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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2)
[기획연재]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2)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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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6 12:35:28
우리가 과학기술자라 통칭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에 소속된 연구소에서 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연구직 종사자들은 과학기술자로서 비교적 안정적인 장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연구원들은 자신이 다니는 연구소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안정을 달라"

대전에 있는 한 연구소에 다니는 ㄱ아무개씨는 장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가 다니는 연구소는 생긴지 20년이 넘는 국내 최대규모의 연구소. 학부를 졸업한 직후에 들어와 이곳을 다닌지도 어언 12년. 그도 이제 ‘중견’ 소리가 낯설지 않은 연구원이다. 직장생활과 함께 대학원도 함께 다니면서 차근차근 연구자로서의 과정을 밟아왔지만, 마흔을 바라보면서 다른 길도 염두에 둬야 하는 처지이다. 꿈과 자긍심을 안고 과학기술인의 길을 걸어왔건만 동년배들과 같은 속도로 승진을 하지 못한 채 나이를 먹게 되면 그 역시도 유무형의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장래를 생각해서 퇴사를 선택하자니 사회로 나가봤자 배운 것을 응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연구원들이 퇴직하게 되면 마땅히 할만한 다른 일도 없다.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소규모 사업이나 요식업 등에 종사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대덕의 식당, 호프, 통닭집 주인의 태반이 근처 연구소 출신이다’라는 믿기 힘든 소문도 떠돈다. 연구원들은 보통 일반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보직을 맡게 된다. 그러나 보직을 맡을 나이에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떠나야’ 하는 것은 일반 대기업의 생리와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연구개발 과정에 사사건건 개입

다른 연구소에 다니는 ㄴ아무개씨는 연구소 운영 체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연구직이라는 것이 놀려고 하면 끝없이 놀고 일하려고 마음 먹으면 끝없이 일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창의적인 정신노동이 요구되는 일에도 별다른 자율성은 없다. 많은 공을 들여도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지 의심스러운데도 위에서는 “오늘까지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라”며 ‘보여주기’식의 명령이 매번 떨어지다 보니 떨떠름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는 “연구개발을 직접 해보지 않은 인문계 방식의 마인드로 과학기술을 재단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속한 연구소는 정부 출연기관. 그는 “공무원의 신분이라 중앙 정부에서 지침을 알리는 팩스 용지 달랑 한 장에도 꼼짝 못하고 눈치만 본다”며 소신없는 연구소 행정을 꼬집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나마 안정이라도 있는 편. 같은 연구자들이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우도 많은 차이가 있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태곤씨는 “일반회사는 그래도 정규직으로 승계되는 경우가 많지만 국책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은 단기간에 성과를 얻기 위한 ‘PBS’가 도입되는 바람에 너무 간단하게 취업하고 잘린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PBS’란 ‘프로젝트 베이식 시스템(project basic system)’의 약어. 연구소 내부에서 팀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얻은 후 해당 기간 동안만 필요한 관련 연구인력을 고용하는 체계를 말한다. 국책연구소의 비정규직은 잠시 생기는 ‘일감’에 일희일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기술 관련 비정규직이 할 일이 없는 미취업자가 잠시의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 아니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 연구인력이 장기적인 계획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임을 감안한다면 프로젝트 단위별로 쉽게 이합집산하는 비정규직 과학기술계의 노동시장은 다른 일에 비해서도 훨씬 불안정한 셈이다.

비정규직은 스치는 바람 신세

지금 과학기술인들에게는 정부의 정책변화와 학문시장의 동향에 흔들리지않고 장래를 바라볼 수 있는 안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연구환경과 처우가 시급하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그들이 선택하고 키워온 과학기술인으로서의 꿈을 존중해줄만한 사회적인 풍토가 더욱 중요하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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