 없습니다. 온생명의 가치는 낱생명의 가치를 반드시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별개의 것으로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제가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온생명은 보지 못하고 낱생명만 보는 경향입니다. 둘을 함께 보자는 것입니다.”

△‘온생명’이 과학적인 개념인지 철학적인 개념인지 모호합니다.
“저는 과학적인 개념으로 봅니다. 이 개념은 ‘생명이 주변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 존속할 수 있는 단위가 무엇이냐’라는 과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과 관련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개념은 몹시 철학적이고 윤리적이고, 생태학적인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이 원래 의미나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만 과학적인 시각을 통해서 바라본 개념이 새로운 의미와 중요성을 가진 셈입니다. 과학자들은 구성물질을 바라보고 미시적으로 분석하면서 손에 잡히는 내용만을 연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어디까지가 생명인가’하는 식으로 넓혀가면서 연구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과학에서 말하는 쿼크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개념입니다. 온생명 역시 당장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의미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과 관련된 개념이기 때문에 과학적 개념입니다.”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자연관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저는 동양사상을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는 전일적인 관점에서, 삶을 가장 소중하게 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사람답게 살 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동양사상에서는 우리가 사는데 무리가 없는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온생명에 해당하는 것과 가까운 생태윤리, 가치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그대로를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했기에 온세상이 다 생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해서는 온생명의 경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생명을 우주 전체가 생명인 것으로 본다고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사실 온생명이야말로 극히 제한된 시공의 범위 내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우주 대부분은 생명이 아닌 것이 더 많습니다. 그렇지만 온생명의 안쪽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사방이 다 생명이니 그것이 크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언
어로 이야기하자면 동양사상은 온생명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아닌 직관적인 이해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동양사상이 말하는 윤리, 가르침이 온생명과 생태계 안에서 살아야 될 방향과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연구와는 어떻게 관계맺을 생각이신지요.
“대부분의 과학자와는 반대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학문의 흐름과는 접선이 안 된 측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인문·사회쪽에서는 생태윤리나 인간과 인간 주변의 것을 다루기 때문에 더욱 많이 다뤄져 왔습니다. 사실 사회현상도 온생명 안에서 존재합니다. 저는 가장 정상적인 온생명의 상태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 온생명은 40억년 가까이 생존해 왔는데 ‘어떻게 하면 건강한 생명을 유지하는가’, ‘사회는 어떻게 구성돼야 하겠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생명 안에서 낱생명은 경쟁과 협동의 두가지 측면의 원리를 갖고 생명을 유지해왔습니다. 문명의 발전은 정상적인 온생명을 유지하는 속도로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명이 온생명 생리에 어긋나느냐 아니냐를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마치 앞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이상한 것처럼 돼 버렸습니다. 아직 어려운 문제는 온생명의 정상적인 생리와 병리적인 생리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온생명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기준을 참조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온생명이 존속하는 수준을 기준으로 해서 그 수준을 넘어서면 위험하다는 내적인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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