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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명식 교수와 출판기념회
故 노명식 교수와 출판기념회
  •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 승인 2012.02.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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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타무스] 우리는 생각한다

출판기념회의 홍수시대다. 정치와 관련이 없는 나도 자주 초청장이나 이메일을 받는다.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출판기념회가 정치인과 정치신인들의 독차지가 됐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안면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그렇고 그런 출판기념회에 얼굴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자리에서 정작 책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그렇고 그런 자리와 거리가 먼, 그러니까 참으로 감동적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감리교신학대에서 열린 그 기념회는 기독자교수협의회가 노명식 교수의 전집 간행을 기념해 주최한 자리였다. 노교수는 우리 서양사학계의 제1세대에 속하는 원로학자다.

바로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난 그분은 일생동안 자신이 발표하고 펴냈던 글과 책들을 모아 지난해 여름 열 두 권짜리 전집을 펴냈다. 스스로 출판비용을 부담해 300부 한정판을 찍은 다음에 대학도서관, 친지와 후배 학자, 그리고 많지 않은 제자들에게 그 전집을 보냈다. 나도 그 귀중한 전집 한 질을 우체국 소포로 받았다.

전집에는 『프랑스 제3공화정 연구』『현대사의 길목에서』, 『프랑스혁명과 파리 코뮌까지』 등 학창시절에 내가 읽은 낯익은 저술도 포함돼 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낯선 글들이다. 시간 나는 대로 들춰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다룬 책을 읽었을 뿐 나머지는 포장상자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최소한 몇 권이라도 정독해야겠다.

노명식 교수는 학교 밖의 다른 분야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일생동안 오직 교육과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한 분이다. 그러면서도 그 엄혹한 유신시대에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몇 년간 해직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단체가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판기념회에서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노명식 교수는 전집 간행을 이사 가는 사람의 청소작업에 비유했다. 1960년대 초 풀브라이트재단 지원을 받아 미국에 갔던 경험담에 빗댄 이야기였다. 자신이 머물 숙소를 처음 찾아갔을 때, 마침 그 집에 살던 주인이 짐을 정리하면서 생활쓰레기를 분류해 집 앞의 쓰레기통에 가지런히 모아놓더라는 것이다.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은 자신의 삶이 남긴 일종의 쓰레기와 같다. 저간의 세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만이 수거하고 분류할 수 있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남긴 그 잡다한 것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말씀이었다. 그분은 나직한 어조로 전집에 관해 말했지만, 그 담담한 어조 때문에 오히려 그 자리 분위기는 너무나 숙연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은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것 같다. 그분은 일부러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지난해 6월말 전집 소식을 들은 제자들 몇몇이 자연스럽게 뜻을 모아 대전에 사시는 선생님을 서울로 초대해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작년 9월 평소 그분을 알고 지내던 동료, 친지, 후배들이 그 출판기념회에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지난달 빈소에서 나는 서양사학계 제 1세대에 속하는 다른 원로교수님들을 몇 분 뵈었다. 그분들은 작년 12월 중순경 서울역에서 노명식 교수와 함께 식사했다고 한다. 전집을 받고 근황이 궁금해 몇몇 분들이 서로 연락해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명식 교수는 이승에서 당신이 남긴 갖가지 흔적을 말끔히 정리하고서 전집 출간을 기회로 주변에 있거나 오랫동안 격조했던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의 자리를 가진 다음, 홀연 이 세상을 떠났다.

‘청출어람’은 옛말이다. 요즘은 스승만한 제자가 없는 시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이 혼탁한 시대에 분수를 지키고, 그것도 한없이 겸허한 태도로 세상을 관조하며 노년을 지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노명식 교수는 여러 대학을 옮겨 다녔다. 중간에 학교를 떠나는 어려움도 있었다. 언젠가 역마살이 끼어서 그랬던 모양이라는 그분의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은퇴한 뒤에는 대전에 거주하면서 이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老慾이 얼마나 커다란 화를 불러오는가는 주위를 둘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피터 래슬릿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노년은 인생의 ‘제 3기’로 불려야 한다. 노명식 교수는 ‘제 3기’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후학들에게 몸소 보여주고 떠나셨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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