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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홍보 기념관과 낙동강 하구둑
4대강 홍보 기념관과 낙동강 하구둑
  • 허정 동아대 교수
  • 승인 2012.02.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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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 허정 동아대 교수

허정 동아대 교수
필자가 근무하는 동아대학교 하단캠퍼스 앞에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가 있다. 을숙도는 한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명성을 떨치며, 해마다 겨울이면 避寒 길에 오른 철새들이 장관을 이루던 곳이었다. 하지만 낙동강 하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낙동강 하구둑(1983년 기공~1987년 완공)이 건설되고 난 이후, 을숙도는 철새도래지로서의 기능을 많이 상실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철새들의 개체수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을숙도 광장 한가운데에는 하구둑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솟구쳐 있다. 기념탑 하단의 기념비석에는 “福祉의 새基地 洛東江 河口둑 - 大統領 全斗煥”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하구둑 건설을 두고 찬반의 의견대립이 심각했지만, 지역 여론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중앙 중심적 결정 방식 아래 ‘낙동강 항문 막기 공사’는 강행되었다. 이 건축물은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만들어졌다. 이 건축물의 공사를 두고 당시 <국제신문> 사회부기자로 있던 조갑제는 <낙동강> 창간호에서 건설업체의 배후설을 의심하면서 그 공사의 강행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기념할 일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을숙도에 4대강 살리기 사업 기념문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4대강공사의 홍보에 돈을 물 쓰듯 하는 정부가 44억원을 투자하여 을숙도에 4대강살리기 사업 기념문화관을 건설할 계획이다(<경향신문>, 2011.5.24 참조).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는 8개의 湺가 들어섰는데, 거대한 대형보 공사가 있었던 곳을 두고, 왜 하필이면 을숙도에 기념문화관이 들어서는 것일까? 을숙도는 하구둑 기념탑만으로도 충분히 흉물스러운데, 또 무엇을 기념한단 말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을숙도에 기념문화관이 들어서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 싶다. 다음 2가지 측면에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4대강 공사는 을숙도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4대강 사업 중 을숙도에 배정된 예산은 280억 원. 이 돈은 을숙도를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인 인공생태공원으로 유원지화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작년 이 공사로 인해 갈대와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던 을숙도의 상단부는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이 깎인 듯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멸종위기 습지생물이 서식하는 습지는 준설토로 덮여 버렸다.

또한 을숙도의 하단부에는 을숙도의 생태를 무시한 무리한 공사계획이 제출되었다가 환경단체와 지역여론의 반발로 급히 계획이 수정되기도 했다. 특히 하단부의 공사는 겨울철새가 찾을 무렵 진행되어 예년에 비해 이곳을 찾는 철새의 수가 3분의 2나 감소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을숙도에 떨어진 돈벼락으로 인해 을숙도의 생태가 파괴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을숙도를 유원지로 만들어 4대강 사업의 효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 이곳에서 안간힘을 다 하고 있으니, 내친 김에 여기서 한 술 더 떠,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라는 이미지가 잔존해있는 을숙도에서 기념문화관을 통해 4대강 사업을 드러내놓고 홍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낙동강에 세워진 보와 하구둑 사이의 유사성 역시 생각해볼 만하다. 둘의 유사성은 많다. 우선, 건설 목적이 유사하다. 하구둑은 안정적인 용수 확보와 염해방지, 경제 활성화, 유람선 운항과 같은 관광 개발 효과 등을 명분으로 건설되었다.

보는 수량 확보를 통한 물 부족 해소, 홍수예방, 수상레저 휴식 공간 확보, 일자리 창출 등의 명분으로 건설되었다. 그 외양에 있어서도 둘은 유사하다. 둘은 다 같이 수문을 개폐하는 가동보이고, 수문의 높이와 수문이 위치한 교량 구간의 길이도 유사하다. 강물과 토사의 흐름을 저해하는 것 역시 유사하다. 둘 모두 매시기 이질성을 드러내며 흐르던 강물의 다양한 흐름을 차단한다. 강물을 측량가능한 단위로 환산하고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기 위해 그 흐름을 철저히 통제한다.

하구둑은 낙동강 하구의 유속을 느리게 하여 하구를 호수처럼 정체시키고, 매년 20억의 어마어마한 준설비용을 들여 강바닥의 썩은 퇴적물을 퍼내고 있다(가동보라 하더라도 강심의 토사를 바깥으로 원활하게 배출시키지는 못한다). 보 역시 유속을 정체시키고 준설을 비롯한 유지관리비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역시 유사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하구둑을 보의 원형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2등~3등보다는 무조건 1등을 기념하고 칭송하려는 습성이 있지 않는가? 최초와 뿌리를 숭상하고 기념하려는 예의바른 심성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8개의 보가 있는 곳보다 보의 원형에 해당하는 하구둑이 관통하고 있는 을숙도에 기념문화관이 우선적으로 들어설 만하지 않는가?

천혜의 생태공간 을숙도에는 생태에 이롭지 않은 개발의 役事를 기념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구둑 건설 25년이 지난 이 시점, 권력자의 치적을 과시적으로 홍보하려는 글귀(“福祉의 새基地 洛東江 河口둑 - 大統領 全斗煥”)를 선명히 새긴 하구둑은 지금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수용될까? 권력자의 치적으로 기억되는가, 아니면 하구의 존재가치를 망실시켜버린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수용되는가?

허정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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