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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평가, ‘차이의 문법’이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효과
대선 후보 평가, ‘차이의 문법’이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효과
  • 교수신문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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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기준 마련보다 바람직한 대통령像에 관한 논의 중요하다”
최영진 중앙대·정치외교학

지난 5월 초 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자 각 언론사에서는 2002년 대선 후보의 리더십과 정책적 비전, 그리고 역량과 업적을 비교평가하는 ‘후보평가’ 기획을 경쟁적으로 마련했다. 이러한 일은 정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늘상 있어왔고, 대통령 후보의 정책적 지향과 철학, 그리고 행위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언론사의 후보평가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대선후보들의 정책적·행태적 차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이를 토대를 소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판단한다.
‘후보평가’에 관련된 1차적인 문제는 평가 자체의 객관성과 합리성, 그리고 정확성에 있겠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대선국면에 있어 정치담론의 왜곡현상과 연관된 것이다. 후보평가 담론이 그 자체의 객관성과는 무관하게 더 중요한 쟁점들을 은폐하거나 특정한 정치지향을 내밀하게 보편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보평가 보도는 기본적으로 두 후보의 이념, 정책, 리더십, 역량, 업적, 주변 관계 등을 비교하면서 양자간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차이의 문법’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차이가 중요한 것은 선택을 위한 것이고, 그러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우리 시대 바람직한 대통령像이 무엇이냐?”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어떤 대통령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선택기준과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택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현명한’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며, 무엇을 현명하다고 평가할 것인가. 따라서 선택의 기준, 즉 바람직한 대통령상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후보평가 담론은, 암묵적으로 전제된 대통령상을 보편화하는 정당화의 기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바람직한 대통령상에 대한 공론이 중요하다면 여기에는 대통령의 역할수행과 관련된 논의를 포함한다. 우리가 특정 대통령상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소망스러운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의의 발전은 그러한 ‘소망스러운’ 역할을極㈀藪〈?소망스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도 포함되지만瑾퓔▥?수행하기 위한 조건의 하나로서 대통령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후보간의 차이에 입각한 후보평가는, 예컨대 YS와 DJ의 경우에서처럼 매우 분명한 경계를 드러내 보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으로서 두 사람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선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즉 두 사람의 ‘리더십 스타일(leadership style)’은 다르지만 한국정치의 ‘리더십 구조(leadership structure)’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한 것이다. 구조적 차원의 동질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차이를 강조하는 어법은, 그것이 현명한 선택을 요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자가당착적 논리일 수 있다.
후보평가는 ‘차이의 문법’을 인식론적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적 후보나 집단간의 차이가 부각되지만, 그 내부는 고도의 일관성과 동질성을 강요받는다. 그러한 차이는 짙은 정치적 효과를 발산하는 이념적 표식에 의해 구획된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그러한 구획설정이 가지고 있는 의제설정의 힘이다. 후보의 정책적 지향을 선택적 이념적 잣대로 구획함으로써 사실상 선택의 기준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람직한 상’에 대한 논의 부재와 연관하여 후보 선택의 암묵적인 잣대로 작용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해당 후보의 이념적 표식과 동일시함으로써 시민사회를 그러한 이념적 잣대로 구획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남북간의 적대성이 종식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좌우의 이념구획은 그것이 가지는 정책적 정향과 무관하게 강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념적 차이가 강조되는 것은 차이의 문법이 가지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효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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