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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정신은 철학사상의 생명…박치우-박종홍 깊은 연구 필요"
"비판 정신은 철학사상의 생명…박치우-박종홍 깊은 연구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2.20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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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펴낸 위상복 전남대 교수

잊혀진 사상가 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을 복원한 위상복 교수는 박치우의 유물론이나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앞으로 좀 더 연구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사진:이정아 한겨레 기자
△내년이면 정년퇴임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년 퇴임전에 856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 게다가 사상사에서 거의 잊혀진 인물을 이렇게 복원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또 자료 접근도 매우 어려우셨을텐데, 어떻게 단행본 저술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연구하는데 정년이란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만 시간에 쫒기다보니 약간 초조해진 것 같기도 했나봅니다. 박치우는 일제시기나 해방공간에서 철학계는 물론 문학계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기구했다면 너무 기구한 것이어서(?) 모두들 잊어버렸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박치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조건들이 그것을 허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료의 수합과 정리, 집필, 교정 등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애초의 생각처럼 결코 간단하지가 않아서 애를 먹었나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헤겔 철학과 헤겔 철학의 국내 수용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오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박치우와 선생님의 조우는 일견 예정된 측면도 있지만, 사실 다소 의외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선생님께서 박치우를 조명하는 일은 '한국 서양철학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과연 그런지 여쭙고 싶군요.
"물론 서양철학 일반이나 헤겔 철학이 우리나라에 어떤 과정을 겪으며 유입되고 수용되었던가는 근래 들어 조금씩 연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맑스 철학이나 맑스주의 사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헤겔과 맑스는 철학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관계에 있으면서도 때로는 상반되는 관계에 있었기도 합니다. 헤겔 철학의 수용 문제는 필연적으로 맑스 철학의 수용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을 일반적으로는 변증법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30년대의 우리의 철학사상적인 주제는 변증법이었습니다. 변증법에 대한 이와 같은 주제는 관념론적인 경향이기보다는 유물론적인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학사상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일반은 물론 문학비평계에서도 그런 문제를 다루곤 했던 것입니다. 헤겔이나 맑스의 철학을 바라보는 박치우의 관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연구하셨을텐데, 철학자로서, 시대와 불화한 사상가로서 박치우를 짧게 논평한다면, 그는 한국 철학계 어디쯤에, 어떻게 놓일 수 있는 인물인가요? 흥미롭게도 선생님께서는 박종홍과 박치우를 대비하고 계십니다. 두 인물을 좀더 입체적으로 대비한다면, 한국 철학계의 흐름이랄까, 이런 계보가 그려지지 않을까요?
"박치우와 박종홍은 단순히 경성제대 철학과 동기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철학사상적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깊은 길항관계 속에 있었으며, 그러나 두 철학자는 차츰차츰 전혀 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그 한 중심적인 측면이 전체주의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었습니다. 박종홍은 결국 전체주의적인 철학사상을 대변하는 길로, 박치우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이고도 대항적인 길로 나아갔습니다. 박치우의 유물론이나 맑스주의 철학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좀더 연구해보아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만, 그것을 떠나 박종홍의 철학사상적 신념은 이미 한 개의 허망하기 그지없는 희극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 역시 좀더 심화된 각도에서 연구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서구 지성계가 '마르크스'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합니다. 분명 박치우에게 한계가 있었겠지만, 오늘날 자본주의의 심화된 위기 측면에서 볼 때, 마르크스/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박치우에 대한 재평가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제시기, 해방공간과 분단체제, 그리고 6?25전쟁 등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질곡이고 알 수 없는 미로입니다. 왜곡과 의곡(?)이 중첩된 비극적인 미로인 것 같습니다. 우선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지 못한다면 그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시기 지식인들이 노상 한다는 말이 ‘젊어서 자본론 안 읽어본 사람이 있나,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그걸 읽고 있으면 바보지’라고 떠들어댔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자유란 무엇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박치우는 자신의 시대에 철저했던 사상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철학계 나아가 사상계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대와 불화한' 사상가,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사상가가 썩 드물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데는 짐작할 수 있는 사정이 있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자유와 더불어 비판적 정신은 철학사상의 생명일 것입니다. 그 속에서만이 진정성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진정성이 없다면 오류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뒤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저술에 이어, 후속으로 구상하고 계신 작업은 무엇인지요?
"특별히 다른 계획은 없고, 기왕에 해오던 일들이 몇 개 있는데 계속해야 되겠지요. 언제부턴가 부족한 능력에 저술보다는 후학들이나 힘껏 가르치려고 세미나를 항상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저술 몇 권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일 뿐입니다.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다보니 이리 늦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과 정부의 학술정책(제도)가 많이 바뀌어 왔습니다. 단행본 저술을 북돋는 평가문화가 아니라, 단순한 논문 업적 평가 중심이어서 이에 대한 비판도 많았습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을 출간하신 것은, 여간한 결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이제 퇴임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철학 저술 문화, 고민이 깊이 응축된 단행본 저술을 인문학의 본령인 철학에서부터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대학과 학문,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조금 한심스럽지 않나요? 교육계와 대학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 모양 아닙니까?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시에 ‘애절양’(哀絶陽)이 있지요.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졌던 한없이 슬프고도 비참한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시입니다. 그 비슷한 것이 서양의 ‘카스트라토’라고 하던가요? ‘나를 울게 내버려두세요.’ 요즘 다산이라면 ‘신(新) 애절양’이라도 읊었을 것입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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