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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벌써 봄?… 높은 산은 아직 ‘동면중’
마음은 벌써 봄?… 높은 산은 아직 ‘동면중’
  • 허준규 산전문기자
  • 승인 2012.02.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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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기 산행가이드

해빙기엔 겨울산행 준해 장비,의류 챙겨야 
강원내륙·경기북부 고산이 ‘잔설산행’ 인기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해빙기다. 글자 그대로 겨우내 얼어붙었던 산천이 녹기 시작한다는 뜻인데, 한결 따스해진 햇살과 함께 산으로 향하고픈 막연한 생각이 드는 것도 이맘때다. 그러나 산에서는 겨울도, 봄도 아닌 애매한 이 시기가 일 년 중 산행하기에 가장 까다로운 시기이다. 무엇보다 겨울산행 못지않게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인데 특히 낙상·낙석사고에 대한 주의는 물론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한 적절한 장비와 의류를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함백산의 두문동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마루금. 국립공원이 3월 중순부터 산불방지 기간에 들어가는 반면, 함백산은 그 후로도 잔설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사진: 허준규

연중 산길 상태 최악은 바로 해빙기

절기상 입춘이 지난 2월 하순부터는 땅이 풀리면서 근교산은 겨울태를 벗기 시작한다. 하지만 해발 1천m가 넘는 산악지대는 잔설이 여전하다. 볕 가득한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솜털을 돋우고 있는 것과 달리 산속으로 들면 음지 계곡에는 아직도 두꺼운 얼음과 적설이 남아 있다. 해빙이라고는 하지만 낮에 녹는 것이지 밤이 되면 다시 얼어붙는다. 그래서 4월은 되어야 대개는 산에 봄이 왔다고 말한다.

해빙기에 유난히 산행요령과 사고 예방을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길 상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땅이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며 결국은 전부 녹지만, 이 기간이 길어 산행 중 안전사고의 원인이 된다. 한낮 양지바른 곳은 질척거리는데 음지쪽은 빙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노면 자체가 연중 제일 안 좋은 때라 하겠다.

적설층의 상태도 최악이다. 시쳇말로 ‘썩은 눈’은 신설보다 훨씬 걷기 어렵다. 반쯤 녹아 물렁거리는 것은 물론, 저항이 심해 러셀하며 헤쳐 나가는 것도 힘들다. 적설량이 많은 강원도 산간지역은 해빙기에도 구설층이 두텁게 쌓여 있다. 눈밭 표면은 녹아도 그 아래 쌓인 구설층은 굳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지역은 구설층 위의 녹은 표면이 윤활유 역할을 해 상당히 미끄럽다. 조금만 경사가 져도 오르기 힘들게 된다.

눈이 완전히 녹아 낙엽이 드러난 곳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낙엽 아래 얼어붙은 땅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낙엽 자체가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산길이 매우 미끄럽다. 해빙기의 산길은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 낙엽으로 인한 낙상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표적인 안전사고 중 하나다.

해빙기에 산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사고는 낙석과 낙빙이다. 돌이 굴러 떨어지는 사고는 흙속에 들어 있던 습기가 얼었다 녹으며 주변의 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원인.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얹혀 있는 바위를 사람이 건드려 구르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 특히 능선 쪽에서 굴린 바위가 계곡길로 떨어져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아래쪽에 있는 이들을 위해 낙석을 일으키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날씨도 예외가 아니다. 변덕스럽다. 햇볕이 날 때는 초여름처럼 따뜻하다가도 날이 흐려지면서 바람이 불어오면 날씨는 다시 겨울로 돌변한다. 아침에는 춥지만 맑은 날 한낮에는 산행으로 인해 체온이 크게 상승한다. 따라서 얇은 긴팔티 한 장을 내의 위에 입고 그 위에 조금 두터운 보온재킷 등으로 보온을 한다. 땀에 젖었을 때를 대비해 여벌의 옷도 준비하고 모자와 장갑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배낭 속에 휴대해야 한다.

소청에서 중청대피소로 향하는 등산인들. 설악산 서북주릉과 내설악 곳곳의 골짜기는 4월은 되어야 겨울태를 벗기 시작한다. 사진: 허준규

여전히 유용한 동계용 장비와 옷가지

해빙기에는 아이젠이 여전히 필수 장비다. 고산에 남아있는 잔설은 등산로를 따라 녹아 흐르며 얼어붙기도 한다. 이런 지역을 통과할 때 아이젠은 매우 유용하다. 등산용 스틱도 미끄러운 산길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해빙기의 불안정한 등산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초보자나 운동신경이 둔화된 중장년층들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밭을 헤쳐 나가려면 중등산화가 필수다. 도심지의 따뜻한 봄기운에 현혹돼 운동화와 유사한 경등산화를 신고갈 경우 녹아내리는 얼음이나 눈 녹은 물에 젖어 동상에 걸릴 위험이 많다. 한겨울보다 물기에 젖어들 위험이 더 높아 방수처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산행 전에 왁스를 꼼꼼하게 발라 물의 침입을 막도록 한다.

스패츠 역시 아직 창고에 넣을 때가 아니다. 높은 산 북사면에는 4월 초까지 많은 눈이 남아 있다. 해빙기의 눈은 대개 축축해 옷에 닿으면 금방 젖어든다. 스패츠를 사용해 습설에서 바짓가랑이가 젓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방수방풍 재킷은 늘 휴대해야하는 품목이지만 환절기에는 특히 중요하다. 햇볕을 받아 사면은 포근하지만 능선에 오르면 칼바람을 맞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해빙기는 일기가 불안정하고 일교차가 크다.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춘설산행’은 1000m 이상 고산지대로

늦겨울 잔설산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강원내륙과 경기 북부의 고산을 찾는 게 제격이다. 강원내륙은 춘삼월에도 눈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대상지가 가장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설악산이나 오대산 같은 국립공원은 물론이고 눈 깊은 설릉 종주길이 백미인  태백 함백산, 본디 눈 많기로 이름난 정선 가리왕산, 안개와 눈이 많아 고층습원 용늪이 생성된 양구 대암산, 철원과 화천의 경계를 이루며 한북정맥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복주산 등이 단골 산행지다. 여건상 강원 산간지역이 부담되면 경기 북부지역 포천이나 가평 등 강원도계를 이루는 봉우리도 눈여겨볼만하다.   

허준규 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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