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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후보 ‘검증’ 올바른가
언론의 후보 ‘검증’ 올바른가
  • 교수신문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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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주체는 유권자 개인…언론은 자기색깔 밝혀야”
김서중 성공회대·신문방송학

양대 선거를 치르는 올해, 신문들의 선거보도가 또 어떻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자못 걱정이다. 매번 선거에서 언론은 왜곡.편파보도와 더불어 후보자에 대한 정보 제공이 적다는사실에 대해 비판받아 왔다. 그런데 올해 선거에서는 언론들이 특히, 조선일보가 후보와 그들의 정책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반가워야 할 일이지만 자못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검증’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이 저지른 ‘사상 검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노무현 후보 검증이라는 미명 아래 음모론, 색깔론, 국유화.폐간론 등을 가지고 공격했던 것을 목격했다. 이런 조선일보가 몇몇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후보에 관해서 자세히 검증해보겠다고 후보검증위원회를 만들었다(검증위원회에 대한 비판이 높자 나중에 평가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특정 후보 편들기에 나설까 걱정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언론이 후보자를 검증, 평가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검증이나 평가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다. 즉 옳고 그름은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권자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 언론이 검증이나 평가를 하겠다면 결국 특정 기준을 들이대겠다는 것인데 언론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 특정 언론의 기준이 마치 전문가들의 포장에 의해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변신하는 것이 올바른가. 언론의 역할은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것이지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검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백번 양보해서 언론이 순수한 의도로 검증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검증을 하는 언론 또는 검증위원회의 색깔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한다. 2002년 1월에 있었던 중앙일보의 후보 검증에서 노무현 후보가 좌파로 분류되었다고 해서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가 서운해할 것’이라는 말로 자신이 좌파라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음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우파의 시각에서 보면 우파도 좌파로 보일 수 있다. 따라서 검증과 평가가 어떤 관점에서 진행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검증 내용을 ‘검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는 검증이나 평가가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자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성격이 개방적이어야 한다. 낙인찍기가 가능한 폐쇄사회에서 평가는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세우기가 될 수 있다. 전술한대로 극우의 눈에는 우파도 좌파로 보일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에서 ‘좌파’라는 딱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인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불순분자의 대명사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적 좌파’라는 것이 가능할까. 정책도 그렇다. 시장 위주의 정책이 갖는 위험성을 제기하면 반 자유주의적으로 매도당하는 사회에서 낙인찍기(평가하기)가 얼마나 위험한가.
세 번째는 현재 언론들이 말 그대로 ‘검증’을 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점이다. 검증은 엄격한 사실에 의해 주장을 입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증거에 의해서 그 진실성, 정확성, 또는 실재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증명이 동반되지 않은 검사는 완결된 검증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언론들은 지금까지 후보들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들이대며 후보자들에게 상대후보의 주장이나 돌아다니는 설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해보라고 했다. 언론은 단지 그러한 주장이 있음을 자세히 기사화 해놓고서는 검증하고 있다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언론의 후보 검증으로 유권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들의 검증이 어떤 시각으로 진행되는가는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자신만 알고 비판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언론들의 검증 내용이 지니는 문제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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